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혹은 타의에 의해 끊임없이 지금 하려고 하는 행동이 '필수불가결한 것인가'를 저울질한다. 저울이 조금이라도 '아니오' 쪽으로 기운다면 사회적 지탄과 개인적 비난을 받고 어떤 사회에서는 공개적으로 신상이 털려버리기도 한다.
이 필수불가결한 항목에 대한 규정은 지난해 3월 가장 강력한 외출제한이 시행되던 때 이미 끊임없이 교육받았다. 식료품과 의약품 등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 금융이나 행정적 절차를 이행하기 위한 활동, 재택으로 할 수 없는 업무의 수행, 긴급한 의료기관 방문 등이었다. 이 필수불가결한 활동에 개인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것은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가령 사랑 같은 것이다. 사랑하다 죽어버리라는 시구를 노래한 시인도 있었고, 젊은 베르테르를 비롯해 셀 수도 없이 많은 허구적, 비허구적 인물들이 정말 사랑 때문에 죽어버렸었는데도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이 되었다.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한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외출제한 기간 내내 각자 다른 집에 살고 있는 연인들은 서로 만날 수도 없었다.
가족 간의 사랑도 그러했다. 업무를 하기 위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직장동료들과 모이는 것은 허용되었을지언정, 직계가 아닌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고인이 직계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까운 가족이었다는 건 참작이 되지 않았다. 그건 개인적인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많은 노인들은 쓸쓸히 눈을 감았고 서둘러 흔적이 지워졌다.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에게도 이리 매몰찬데 여행, 그게 코로나 시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니, 여행까지 갈 것 없다. 집 앞 벚꽃만 보러 나가도 비난할 근거는 충분했다. 그래, 여행 그거 못 간다고 죽는 거 아니다. 누군가에겐 생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삶의 유일한 위로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희망이었지 모르지만 그거 좀 못 간다고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행한다. 내가 이토록 여행을 좋아하는지는 여행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난해 국가가 허용한 시기에 허용 가능한 범위에 맞춰 두 번의 여행을 갔다.
첫 번째 여행은 무르시아의 해변 캠핑장이었다. 몇 년 전에는 해변에 가면 10시간도 넘게 백사장에 누워 있을 수 있었지만 한번 햇빛 알러지가 크게 생긴 뒤로는 햇빛을 조금만 쐬면 두드러기가 일어나서 조심조심 노는 편이다. 낮동안은 텐트 옆 그늘에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워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늦은 오후에만 잠시 발을 바닷물에 적실뿐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는 래시가드를 입고 원 없이 놀아보기로 했다. (물론 스페인 해변은 탑리스를 하면 했지 래시가드를 입고 노는 사람은 없다.)
잔잔한 지중해라 파도를 거슬러 꽤 멀리 헤엄쳐 나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보통 발이 닿지 않는 곳은 무섭기 마련인데 저때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먼바다로 갈수록 바다가 더 잔잔해지고 해변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져 마치 세상에 바다와 나 단 둘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마치 바다가 나를 감싸주는 것처럼 그곳에 떠 있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남부 스페인의 햇살이 맞닿은 지중해 바다는 마치 내 체온과 같은 온도인 듯 따뜻했다. 오히려 가끔 해변 쪽으로 나와 몸을 일으킬 때면 세상의 무게가 다 나에게 쏟아지는 듯 무겁게 느껴지는 중력에 서둘러 다시 먼바다로 들어가야만 했다. 조금씩 조금씩 용기를 내 더 멀리 헤엄쳐 갔다. 수경을 낀 고개를 아래로 담가 바닥을 볼 때면 꽤 멀리 보이는 바닥에 순간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최대한 눈 앞의 물결을 보며 유영했다.
바르셀로나 여행은 늦여름에 갔다.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복작거리는 사람이 없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늦은 밤 대성당 주변을 산책하다 골목에서 오페라 버스킹을 듣기도 했다. 듣는 이가 거의 없는데도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던 사람들에게 나는 현금을 털어 15유로 정도를 모자에 넣어 주었다. 지난해 처음 본 실황 공연이었다.
이번 주는 부활절 주간이다. 성 목요일인 어제, 흐리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맑아지길래 시내에 갔다. 마드리드 주민들은 현재 이유 없이 주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시내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정말 자주 프랑스어가 들렸다. 뭔가 외국인 같아 보인다 하면 여지없이 프랑스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여행객이 올 거란 생각은 못했기 때문에 마드리드에 살던 프랑스인이 이렇게 많았었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실제로 많은 프랑스인이 마드리드로 여행을 왔다 한다. PCR 음성만 내면 여행 올 수 있고 수개월간 레스토랑과 술집 영업이 금지된 프랑스에 비해 마드리드는 밤 11시까지 영업이 가능하고 거의 도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이라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관광국가에 사는 느낌, 그 느낌이 벅차게 반가웠다.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가도 지난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게 달라졌다. 지난봄 이 시간에는 집에 갇혀 오늘을 무슨 생필품 구매를 핑계로 슈퍼를 다녀올까 하는 생각만 했다. 올해는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케이크를 곁들인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다음 주 화요일에는 미술관도 예약해두었다. 벌써 민소매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다이어트를 해서 올여름은 좀 더 과감히 입어보리란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여행이 이기적인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할 수 있을 때마다 여행을 했고 또 할 것이다. 내 여행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고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견딜 수 있는 위로가 되어주는 건 이런 필수불가결하지 않은 활동이었다. 고작, 여행이었다.
어제(21.4.2)의 노필터 마드리드 - 점심 먹고 잔디밭에 누워 노숙자마냥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