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거주자의 코로나 기록
이유 없는 산책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가능한 게 더 많았던 5월이었다. 3월에 시작된 국가비상령도 수차례 갱신되며 계속 진행 중이었다. 다만 이제 전국적으로 제한 조치를 동일하게 시행하지 않고 도시별로 차등을 둔다는 뉴스가 있었다. 즉, 확진자 수가 기준보다 적은 도시는 좀 더 많은 걸 하게 해 주고 그 반대라면 더 많은 제한을 둔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별로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어떤 도시 사람들을 테라스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는데 비해 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만 나갈 수 있었고 식당과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비교적 제한이 느슨해진 곳에선 외지인들이 와서 다시 바이러스를 퍼뜨리진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이런 분노와 경계는 코로나 초기부터 있었고 여전히 유효하다. 그 형태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초기에는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을 향했었고, 이후 도시별 차등 완화 조치가 시행되었을 때는 도시별로 넘어갔다가, 하반기부터 지금까지는 또 동네별로 격리와 해제를 반복하는 통에 동네별로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세대별로도 있다. 불과 며칠 전 본 뉴스에서도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여름이 되면 또 독일과 프랑스에서 관광객들이 와서 코로나가 더 확산될지도 몰라요!"
그곳의 누군가도 스페인으로부터 전해질지 모르는 코로나를 미리 불쾌해했으리라. 저 인터뷰를 들었을 때 내가 저 사람이 비난하는 '독일' 혹은 '프랑스'에 속하지 않는, 오해할 수도 없는 생김새를 가진 사람이라는 데 일순간 안도감이 들었었다. 실은 저 사람이 열거한 나라의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데 말이다. '타인'이라는 단어로 가볍게 치환될 수 있는, 그래서 결국을 나에게도 향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작년 5월, 마드리드 주민들은 여전히 많은 걸 할 수 없었다. 다른 도시들은 속속 제한이 완화되어 가던 와중에도 마드리드의 제한 완화는 중앙정부 승인이 나지 않았다. 한 간에는 마드리드 주정부 소속 정당과 정부 여당 간 기싸움으로 보았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마드리드에 확진자 수가 여전히 위험했기에, 비공식적으로는 마드리드 주정부가 중앙정부에 밉보여서, 마드리는 비교적 늦게 제한이 완화되었다.
제한이 완화되었던 첫 날 바로 시내에 갔다. 우선 맨날 보던 동네 말고 다른 풍경이 간절히 보고 싶었고 또 무엇보다, 생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제한 완화 첫 단계에서는 테라스 정원을 50%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매장 영업 재개가 가능했다.
다른 건 다 어찌 집에서 먹는다 해도 생맥주 맛만큼은 집에서 느낄 수 없는 무엇이었다. 생맥주를 엄청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격리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생맥주가 정말 너무나 마시고 싶었다. 오빠가 군대 첫 휴가 나오던 날 뭐가 제일 먹고 싶냐는 질문에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절대 즐겨 먹지 않는 '인절미'라고 했었는데 그와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아무튼 가장 먼저 생맥주가 죽도록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5월 26일 오후 7시 15분. 산타 아나 광장에서 그토록 그리던 생맥주를 마셨다.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그 일이 불가능해져 버린지 2달 반 만에 다시 맛본 테라스에서의 생맥주였다. 5월 말의 마드리드 날씨가 거진 그러하듯 푸르게 맑은 완연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