코로나 패션의 완성은 마트표 장바구니

스페인 거주자의 코로나 기록

by 이루나

장례식장에서도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단다. 조문객의 양말이 웃겨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엉거주춤 절하는 포즈가 웃겨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하물며 가장 슬픈 장소 중 하나인 장례식장에서도 그런데 코로나 기간이라고 어찌 매일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웃긴 그때의 모습이 있다.


외출금지가 시행되던 첫날, 만약에 경찰이 보이면 가까운 약국에 가는 척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나왔다가 정말 경찰차가 순찰하는 걸 보고 심장이 덜컥해서 건물 뒤로 한참 숨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불안하게 돌아다니느니 집에 가자 해서 가는데 어느샌가 다시 나타난 경찰이 뒤에서 걷던 남자를 검문하는 소리를 듣고는 마치 뒤를 돌아보면 돌로 굳는 저주가 내려진 사람처럼 빳빳하게 굳어서 앞으로만 꼿꼿이 걸어갔더랬다.


그때는 정말 온갖 종류의 경찰을 다 보았다. 이 나라에 그렇게 다양한 경찰차가 존재하는지 처음 알았다. 오토바이, 경차, 일반 승용차, 지프, 봉고 등등. 초기 순찰 현장을 몇 번 목격하고 난 이후로는 차 소리만 들려도 몸이 굳고 긴장이 되었다. 산책이 죄가 되던 때였다. 가끔 내가 요정만한 난쟁이가 되어 아무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바깥에 실컷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택연금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매일 나갈 수 있는 핑계는 있었다. 생필품 구매를 위한 장보기는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로 가야 하고 혼자 이동해야 했지만 어쨌든 당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같은) 외출이었다. 대신 장보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 가지를 준비를 해야 했다. 바로 장바구니다.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슈퍼이고 즉, 나는 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임을 멀리서도 한눈에 보고 알 수 있도록 장바구니는 꼭 들고나가야 했다.


행여나 이쁜 장바구니를 들어선 안된다. 그냥 가방이라고 착각한 경찰이 귀찮은 검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출을 할 때마다 분홍색 바탕에 선인장이 그려진 에코백, 호피무늬 장바구니를 모두 마다하고 '까르푸'라는 글씨가 떡하니 적힌 에코백을 선택한 건 바로 그 이유였다.


하루는 장을 보러 가는데 평소와 달리 거리에 사람이 좀 보였다. 그렇다고 많지는 않았고 한 대여섯 명 정도 있었다. 내가 가장 끝에서 걷고 있었기에 무심코 그들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나처럼 마트표 장바구니를 소중히 매고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중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마저 계셔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초기 사재기로 텅 비었던 마트는 곧 정상화가 되었다. 장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마트는 고객님의 편의를 항상 최고로 생각합니다. 매일 물건이 문제없이 유통되고 있으니 사재기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수시로 방송되었다.


장을 보다 보면 유독 남자들만 쪽지를 꼼꼼히 확인하며 물건을 골랐는데 아마 와이프가 사 오라는 물건을 잊지 않고 사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 초기엔 입구에 비치된 비닐장갑을 반드시 착용해야 했기에 입구 쓰레기통에는 장을 다 본 사람들이 벗어서 버린 1회용 비닐장갑이 수북했다. 처음에는 몇 번 집에서부터 아예 1회용 장갑을 차고 외출한 적도 있는데 그래도 마트에 비치된 1회용 장갑을 재착용해야 했다.


어차피 거의 매일 장을 보는 핑계로 나갔기에 많은 양을 사지는 않았지만 물은 한 병씩 꼭 사는 편이었다. 그런 사례는 겪거나 들은 적이 없지만 혹시라도 경찰이 장바구니마저 검사하려 들면, 의심할 수 없는 생필품인 물을 내세울 셈이었다. 영수증을 잊지 않고 꼭 챙겨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행여나 내 데이터나 카드 정보를 조회해보고 왜 이렇게 자주 나갔냐고 뭐라고 할까 봐 장을 보러 갈 때면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고 가끔씩은 현금 결제를 했다.(위생을 이유로 카드결제가 권유되기는 했다.) 구금되어 있던 시간만큼 집에는 매일 사온 물병이 쌓였갔다. 그리고 슈퍼에서 자주 품절되던 품목은 초기 휴지류에서 시간이 갈수록 맥주, 와인, 감자칩 등으로 변해갔다.


아마 4월 무렵이었을까. 한 번은 늘 품절되어 있던 알코올 손 소독 젤이 딱 두병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두병을 모두 사 왔다. 여전히 마스크는 사지 못해서 집에 있었던 천 마스크를 매일 빨아가며 사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구한 소독 젤 두병은 너무나 뿌듯한 전리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사진도 찍어두고, 현관과 욕실에 한 개씩 배치해 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참 든든했던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