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령과 함께 외출금지 조치가 시행되고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4월 말, 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5월부터는 드디어 운동이나 산책을 위한 외출을 허용해준다는 뉴스였다. 물론 수많은 단서가 따라붙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나이대별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다른 것이었다.
일단 거동이 불편해서 동행인이 필요하거나 70세 이상 노인인 경우 오전 10시~12시, 그리고 오후 7시~8시에만 나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나갈 수 있었고 나머지 일반 성인은 오전 6시~10시 그리고 저녁 8시~11시 사이에만 외출이 허용되었다.
당시 워낙 세세하게 많은 조치들이 시행되고 변경되었기에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성인 외출에 앞서 아이들 외출이 하루 이틀 전 먼저 시행되었던 것 같다. 창문 밖으로 3월 이후 처음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났는지 부모와 아이들이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냐고 안부를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는 그런 안부 인사도 다소 거슬렸다. 바이러스에 매우 예민했던 시기라 직접 안부를 안 물으면 죽을 사람들처럼 저렇게 서서 한참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늘 하던 대로 볼 뽀뽀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꼭 그래야 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깟 인사 그냥 손만 좀 흔들면 안 되냐고 말이다. - 이후 볼뽀뽀 대신 서로 팔을 들고 팔꿈치를 부딪히는 일명 '팔꿈치 인사'로 대체하자는 정부 캠페인이 생기기도 했다. 나름 또 성실히 따랐기 때문에 온 국민이 마치 힙합퍼들 같았다. -
아이들이 나갈 수 있는 시간인 정오부터 7시까지 창 밖을 보면 정말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다들 자전거, 스케이트 보드 등 온갖 운동기구를 가지고 나와 달리고 또 달렸다. 굉장히 조급한 모습이었다. 저 아이들이 한 달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집에만 갇혀 있었다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성인이야 생필품 구입이나 개 산책 등을 핑계로 나갈 방법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혼자 이동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시간 내내 정말 집에만 있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반 성인이 산책을 갈 수 있는 첫날, 나는 7시부터 매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식료품을 산다는 핑계로 나갔지만 그래도 이번 외출은 달랐다.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걷고 싶었던 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다녀야 했던 식료품 외출과 달리 같이 사는 가족에 한해 함께 나가는 걸 허용했기 때문에 남편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외출이기도 했다. 우리는 7시 50분부터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현관 앞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7시 58분 집을 나섰다. 대충 건물 밖을 나올 때면 8시가 되겠다는 계산이었다.
8시가 되자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70세 이상의 노인이나 보호자 동행이 필요한 노약자는 8시 이전에 외출을 마쳐야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부분은 8시에 다른 가족들과 나왔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이때까진 바이러스에 매우 예민했기 때문에 누가 봐도 70세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이 8시에 보이면 왜 자기 시간대도 아닌데 나온 건지 괜히 얄미웠다.
어차피 사람이 워낙 많아 그들을 다 검사하기란 불가능했다. 인도가 모자라 다들 차도까지 내려와 걸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본 적은 그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다만, 너무나 기묘하게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조용히 걷기만 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수다스러운 것이야 다들 아는 것일 테고, 아이들 산책 시간만 해도 꽤 사람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성인 산책 시간에는 다들 아무 말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경계가 가득했고 서로 아는 얼굴을 만나도 짧은 인사만 하고 다시 걸음을 걸었다. 마치 걷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한 사흘은 정말 그랬다. 거리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 들리는 소리라곤 발걸음 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정도뿐이었다. 마치 세상이 음소거가 된 것 같았다.
산책 첫날에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었지만 하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몰리는 바람에 2m 거리 유지가 불가한 경우 실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사람 몰리는 걸 막겠다며 나이대별로 산책 허용시간을 다르게 한 게 오히려 대다수 시민이 오후 8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게 만들면서 역효과가 났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를 자꾸 내놓는지 화를 내기도 지쳤던 무렵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사람들이 몰리니 며칠 뒤부터는 경찰이 8시마다 차도를 통제해 인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곧 2m 거리 유지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실내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어길 시 100유로 벌금 청구 협박과 함께. 그 결과 이무렵 스페인은 전 세계에서 감염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은 조치가 시행 중인 나라가 되었다.
또다시 매일매일 조치가 세세해지고 수정되기를 반복했다. 집에서 1km 반경 내만 산책하라고 하기도 했고, 운동을 할 때는 마스크를 써라 했다 벗어라 했다가, 마스크에 필터 기능이 있는 건 또 금지하기도 했고 이 모든 와중에도 공원은 사람이 몰린다는 이유로 여전히 문을 굳게 잠가 두었다. 덕분에 거리로 사람들이 다 몰려 더 난리였지만. 그리고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아이들 산책 시간에 햇빛이 너무 세서 힘들다는 불만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며칠이 지나서는 또 흐지부지 산책시간에 대한 제한 조치는 해제되었다.
이윽고 이제는 전국이 아니라 각 도시 별 확진자 수나 대응사항에 따라 완화 조치를 달리 시행할 것이란 발표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