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영 Dec 18. 2022

『사람, 장소, 환대』 : 프롤로그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속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로부터 『사람, 장소, 환대』의 주제를 이끌어낸다.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회색 옷을 입은 어떤 남자(악마)에게 금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행운의 자루와 자신의 그림자를 바꾼다. 주인공은 자신의 거래가 잘못된 것임을 금방 깨닫는다. 그림자가 없는 자신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배척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악마를 찾아가 그림자를 돌려달라고 한다. 악마는 거절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청순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청혼을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을 거부한다.


절망에 빠진 주인공 앞에 악마가 나타나 그림자를 돌려줄테니 영혼을 달라고 한다.주인공은 악마의 제안을 거부하고 금을 만드는 자루를 깊은 물 속에 던져버린다.



돈도 그림자도 없어진 주인공은 방황하다 우연히 한 걸음에 칩십 리를 가는 전설의 장화를 얻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지구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자연을 연구한다. 그는 연구 결과를 모아 여러 권의 중요한 책을 출간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 한다.



 저자 김현경은 그림자의 상실을 일종의 스티그마, 즉 어떤 사람의 사람자격(personhood)에 가해진 손상으로 본다. 영혼을 상실하지 않았지만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능력, 즉 자기 신체의 일부인 그림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이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나이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 즉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배척당한다. 다시 말해 사람취급을 못받는다. 사람이지만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림자가 없는 사나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림자의 상실은 일종의 스티그마(stigma)이다. 스티그마란 "사람들로 하여금 외면하고 배척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흔적, 상처'를 말한다.



고대 헬라 사회에서 노예나 죄수, 범죄자, 반란자 등 범법자나 윤리·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존재나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자들의 신체에 찍는 일종의 '낙인'(烙印)을 가리켰다. 이는 치욕(恥辱), 오명(汚名), 오점(汚點), 불명예, 흠, 결점 등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하게 만들고 배척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성향을 지닌 '흔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티그마 [stigma] (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2013. 9. 16., 가스펠서브)



 신체적 훼손이 있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기형일 경우 스티그마를 갖게 된다. 그러나 스티그마는 육체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인도 카스트 제도의 천민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일 수 있다. 이런 비가시적 스티그마는 그러한 상호작용이 적용되는 사회(장소)로부터 벗어나면 탈출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사나이는 '한 걸음에 칠십 리를 가는 장화'를 신고 장소를 벗어난다. 즉 사나이가 그림자가 없는 인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로 '비장소화'를 통해서이다.


 여기서 김현경은 자신의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밝힌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프롤로그 말미에는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 안내된다.

1~3장 :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아렌트의 접근과 유사)
4~5장 :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형식적 평등과 현실 속에서는 물질적 조건에 따라 사람대접을 받는 실질적 불평등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상호작용 질서 대 사회구조라는 고프먼의 이분법 적용)
6~7장 : “우리가 환대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면, 우리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요구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6, 7장에서 주어진다.(절대적 환대)



 '사람대접' 받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극소수의 슈퍼갑, 소수의 갑 이외에는 모두 사람대접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을들의 세상이다. 그래도 을은 '사람 대접'까지는 못받아도 최소한 '사람 취급'은 받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최소한의 취급도 못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아직 우리 사회로 편입되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람취급을 받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은 중요하다. 1~3장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나오는 내용이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의 문제다. 갑과 을은 형식적으로 평등하다. 모두 평등하며 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말 모두가 평등한 사회일까? 갑과 을 사이에는 높은 불평등의 벽이 존재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현실이라 인정하는 이 평등과 불평등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답을 4~5장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을 해 달라고 어떻게 요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6~7장에 나온다. 


 어렵고 추상적인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을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사람 취급', '사람 대접'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은 절대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거의 모든 인간 집단에서 이 문제는 몸서리쳐질 만큼 현재적이고 강력한 문제이다. 사고의 차원이 아니라 감정과 몸의 차원에서 정말로 절박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어려운 책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가슴이 너무 아련하게 아파온다.


 모두의 문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로 사람 취급, 사람 대접을 받고 싶은 분들이 이 책에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앞으로 장별로 정리하는 글이 그런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에로스의 종말] 7장 - 이론의 종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