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질대로 늘어진 우리 연애
대학교 4학년, 연애도 4년차. 더운날 엿가락 처럼 늘어지는 몸처럼 우리의 연애도 지겹기만 하다. 관성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편안하지만, 설레지 않는 사이. 쉽게 쉽게 집으로 사들이는 중고물건 같다. 언제부터 내 작업실에 있었는지 모르겠는것도 꼭 닮았다.
선풍기를 사서 덕우랑 돌아오는 길, 까무룩 잠든 와중에 옥수역 환승 방송은 왜그렇게 선명하게 들렸나 모른다. 오금이나 대화방면으로 가실 고객님께서는 이번역에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한군데를 쳐다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는 선풍기가 꼭 나같아서, 그걸 고정시켜보겠다고 달달거리는 선풍기 소리를 무시하고 고군분투하는 덕우에게 괜한 짜증을 냈다. 너 이러는거 정신사나워.
덕우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 덕우가 잘못되었을까봐가 아니라, 내가 감옥에 가는 줄 알고 정말 무서웠다. 선배가 내 면회를 몇 번이나 와줄까? 두려웠다.
나의 이실직고를 듣고 찌질하고 착한 내 남자친구는 물건 몇 개를 소심하게 세워두고 나갔다. 영화에서 보면 화나는 대로 다 집어 던지고 물건을 망가뜨리던데. 본인이 치운 것 중 몇 개만 다시 세워놓고 나갔다. 딱 내가 다시 돌이킬 수 있을 만큼만. 덕우가 나가고 난 자리엔 목소리만 남아있다. '왜 나를 그렇게 대하지 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