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했던 남편이 점심시간 즈음 퇴근하듯이 돌아왔다. 손에는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 회사 전체가 당분간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다. 남편 회사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스마트워크를 표방하여 주 1회 재택근무를 자율 시행 중이었다. 따라서 특별한 준비 없이 바로 재택근무 전환이 가능했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한 지 3일쯤 되었을 때 뉴스에서 전체 휴교령 검토 소식이 들렸다. 지역별로 이미 선제적으로 시행한 곳도 생겼다. 그때는 모든 게 다 급작스러웠다. 아니 그때 이후 지금까지 모든 건 다 급작스럽게 시행되고 수정되었다가 또 시행되고 있다. 전면 휴교령도 그렇게 갑자기 선포되었다.
휴교령 첫날의 풍경이 기억난다. 오늘처럼 반짝이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휴교령에 오히려 동네는 평소보다 더 활기찼다. 오전부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직 상당수 출퇴근을 하고 있었기에 대부분 아이들은 조부모들과 함께 있었다. 수요일쯤이었지만 덕분에 나른한 주말 풍경 같아 보였다. 그런 풍경이 유쾌해 보면서 깔깔 웃었다.
그 유쾌함은 곧 적막함으로 바뀌었다. 3월 14일, 처음 들어보는 국가비상령(Estado de Alarma)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도배함과 동시에 국가는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가택연금을 선고했다
초반에는 2주 정도 기간이었다. 짧은 기간이기도 하고 다행히 사는 아파트 내 작은 공원이 있으니 정 답답하면 거기라도 산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엘리베이터에는 아파트 내부 공원 및 공동시설 이용금지 안내가 떴다. 외부 놀이터도 폐쇄되었다. 마치 살해 현장처럼 폴리스 라인이 쳐진 채 말이다.
그 당시에는 매일매일 관보와 뉴스를 확인해야 했다. 하루하루 제한 조치는 더욱 늘어만 갔다. 생필품 및 의약품 구매, 불가피한 은행 및 관공서 방문, 꼭 돌봄이 필요한 직계가족 방문, 회사 출근 등을 위해서만 외출이 가능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세하게 가능한 항목이 삭제되고 조건이 구체화되었다. 예를 들어 생필품 구매를 위해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반경 약 900m) 슈퍼로 '혼자서만' 가야 했다. 은행, 관공서는 물론 법원마저 행정업무를 중단했기에 사실상 가능한 부분이 없었다. 회사도 곧 국가에서 정한 '출근 필수 업무'를 제외하고는 역시 재택으로 전환해야 했다.
가끔 유럽 내 과격한 코로나 제한 조치 반대 시위가 외신을 탔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떠한 사항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과격한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거의 없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페인에서 살면서 느낀 이들은 상당히 순응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따라서 정말 한순간에 거리에 사람이 사라졌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적막, 고요 그 자체였다. 차도, 비행기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가끔 보이는 생명체가 있긴 했다. 바로 개와 개를 산책시키는 주인이었다. 어린이도 노약자도 산책이 불가능했지만 개는 산책이 가능했다. 물론 딱 한 명의 주인과 함께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반경 내로. 나중에는 이를 이용해 한 마리의 개를 여러 이웃이 돌아가며 산책시키다가 걸리는 일도 벌어지고, 닭 따위의 동물을 데리고 나와 애완동물 산책이라고 우기기도 하고, 남편에게 목줄을 씌워 나온 부부도 있었다.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 봄 우리에게는 그런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일이 간절했다. 목적 없는 산책을 하며 바깥공기를 쐬고 햇빛을 마주하는 일, 그게 너무 하고 싶었다. 이런 일은 이런 일대로 또 외신을 타서 웃음과 비웃음을 샀지만 나는 이게 웃기지도 이를 비웃고 싶지도 않았다.
길어야 며칠이면 끝나겠지 했던 국가비상령과 그에 따른 외출금지는 바로 2주 더 연장되었다. 법적으로 정부가 단독으로 선포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이후 연장을 위해선 국회 동의가 필요했다. 수차례 거듭된 국회 동의와 함께 국가비상령은 무려 6번이나 연장되어 6월 21일까지 지속되었다. 하지 다음 날이었고 집 밖의 세상은 어느새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