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영 Dec 07. 2024

반박할 수 없는 진리는 과학이 아니다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사건으로도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반박 불가능성은 통념과 달리 그 이론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다."(A theory which is not refutable by any conceivable event is nonscientific. Irrefutability is not a virtue of a theory (as people often think) but a vice.)(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중에서)


 칼 포퍼가 한 이 말은 과학이 단순히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시험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과학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점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전통적으로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포퍼는 “검증”만으로는 과학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조건에서는 맞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포퍼는 “반증가능성”을 제안했습니다. 과학 이론은 검증 가능성만이 아니라, 그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조건을 가져야 합니다. 이 점은 단순한 주장이나 철학적 개념과 과학적 이론을 구분짓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반증가능성이란 어떤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하지만 “우주는 신비한 힘으로 움직인다”는 말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반증가능성은 과학을 더 겸손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겸손하다는 것은 과학이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현재의 이론이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과학은 완벽한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점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진리에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고전역학은 특정 조건에서는 잘 작동했지만, 빛의 속도에 가까운 물체나 강한 중력장에서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며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과학이 새로운 증거와 아이디어를 통해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우리의 여러 가지 신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그것을 반박할 가능성을 닫아버립니다. 예를 들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그 이론을 반박하는 모든 증거를 “음모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합리적인 토론을 방해하고 사회적 불신을 조장합니다. 또, 어떤 이념이 다른 의견을 배제하거나 왜곡하며 자기 이론을 강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퍼는 우리가 자신의 신념을 열어두고 비판을 받아들일 때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포퍼는 그의 다른 책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반증가능성을 정치와 사회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들이 닫힌 체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절대적 진리로 간주하며 변화를 거부했고, 헤겔은 역사를 필연적 과정으로 봐 개인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마르크스는 계급투쟁과 혁명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반면, 열린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비판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개선해 나갑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열린 체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각과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야 서로 열린 자세와 마음으로 대화하고 타협하여 민주적인 합의점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극단적으로 치우친 정치적 신념에 갇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닫힌 신념과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포퍼의 철학은 현대에도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민주주의는 열린 체계를 지향하지만, 권위주의와 극단적인 이념은 여전히 닫힌 체계를 만들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일부 이념은 반대 의견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를 퇴보시킬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비판적 사고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과학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 나은 이해와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며, 우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