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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희 Dec 03. 2020

<모비 딕>고래를 향한 인간의 집착과 광기

공존과 순응에 맞서는 선을 넘는 도전의 결과

위대한 문학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열린 텍스트일 것이다. 1851년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이 쓴 <모비 딕(Moby Dick)> 역시 곱씹을수록 깊이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향유 고래를 잡기 위해 피쿼드호를 탄 선장과 선원들이 결국 한 명만 살아남고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소설이지만,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성찰,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심리적, 리더십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나 역시 소설 줄거리 보다 이를 해석한 글이나 서평이 더 흥미로왔는데 신화, 성경 등을 차용한 상징과 비유를 찾아보고서야 왜 '미국 작품의 정수'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허먼 멜빌(1819~1891)은 20대에 포경선을 타고 인도양, 태평양 등을 항해했던 경험과 1820년 일어났던 포경선 '에섹스호' 침몰 사고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 한 때 소설 코너가 아닌 고래학 서적으로 분류될 만큼 고래에 대한 어마어마한 백과사전적 정보가 담겨 있는데, 그래서인지 출간 당시에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20세기에 들어 평론가들의 재해석 등을 통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허먼 멜빌은 <주홍 글씨>를 쓴 너새니엘 호손과 친했는데, 소설 탈고 보낸 편지에서 (<사악한 책, 모비딕>) 작품에 대한 얘기를 밝혀 그의 사상과 의도를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향유 고래에 대한 지식과 시대적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1. 모비 딕은 향유 고래다.

모비 딕은 작품 속 향유 고래의 이름으로, 모비(Moby : 큰, 거대한이란 뜻으로 페루 '모카' 지방에서 유래)+딕(Dick : 녀석)의 합성어이다. 향유고래는 크기가 최대 13~15m나 될 정도로 고래 중 가장 며, 머리 부분이 몸 전체의 1/3 정도나 차지한다. 머리가 직각이며 이빨 고래류의 하나다. 또한 가장 깊이 혹은 오래 잠수할 수 있는데 한번에 50분 정도 잠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늙을수록 몸이 흰색으로 변해 '흰 고래'로도 불리(백경), 특히 머리 부분에 '경뇌유'라는 기관이 있어 다른 고래 기름보다 질이 좋아 가로등, 양초, 산업용 윤활유 등에 쓰였다. 대왕 오징어를 주로 먹는데 향유 고래의 내장이 굳어 생긴 '용연향'은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

주로 따뜻한 바다에서 서식해 태평양 적도 부근에서 많이 잡힌다. 책에서도 피쿼드호가 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 적도 부근에서 모비 딕을 만나 3일 간의 혈투를 벌인다.

     

용연향을 발견한 소년

2. 19세기 포경업의 중심지,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 베드포드 )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19세기 중반에는 포경업이 중요한 산업이었다. 특히 미국은 전세계 포경선의 70%를 보유한 중심국으로, 포경선 수가 700 대,  타는 사람이 1만 8000명 이상이었다. 미국 동부의 메사추세츠주 뉴 베드포드가 포경업의 중심지였는데 작품 속 출항지인 낸터킷 역시 뉴 베드포드와 멀지 않은 섬이다.

한번 출항하면 길게는 3~5년씩 걸리기도 했는데, 고래야말로 기름에서부터 수염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경제적 이익의 주수입원이었다. 한마리를 잡으면 수천 배럴의 기름을 얻을 수 있었으며, 돌아오는 배 안에서 기름을 추출하기도 했다. 이후 유전 개발을 하면서 고래 기름이 필요없게 되자 포경업은 사양 산업이 된다. 


고래를 잡는 방법은 전통적 방식이었다. 범선인 모함에 작은 보트 3~4대를 싣고 가다가 고래가 발견되면 보트에 5~6명씩 나눠 탄 후 고래를 쫓아 작살이나 창을 꽂는다. 그리고 모함에 연결된 밧줄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수십 배가 되는 고래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따라서 고래를 잡는다는 것은 생명을 건 도전이었다. 그러다보니 고래에 공격당하거나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위해 사람들은 고래잡이에 뛰어들었고, 먹고 사는 생계의 수단이었다.

한편 포경업은 미국의 개척 정신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팽창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와 정복 욕심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당시 포경선 모습. 본선 안에 보트가 보인다 .
피쿼드 호의 항해 경로

책을 통해 출항하기 전 선원들 모집부터 성공 기원 의식(기도 및 주술적 행동), 배 위에서의 생활, 선원들의 역할 분담 등을 알 수 있었는데 포경선은 또 하나의 사회이자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심리적 상호작용이 오가는 공동체였다.


자, 이제 작품 속 주요 인물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분석해 보자.


3. 인물 분석

- 이슈마엘 (Ishmael) : 모비 딕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 주인공이자 관찰자이다. 이슈마엘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서자이자 광야(팔레스타인)로 쫓겨난 이스마엘(추방된 자)에서 따왔다. 이름을 이슈마엘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히는 'Call me Ishmael(내 이름을 이슈마엘이라 해두자)' 별의미 없이 이름을 지은 것 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이 육지에서 바다로 떠나듯이 '뿌리없는 유목민'을 나타낸다. 광야로 쫓겨났던 이스마엘이 훗날 이슬람의 조상이 되는 것처럼 모비 딕을 잡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친 후 살아 돌아와 성숙해진 존재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않나 싶다.   

 

- 에이해브 선장(Ahab) :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포악한 군주 아합에서 따왔다. 이는 모비딕이 상징하는 신의 영역 혹은 대자연의 섭리에 맞서는 광기 어린 인간을 악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향유 고래의 공격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후 고래뼈로 만든 의족에 의지하면서도 자신을 실패자로 만든 향유 고래에 대한 복수심을 버리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대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오만을 나타낸다. 개인의 복수심으로 향유고래를 잡고야 말겠다는 집착은 광기를 낳고 결국 작살에 매인 밧줄에 목이 감겨 죽음을 맞는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 즉 고래를 잡다가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두려움을 갖고 더이상 맞서지 않는 생존을 택하는데, 그는 끝까지 고래를 잡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아  파멸되고 만다.

그는 선장(지도자)으로서도 이성적,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으며, 개인의 목표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했다. 개인적 목표를 선원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돈을 걸거나 술을 주는 선동을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체주의적인 독재자의 선동 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지도자의 판단이 구성원들 운명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잘못된 판단으로 선원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 <모비 딕> 중



- 스타벅(Starbuck) : 일등 항해사. 에이해브 선장과 달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에이해브의 광기어린 집착을 그만두게 하는 조정자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자연의 힘에 경외심을 느끼기도 하며 현실적인 판단을 할 줄 안다. 스타벅스 커피가 이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고 스타벅은 말했다. 이 말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쓸모 있는 용기는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료하는 뜻이기도 했다. … <모비 딕> 중



- 퀴퀘그(Queequeg) :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작살꾼. 이슈마엘과 우정을 나누는데 처음엔 야만적이고 신비스러우며 비문명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순수하고 개방적이며, 신실하다. 역할에 충실한 경험주의자로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소중히 생각한다. 백인 기독교 중심의 이스마엘과 이방인, 이교도 출신의 퀴퀘그가 우정을 쌓는 모습은 작가의 바람 혹은 열린 사고를 보여 준다.


4. 그 밖에 생각해 본 것들

- 피쿼드 호(Pequod) : 백인에게 학살당한 미국 북동부 원주민 부족명에서 따옴. 기독교 중심의 백인 문명인 미국을 나타낸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출신의 선원들이 모여 항해하는 이 배는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미국을 상징한다.


- 바다 : 이슈마엘은 어느 날 육지 생활에서 벗어나 넓은 바다를 돌아다니고 싶어한다. 그에게 바다는 위안이자 생명력, 희망을 의미한다. 육지는 안전하지만 희망이 없는 삶이고, 바다는 안전하지는 않지만 희망이 있는 삶이다.

그는 후자를 택한다. 육지는 자본주의, 물질주의 삶이며, 바다는 자유, 희망을 찾아나서는 삶이다. 또한 바다는 그 위험한 모험속에서 우주의 섭리 그리고 삶의 비극을 가르치는 장이기도 하다.


- 고래 :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래'가 상징하는 이다. 고래는 대자연의 섭리, 거대한 존재, 우주의 힘, 절대자, 신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으로서 감히 넘어서면 안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고래는 가장 큰 동물이다. 이 거대한 존재는 그저 바다에서 우주의 질서와 자신의 본성, 섭리대로 유유히 살고 있을 뿐이다. 건드리지 않으면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부턴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그 욕심은 끝이 없어졌다. 어느 순간 멈출 줄 알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함에도 마치 인간이 다할 수 있다는 생각과 오만으로 거대한 우주의 질서, 섭리, 신의 영역에까지 도전한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고 때로 순응해야 함에도 에이해브는 이에 맞서려는 것이었다. 작가는 에이해브를 통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설 때 혹독한 댓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자연과의 공존과 화합에 맞서는 인간의 오만함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5. 대상의 상반된 의미

퀴퀘크가 죽음을 앞두고 만들어 두었 관은 결국 이슈마엘에게 생명의 부표가 된다. 죽음과 삶은 종이 한장 차이이다. 바다와 고래 역시 자유와 희망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한없이 잔인하고 두려운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용연향도 고래 입장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내장이 썩은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아무나 살 수 없는 사치품인 향수의 근원이 다.


이처럼 <모비 딕>은 자연과 인간 또는 신과 인간, 선과 악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 여러 글을 참고하여 느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문입니다. 2020.12.3 )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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