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곧있을 둘째와의 육아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인들과 함께 2013년 5월 17일부터 시작될 황금연휴를 즐기기로 했다. 펜션예약을 끝냈고, 틈틈히 캐리어에 짐을 싸두기 시작했다.
2013년 5월 16일.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뱃속아기가 놀지 않았다. 막달엔 원래 태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요녀석, 자고 있는건가?
하지만 점심때가 넘어가도 뱃속아기는 움직임이 없었고, 나는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유치원에 있는 첫째를 데리고 부랴부랴 다니던 병원으로 갔다.
정기검진일도 아닌데 왜 오셨냐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뱃속아기 태동이 없어서 왔다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어머니 원래 막달에는 태동이 잘 안느껴져요~ 잘 아시잖아요' 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지금은 담당선생님께서 다른 산모들 진료중이니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왠지 그걸 기다렸다가는 아기가 잘못 될지도 모른다는 다급함에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 달려가 외쳤다.
선생님!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구요!!
지금 우리 아기가 숨을 못쉬는것 같단 말이에요!
빨리 우리아기 좀 어떻게 해주세요!
나의 다급함에 간호사선생님은 일단 담당선생님을 콜 하셨고 동시에 내 혈압을 체크했는데, 평소에는 멀쩡하던 혈압이 그날따라 고혈압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나보다. 담당선생님도 그냥 넘어갔으니까.
다행히 바로 와주신 담당선생님은 태동검사기를 가져오라 지시하셨고 나는 첫째와 함께 환자침대에 누워서 4시간을 태동검사를 받았다.
'음..어머니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긴 한데... 아기가 태동검사에 반응이 없긴 한데요...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으니, 내일 아침일찍 다시오셔서 검사를 다시 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펜션여행을 가기로 한 날 아침. 지금 여행이 대수랴. 밤새 뒤척이다 8시가 되자마자 신랑에게 첫째를 맡긴뒤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또 태동검사만 2시간. 역시나 아기는 검사기에 반응이 없었다.
담당선생님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써주셨다.
소견서를 들고 종합병원 산부인과에 가서 접수를 하니 또다시 태동검사기가 등장했다. 태동검사기만이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가 숨은 쉬고 있는지,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초음파기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태동검사기만 몇시간째 주구장창 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또다시 태동검사를 3시간여를 하고 나서야 의사선생님은 응급제왕절개를 한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태아에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 하셨다.
세상에! 그걸 태동검사 9시간만에 알아채다니! 의사선생님들이야 정확하게 검사를 하고 진단을 하는 것이
맞는 이치이건만, 나는 엄마의 촉으로 어제아침부터 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이치에 맞지않게 분해 하고 있었다.
수술준비를 마치고 수술실에 누워있는데 너무 추워서였을까. 눈물이 한가득 쏟아졌다.
바로 전신마취가 시작되었고 2013년 5월 17일 14시 57분 응급제왕절개로 태어난 우리 둘째는 엄마품이 아닌 NICU에 있는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위해 싸뒀던 캐리어는 펜션이 아닌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2.5kg체중으로 저체중아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주수를 다 채우지 못했고, 제왕절개후 자가호흡이 없어 응급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며,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수혈을 했습니다. 청색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진 상태이고, 일단 아기가 비슷한 주수아기들에 비해 빠는 힘이 없어 젖병을 전혀 빨지 못해 코에 줄을 삽입해 분유나 모유를 공급해 줄 계획입니다. 어머니가 태동을 느끼지 못하셨던 그 시점 전후로 아기 뇌에 산소공급이 안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으나 오랜 시간이었을지 짧은 시간이었을지 알수 없고, 그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이건 앞으로 아기를 잘 지켜보면서 추후에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리고.. 어머니가 참 예민하신가 보네요. 보통 이런 경우 아이가 뱃속에서 잘못될 경우도 있는데 어머니가 아기를 살리셨어요.
그러니 힘내시고 좋은 쪽으로 생각합시다 우리.'
당시 수술직후 아픈몸을 이끌고 우리 아기가 왜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하는지, 어디가 어떻게 안좋은건지 구체적인 답변을 들으러 갔을때, 신생아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얼마나 친절하고 배려깊은 말씀이란 말인가!
나는 수술 직후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다는 말을 듣고 모든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눈물만 났다.
둘째 임신 후 살이 30킬로 이상 찐 것도, 첫째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가며 좋은 태교를 못 해준 것도,
첫째는 세시간만에 자연분만으로 순풍 낳았으니, 둘째도 어쩜 한시간만에 순풍 낳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마저 들었던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미안했다.
그런 나에게 아기를 살렸다는 교수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를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작았던 너의 발 나는 5일 후 퇴원을 했고, 퇴원 후에는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냉동실에 얼려 우리 둘째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 모유를 간호사선생님에게 건네고 둘째에게 인사를 하고 오기를 매일같이 반복했다.
둘째는 인큐베이터에 2주가량 있다, 마지막 1주는 NICU에 입원한채 여러가지 검사를 했고 검사결과 특별히 나쁜 징후가 없었기에 퇴원이 결정되었다.
코에 연결된 줄에 의지하여 모유를 먹던 둘째
교수님께서는 퇴원후에도 아이의 뇌발달상황을 체크해야 하니, 일년에 한번씩 미숙아 정기 발달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세돌이 될때까지 그 검사는 계속되었다.
마지막 검사때 발달검사소견상 별다른 이상징후가 없으니, 더는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집에 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삼신할머니가 정말로 계셔서 우리 둘째를 돌봐주시고 계시는 것만 같았다.
그 아기가 벌써 8살이 되었다. 딸 키우는 재미가 이런거구나 라는걸 몸소 보여주시는 우리집 귀염둥이.
예쁘게 자란 딸아이를 보면 사연을 아는 지인이나 친구들은 모두를 나에게 말한다.
'넌 정말 대단한 엄마야, 만삭때 다가오면 태동 거의 신경안쓰잖아,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채고 병원으로 갔을까. 지금 생각해도 진짜 대단한거 같애'
하지만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저 나는 뱃속에 있는 아기가 보내는 신호에 충실했던 거 같다. 그저 그 뿐인거 같다. 엄마를 만나고자 했던
딸아이의 그 신호를 그저 놓치지 않았을 뿐이었던 거 같다.
달님아, 내가 널 살린게 아니고, 네가 엄마에게 신호를 보낸거야.
엄마, 보고 싶어요 하고.
사랑해, 우리 귀염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