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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Nov 25. 2024

허스트하우스 : 성품

 중요한 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동료를 돕기 위해 회사 규칙을 어기고 자료를 대신 작성해 주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동료가 준비 시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허락받지 않은 직원간 공동 작업을 임의로 해서는 안된다는 회사 규정을 어긴다는 두려움도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전통적인 윤리학은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의무론자들은 "회사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료가 개인적 문제로 준비를 못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칙의 경직성으로 인해 실질적 상황에 유연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한 규칙만으로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결과주의자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동료를 도와 프로젝트 결과가 좋아질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규칙 위반이 적발되어 둘 다 처벌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동료가 이러한 도움에 의존하게 되어 장기적으로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허스트하우스의 덕 윤리: 새로운 관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로절린드 허스트하우스(Rosalind Hursthouse)는 덕 윤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합니다. 그녀의 대표 저작으로는 'On Virtue Ethics'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라고 제안합니다.


 허스트하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라 덕(virtue)을 강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중용'이라고 표현하며, 이는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덕이란 단순한 규칙이나 결과 계산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올바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성품입니다. 이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도덕적 실천을 이끌어냅니다. 예를 들어, 용기는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지혜입니다.


 회사 상황에서 덕 윤리를 적용한다면, 단순히 규칙을 따르거나 동료를 돕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성품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동료를 도우면서도 회사 규칙을 존중하기 위해, 규칙을 완전히 어기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덕 있는 판단입니다. 이는 규칙이나 결과보다 중요한 성품을 발휘하여 상황에 맞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복과 번영: 덕 윤리의 목표

덕 윤리의 궁극적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eudaimonia'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행복과 번영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허스트하우스가 말하는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나 만족이 아닌,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성취를 포함하는 조화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과 일치하며, 이는 '번영'이라는 행복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실현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동료의 실수를 발견했을 때, 덕 있는 사람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실수를 지적하되 동료의 자존감을 지키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는 단순히 규칙을 따르거나 결과를 계산하는 것을 넘어, 상황에 맞는 성품을 발휘하여 지혜와 배려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실천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지침

 덕 윤리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실천됩니다. 가정에서 자녀와의 대화, 직장에서의 의사결정, 온라인에서의 소통 방식 등 모든 순간이 덕을 실천할 기회입니다. 예를 들어, SNS에서 논쟁적인 게시물을 접했을 때 비판적 사고와 공감을 발휘하거나, 직장에서 상사와 갈등 상황에서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덕 윤리의 실천입니다. 환경 문제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감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허스트하우스의 덕 윤리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실천적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 규칙 이행이나 결과 계산보다, 상황에 맞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성품은 우리가 도덕적 실천에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행동 지침을 넘어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는 개인의 행복과 성장뿐만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덕성이 공동체의 번영으로 이어지며, 각 개인이 덕을 실천할 때 공동체의 질도 함께 향상됩니다. 허스트하우스의 덕 윤리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실천적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 규칙이나 결과 계산을 넘어, 상황에 맞는 올바른 판단을 가능케 하는 성품의 함양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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