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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9. 2023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읽는다는 것.

230419 수요일

언제나 입이 방정인 건지 뭔지.

작년에 술김에 맥주집에서 도원결의로 독서모임 연장을 약속했었다.

호기롭게 모임 연장을 하고 책을 정한 뒤 리더에게 3번째 책 리드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3번째 모임을 하기도 전, 2번째 모임에서 탈퇴하고 나왔지만.


그리고 계절이 지나 새해가 된 후, 다시 독서모임을 들어갔다.

기존에 만났던 리더가 이끄는 반에 다시 들어갔다. 

마지막 책은 미리 정하지 않고 모임원들끼리 서로 추천해서 투표하자고 했는데 

내가 추천한 책이 1표 차이로 선택됐다. 


문득, 그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생각나서 리더에게 이번 책 발제는 내가 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사실상 마지막 모임이기도 하고, 리더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힌 터라 마무리를 내가 지어도 되나? 싶었는데 선뜻 오케이 해준 그 덕분에 마지막 발제와 리드를 맡게 됐다.


그렇게 재작년에 구매하고 앞부분만 조금 읽었다가 읽지 못했던 책을 드디어! 완독 했다.

한 번은 정독, 두 번은 챕터별로 인덱스 훑어보기, 세 번째는 발제문 만들며 다시 훑어보기



전공책도 이렇게 깊게 읽어본 적이 없었다.


각 철학자들의 철학을 정리하고, 덧붙여진 저자의 얘기를 덧입히고 이 책에서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지 정리했다. 2번째 훑어볼 땐, 내가 정리한 키워드가 맞는지 어떤 맥락으로 이어 설명할 수 있을지 정리했고 3번째엔 정리한 문장을 바탕으로 같이 나눌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더니, 새삼 이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알게 됐다.

발제문을 리더에게 넘기며 첨삭을 요청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뜸해서 걱정된다고 했더니

원래 그렇다는 답이 왔다. 동시에 마무리를 향해 갈수록 외롭고 쓸쓸하단 말과 함께.

한 없는 공감을 보내며 발제문을 보내고 나자 비로소 한숨이 쉬어졌다.



분명 가볍게 읽은 책인데 마음이 무겁게 다가오는 건 '책임감'때문인가 싶었다.

거짓말처럼, 리더가 회사 업무로 인해 이 날 오지 못한다고 말하며 대리진행을 요청했다.

안 그래도 겸사겸사 모임주최를 해볼까 하던 찰나에 베타체험 한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러니까 수락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음은 가벼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엄중한 무게가 짓눌렀다.


그래서일까, 무슨 책을 읽어도 흥미롭게 읽어지지 않았다.

모임 책을 읽기 시작한 후부터 발제문을 올리기 전까지 책 한 권을 붙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어떤 질문을 이끌어내는 게 좋을까,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까

여러 가지 준비와 질문들이 머릿속을 흩뜨렸다.


인덱스로 표기한 문장들과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결합시켜 나눠볼 수 있는 질문들을 한 두 가지씩 정리 후 발제문을 넘겼다. 그러고 나니 방치했던 책들이 눈에 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빌렸던 책들을 읽고 나니 머리가 환기된다.


음, 한 권을 깊게 읽고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구나.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책을 깊게 읽고 질문을 만들어내고 모임을 이끌어가겠나 싶다.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 하면 0이고 하면 조금이라도 오르는 거니까.

경험치를 쌓는다는 마음으로.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다. 이 울렁거리는 마음의 종착지는 토요일이 돼서야 알겠지.

차주 수요일엔 울렁거린 토요일의 기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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