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아
너는 내 블로그를 보지 않지만 나는 그래서 여기에 편지를 쓴다. 왠지 모르게 너한텐 낯간지러운 말 하는 게 유독 어려울 때가 있더라고. 그렇지만 이렇게 써두면 언젠간 내가 너에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겠니?
출국을 앞두고 전화를 하다가 어차피 내일도 연락할 건데 뭐 거창한 인사는 않을게, 쉬어라 하고 끊는데 그 짧은 말을 왜 못 마치고 목이 메었나 몰라. 우리는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덤덤하게 사는 사이인데 아무리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아도 비행기로 몇 시간 걸리지 않아도 마음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봐.
어릴 때 친구는 어릴 때 기억만 파먹고 살아야 해서, 사회에 나오고 나서는 자꾸자꾸 줄어드는 대화거리에 더 이상 예전만큼 편안하지 않고 그렇게 멀어지게 된다는 글을 본 적 있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학생활도 많이 달랐고 그 흔한 취업 준비도 같이 안 했지. 언제나 최소 비출산 최대 비혼을 외치는 나와 달리 어느새 좋은 짝과 평생을 약속하고, 나랑 만나서 언젠간 다가올 육아에 대한 고민을 농담거리 삼는 너를 보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이 또 걸어갈 길이 많이 다르다고 한 번 더 느꼈어.
그런데 그러면 뭐 좀 어떻나 싶다. 이제는 새해가 밝은 것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에도 둔해지도록 평일과 주말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꾸 잊혀가는 10대 시절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난 그래도 좋은 것 같아. 고등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키만 똑같고 모든 게 달라졌지만 그때의 나를 좋아하고 안쓰러워도 했던 사람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는 건 멋진 일이야.
니가 나에게 모든 걸 미주알고주알 전하진 않아도 일상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항상 나에게 마음으로 전한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 문득문득 들 때마다 그래도 이런 외로운 마음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돼. 그게 같은 동네 면 어떻고 서울 어귀 면 어떻고 외국이면 어떻고...
아빠를 보러 방학 때 갈 때마다 이골이 난다던 네가 거기 살게 될 줄 은 정말 몰랐지만. 내가 여대에 갈 줄은, 그 회사에 갈 줄은, 걔랑 만날 줄은, 뭐 누가 알았겠어.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변주의 연속에서도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주자. 조심히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