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dypoty Jan 07. 2024

다이어트와 요가 그 사이 어딘가

아무튼, 다이어트

태초부터 운동신경은 부여받지 못한 몸이라 아무런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던 체력장에서도 유연성에서만큼은 나름 최상급을 받았지만 남자 친구들에겐 팔이긴 원숭이라며 놀림받기 일쑤였다. 그 당시엔 파워 내향인이었던 나는 잘해도 놀림받을 바에야 아예 이목을 끌지 않는 위치에 서자, 늘 그렇게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기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특별 활동 시간엔 당연스럽게 가장 인기가 없었던 요가 수업을 선택했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방송 댄스나 좀 더 활발한 활동 수업이 유행이었던 덕분이었다. 요가 수업을 신청하고 나서야 엄마가 보던 요가 책을 몇 번 뒤적여 보며 이상한 몸동작을 하는 활동이구나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첫 요가 수업. 쭈뼛쭈뼛 옷을 갈아입고 보이지 않는 구석자리 매트에 자리 잡았다. 요가실은 낮이었지만 암막커튼으로 가려 포근하게 어두웠다. 전 수강생들이 남기고 간 온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느낌. 빠르지 않게 시간을 들여 동작을 완성도 있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운이 좋게 친절한 요가선생님을 만난 것이겠지만 그 당시 만난 요가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신경 써 주셨다. 완벽한 동작을 만들어내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동작을 이해하고 최대한 완성도 있게 만들어 보려고 정성을 쏟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묘하게 긴장했던 마음을 촉촉이 가라앉혔다. 


어느 날엔가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며 저 친구는 '발군'이라고 얘기하셨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초등학교 때 내 별명은 '서빵'이었다. 모난데도 없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어벙한 아이. 사람들 틈에 껴도 잘 티가 나지 않고 의견이 뚜렷하지 않은 아이. 그런 아이였던 나도 마음 한편엔 누군가 나를 발견해 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12살 인생에 처음으로 주목받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실실 웃으며 나중에 크면 요가선생님이 되려나 어렴풋이 상상했던 나. 이제는 요가가 지향하는 무소유의 느낌보단 우선 소유를 해야 무소유가 가능하다는 걸 느낄 만큼 커버린 나.  


혹독한 사회화 기간을 거쳐 나름의 대외용 모드를 장착해 외향성도 업그레이드했다지만 여전히 사회는 나에게 너무 빠르고 시끄럽다. 성인이 되어 직장일 말고도 이것저것 여러 가질 병행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려 했었는지 초점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몇 번의 번아웃을 겪고 나선 상승하락의 주기를 알아 하락기엔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정신력을 보충하려 조용한 곳으로 떠난다. 먼 길을 돌아 원기를 보충하러는 결국 본가에 돌아가 밥을 먹는 것처럼 늘 여행을 가면 요가 클래스를 신청하려고 하는 편이다. 요가 클래스가 없다면 유튜브를 틀어놓고서라도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확실히 요가만으론 몸의 변화를 도모할 순 없겠지만 요즘은 힘들여 근력운동을 하다가 지칠 즈음에 요가를 하면 구석구석 새로 생긴, 또는 보강된 근육이 느껴지는 순간이 좋다. 동시에 덤으로 늘 긴장으로 수축돼 있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던 마음도 이완시켜 준다. 요가를 할 때도 잘해보려고 승모근을 힘껏 사용하다가 어깨 힘은 푸세요라는 한마디에 내가 힘을 주고 있었는지 알아차릴 때가 있다. 또 근력운동을 할 때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호흡에 집중할 땐 새삼스레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왠지 다이어트 목적으로 요가를 했을 땐 요가를 하며 느꼈던 충족감은 느끼지 못했다. 아래의 예들이 그와 같다. 다만 개인적인 사견일 뿐 핫 요가와 플라잉 요가에 특별한 악감정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1. 핫 요가

: 처음에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어떤 운동이 좋을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던 요가도 운동이었지!'라는 생각에 핫요가를 등록한 적이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옷을 갈아입고 들어간 요가실은 내가 알던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느낌은 비슷했지만 온기보단 푹푹 찌는 열기에 살짝 스치는 땀 내음. 안 그래도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동작을 만들 때마다 정성을 들이기보단 다음 동작을 겨우 따라 하기 바빴다. 차분하게 따라 하는 앞뒤 고수분들과 다르게 땀에 흥건히 젖 저버린 내 옷과 멧돼지처럼 호흡을 뿜어내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이상과 현실이 컸던 탓일지 흘린 땀에 비해 요가를 끝내고 나올 땐 개운함보다 지쳐버림이 더 컸다. 집에 돌아와선 요가로 쏟아낸 칼로리를 채우고도 남을 음식을 먹은 것은 안 비밀. 


2. 플라잉 요가 

: 지난번 핫 요가의 수치를 잊어버릴 때 즈음 지인의 추천으로 플라잉 요가를 하러 갔다. 유산소와 근력,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매료되었다. 상담하는 선생님도 정말 재밌을 거라며 한껏 기대감을 올려주셨지만 이번엔 들어갈 때부터 왜 마른 사람들밖에 없는지, 가지각색 모두 딱 달라붙은 요가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에 반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펑퍼짐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간 것부터가 실수였다. 3m가 족히 넘는 끈을 의지해 날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전면 거울에 적힌 안내문엔 '3시간 이내 금식 추천'이라고 적힌 문구를 읽고 침을 한번 크게 꿀꺽 삼켰다. 천을 사용해 스트레칭을 할 땐 나름 코어근육도 사용해 잘 넘어가는 듯했지만 급속도로 전개된 고급동작에 내 몸과 트레이닝 바지, 그리고 천은 마블링을 이루며 꼬여버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 근육이 가득한 선생님은 할 수 있다며 가냘픈 몸으로 육중한 내 엉덩이를 들어 올리려고 애쓰셨지만 이미 중심을 잃어버려 겁을 먹은 나는 안간힘을 주어봐도 엄한 근육만 아플 뿐 다음 동작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길고 길던 1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나비처럼 천을 길게 펴 그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를 때 오늘이 이 학원을 오는 마지막 날 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샤워를 마쳐도 사그라드지 않는 요가 멀미에 버스는 타지도 못하고 6km가 넘는 거리를 집까지 걸어왔다. 친구는 계속하면 익숙해질 거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그럴 여유가 남아있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불태웠기에 미련이라곤 단 1g도 남지 않았다.


다이어트와 요가, 나는 그 사이어딘가쯤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의 인생에서 다이어트 목적으로 요가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요가와 맺은 평화협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에 뜨지 않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