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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10. 2024

사자의 말을 이해하려면 사자가 되라


"사자가 말을 할 수 있어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If a lion could talk, we could not understand him.)(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 말을 우스개소리로 건네고 있는 걸까요? 만약 사자가 인간처럼 말을 한다면,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문장은 언어와 이해에 대해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만약 사자가 인간처럼 말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우리가 그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요? 비트겐슈타인은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단지 단어와 문법의 조합이 아닙니다. 언어는 우리의 삶과 경험이 담긴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가 언어 속에 녹아 있죠. 사자를 예로 들어볼까요? 사자가 "사냥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방식으로, 가령 스포츠나 취미로서의 사냥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자의 사냥은 우리의 사냥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사냥을 스포츠나 취미로 여기기도 하지만, 사자에게 사냥은 생존 그 자체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언어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그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사자가 살아가는 방식을 전혀 모른다면,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은 사자와 인간의 차이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도 적용됩니다. 같은 말을 사용해도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세요. 어떤 사람들에게 가족은 부모와 자녀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조부모나 사촌, 심지어 친구들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서구 문화에서는 성인 자녀들이 독립해 떨어져 사는 것이 더 일반적일 수 있습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화와 관습에 따라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문화에서는 가족이 부모와 자녀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조부모, 사촌까지도 포함할 수 있죠. 같은 단어라도 삶의 방식과 경험이 다르다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해란 단순히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단어가 담고 있는 삶의 맥락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점에서 언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언어게임(Language Gam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는 언어가 단순한 말이나 글의 규칙이 아니라,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축구나 체스 같은 게임에서 각기 다른 규칙이 있듯이, 언어도 각 상황마다 다른 규칙과 맥락 속에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행위는 단순히 단어를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의존, 또는 도움 요청의 맥락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언어는 삶의 다양한 활동과 맞물려 있습니다. 언어는 단지 말과 글의 규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특정 방식 속에서 사용됩니다. 마치 게임이 각자의 규칙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듯, 언어도 삶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언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비트겐슈타인은 여기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진정한 이해는 단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이나,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과 소통하려면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바로 이 점에서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언어는 삶의 반영이기에, 그 사람의 삶과 세계를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자가 말을 할 수 있어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란 말은 단순히 사자와 인간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이 문장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계를 깨닫게 하고, 동시에 더 나아가 노력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을까요? 같은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고,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건 언어 능력이 아니라 상대방이 살아가는 독특한 삶의 공간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서점에 가 보면 말이나 발표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 속에는 말을 잘 하는 유용한 기술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발표를 할 때 책 속에서 배운 기술들이 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듣는 사람에게 대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사소통은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삶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사람의 말을 잘 하는 사자가 있습니다. 그 사자의 말을 이해하려면 사자가 되어 보아야 합니다. 그건 사자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자의 삶을 이해하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사람이 사자인가요? 내게 말을 건네는 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의 말이 아니라 삶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할 겁니다. 이해의 어려움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공감과 연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거울입니다.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언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준비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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