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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 부족함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by 정지영

"사랑은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Loving is to give what one does not have, to someone who does not want it.)(자크 라캉, <세미나 XII> 중에서)


라캉은 "사랑은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처음엔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관계와 사랑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결핍을 드러내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는 데서 시작됩니다.


라캉의 사랑론은 플라톤의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플라톤의 "심포지엄"에서는 사랑(에로스)을 결핍(페니아)과 풍요(포로스)의 자손으로 묘사합니다. 페니아는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포로스는 충만함과 창의적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라캉은 이 신화를 통해 사랑이 단순히 부족함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결핍과 풍요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긴장은 인간이 서로의 결핍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관계를 창조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라캉은 인간을 '결핍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때 친구나 연인을 찾아 그 공허함을 메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동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 관계는 단순히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서로 나누는 과정입니다.


라캉에게 사랑은 욕망과 복잡한 관계를 맺습니다. 욕망은 '가지지 못한 것'을 추구하는 끝없는 움직임입니다. 반면 사랑은 이 욕망의 방향을 새롭게 바꿉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결핍을 깨닫고 그것을 상대에게 솔직히 표현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행위는 단순히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의 추구를 멈추게 합니다. 대신,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고 서로의 결핍을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욕망은 단순히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전환됩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준다"는 말은 이 점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상대에게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며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상대는 그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새로운 관계는 단순히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 깊은 신뢰와 이해를 쌓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상대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욕망의 일반적인 흐름(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노력)을 뒤집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실패가 아니라, 욕망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인간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라캉은 사랑을 세 가지 심리적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된 사랑과 결핍, 그리고 욕망과 사랑의 변증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합니다:


상상계 : 상상계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모든 결핍이 채워지는 이상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완벽한 합일의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 모든 결핍이 채워질 것이라 상상합니다. 하지만 이는 환상일 뿐입니다. 이 환상은 우리 안의 결핍을 마치 외부에서 완전히 메울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상징계 : 상징계는 언어와 사회적 규범을 통해 표현되는 세계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언어와 규칙으로 구조화됩니다. 하지만 소통의 어려움과 오해가 뒤따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해"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는 결핍을 드러내고도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실재계 : 실재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의 근본적인 영역을 뜻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그 불가능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를 인정하면 더 진실된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실재계에서 사랑은 이상적이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진정한 연결을 찾는 과정입니다.


라캉의 사랑론은 우리에게 역설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완벽한 사랑은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결핍을 공유할 때 관계는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을 찾는데만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라캉은 이러한 시도가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사랑은 이상을 추구하기보다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결핍은 약점이 아니라 진정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입니다.


현대인들은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다 좌절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라캉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사랑은 완벽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지지 않은 것을 주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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