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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Aug 06. 2019

<김복동>, '김복동'이라는 아픈 역사

브런치 무비패스 #32


<김복동>, '김복동'이라는 아픈 역사


위안부 피해 할머니 김복동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매주 수요집회에 나가고 아픈 몸을 이끌고 전 세계를 다닌다. 자신이 뭔가를 해야 이 일이 더 많이 알려질 거라고 말하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2019년 1월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영화 <김복동>의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일본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하라는 것이다. 큰 배상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지난 시간을 되돌리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죄하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라는 단서다. 이제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도 일본은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되풀이한 말은 '죄송하다'였다. 수요집회가 1398회차(7/31 기준)가 되었지만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다. 낮시간이라 갈 수 없다는 핑계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수요집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해 잊고 있었다는 것은 죄송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잊는다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을 일인데도 언론에서 한 줄 언급하기 전에 먼저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이게 일본이 바라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더 분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김복동>은 큰 울림이 있었다. 부채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영화가 담담하게 그려내는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컸다. 다큐멘터리답게 감정의 연출을 배제했지만 그럼에도 눈물이 흐르고 몸이 떨렸다.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큰 감정의 동요가 있었고 일본의 만행은 더욱 용서하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흐름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김복동>은 매우 객관적인 시선과 흐름을 갖고 있다. 치우친 이야기라고 느꼈다면 그 아픔의 역사가 치우쳤다는 얘기일 거다.



영화는 단순히 일본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피해자-가해자 구도만 보지 않는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해결이랍시고 만든 '화해치유재단'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화해는 앞뒤가 맞지 않으며 더더욱 당사자를 배제한 합의와 배상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단순히 자신들의 공적 올리기에만 몰두한 그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이용했을 뿐이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소녀들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나라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왜 이런 명확한 일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단 말인가.



강제진용배상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시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당장 먹고 살 일이 급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 주는 것이 진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일까? 경제가 힘들어지고 주식까지 곤두박질 치지만 다시 그들에게 굴복한다면 우리는 영영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는 일은 먹고 사는 문제보다 우선하는 일이며 그것을 알고 행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2019년 1월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영화로 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마 <김복동>은 상업영화들에 밀려 제대로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하고 예술영화전용관에서 겨우 볼 수 있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 제목이 <김복동>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김복동'은 그 이름 자체가 모두가 기억해야 할 슬픈 역사이기 때문이다. 제목을 듣고 한 번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떠올린다면 먼저 떠나신 김복동 할머니도 덜 슬퍼하지 않으실까.


아픈 역사는 잊히기 쉽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잊어서는 안 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것 자체로 역사가 되어 남을 테니까.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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