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것은 자기 계발이었을까요 (2)
무기력과 나태에 빠진 채 4월 한 달을 보냈다.
성과,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뭔가를 하는 데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만 골라 읽었고 읽다 흥미가 떨어지면 금세 덮었다.
한 권을 완독해야 된다는 압박감 없이 책을 놓았다 잡았다.
꾸역꾸역 정리하던 일기를 몰아 쓸 때가 많았다.
쓰기 싫은 날엔 점심엔 뭘 먹었고, 무슨 일을 했고 하루를 나열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책을 완독 하지 않아도, 일기를 잔뜩 밀려 써도
삶은 대단히 뒤처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였다.
친구와 미세먼지를 잔뜩 마시며 봄나들이를 떠난 날엔 자지러지게 웃으며 하루를 보냈고
마음이 맞는 언니를 만나 술 한잔 기울이는 날엔 갖고 있던 고민거리를 털어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밀린 이야기를 잔뜩 풀며 서로의 일상을 보듬었고
강박에 사로 잡혀있던 나를 쓰다듬고 잔뜩 보듬었다.
대단한 결과도 없었지만 대단한 실패도 패배도 없는 일상이었다.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 나간 자기 계발은 독이었구나
한 바탕 내려놓고 나니 슬금슬금 다시 해볼까? 마음이 기울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쉼 없이, 내 마음과 몸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작정 달려 나가기만 했다.
이대로 채찍질하며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다.
회고와 반성 없이 나아가는 건 수정할 틈을 주지 않았고 재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결과만을 추구했으니 제 풀에 떨어져 나가떨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동시에 남들 눈을 굉장히 의식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주변인들에게 나는 프로 갓생러로 알려져 있는데 스스로를 갓생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던 일들이 남들에겐 대단한 일들이었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해 줘도 스스로에겐 칭찬될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쳐도 지쳤다고 말하지 않는 것. 지쳤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내가 강박적으로 일궈온 일상들이
산산이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열심히 사는 일에 지쳤다는 걸 스스로에게 선언하고 주변에게 넋두리하듯 얘기했을 때
오히려 그들은 지치는 게 당연하다며 그냥 한 텀 쉬어간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해 줬다.
비난도 비판도 비아냥도 없었다.
왜 상상 속의 나는 자꾸 나쁜 시나리오만 쓰는 걸까.
한바탕 쉬어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강박을 내려놓고 뒤돌아보니 숨통이 트였다.
다시금 나아갈 힘이 생겼다.
동시에 이 의욕을 장작 삼아 몰아치듯 이것저것 해내려고 하면 분명 금세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조금씩 사뿐사뿐 발자국부터 내딛어야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고 뭔가를 한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회고도 필요하고 쳐낼 건 쳐내야 하며 목표 설정도 중요하다.
자기 계발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뒤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어디쯤에 와있는지, 무얼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 멈춰 서서 돌아볼 때
다시 나아갈 힘이, 정비할 힘이 생긴다.
읽고 쓰는 일에 종사하고 싶으니 꾸준히 써야겠다.
글을 잘 쓰고 싶으니 많은 글을 읽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야겠다.
모든 건 체력이 받쳐줘야 하니 체력 증진을 위해 운동을 가야겠다.
이 모든 걸 강박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지.
5월이 시작됐다.
근 한 달 반 만에 헬스장에 출석했다.
오버하면서 이것저것 하지 않고 가볍게 유산소만 했다.
바닥난 체력을 느꼈지만, 천천히 끌어올려야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일상을 기록하고 그날의 생각을 정리해야지.
눈으로 보여야 한다면 잘 보이는 곳에 두어 스스로를 칭찬하며 토닥여야지.
SNS에서 독서, 글쓰기, 운동으로 단기간에 어떤 성과를 냈다더라에 휘둘리지 말아야지.
벗어날 줄 알았는데 다시 자기 계발 삼대장으로 돌아왔다.
이래서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건가.
내가 했던 건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착취였다.
이제야 자기 계발의 영역에 들어온 기분이다.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앞으로를 나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