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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희 Jan 02. 2022

<오이디푸스왕>신의 뜻 내에서의 인간의 자유 의지

 희곡의 시대, 그리스 정신을 보여주다

여러분은 운명을 믿나? 만약 운명이 불행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운명 따윈 없어. 내가 운명을 만드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운명이란 정해져 있어. 이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운명론적 사고보다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힘없는 인간은  초자연이나 신에게 세상과 인간의 미래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그리스 신화의 신탁 아닐까?

오이디푸스(Oedipus) 신화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을 알려면 '그리스 정신(헬레니즘)'과 '기독교 윤리관(헤브라이즘)'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스 정신이란 기원전 5세기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나와 이성적,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 정신은 그리스 신화로 대표되는 삶의 긍정, 에너지, 활기, 상상력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그리스 문명을 발전시키고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후에 근대 정신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철학의 시대 이전에는 신화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만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답찾았다.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면 쉽다. 이유가 그럴싸 하고 스토리 구조가 나름 탄탄하다. 신화가 중요한 것은 당시 사람들의 사고 구조를 알 수 있어서인데, 자연-인간-신이 같은 질서 속에 혼재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경계가 모호한 미분화적 사고를 보여준다.

 점차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신화를 인간의 삶에 적용시켜 나의 현실을 들여다 보는 희곡의 시대로 넘어간다. 희곡은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사람들이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리스 비극 탄생

고대 그리스는 1년에 한번씩 봄에 디오니소스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제전을 열었다. 일종의 축제기간이다. 신전 옆에는 극장이 있었는데 제전 기간 중에는 비극 경연대회가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 만큼은 극장에 모여 경연대회를 보며 울고 웃었다. 전 국민 축제다. 초기엔 코러스(합창단)가 노래를 부르는 형태였으나, 점차 배우가 추가되고(1명 -> 2~3명,  가면을 쓰고  여러 인물을 맡음) 무대가 만들어짐으로써 오늘날의 연극 형식의 기원이 만들어졌다. 연극은 그리스 사람들의 예술이자 철학이자 그들을 위한 교육(민주주의 시민의 지력을 높이기 위한)이었다고 한다.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
코러스가 합창을 하던 무대 앞 공간을  '오르케스트라' 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케스트라'의 어원이 되었다.

소포클레스(B.C 496~B.C406)는 비극 경연대회에서 18회나 우승한 작가로, <오이디푸스 왕> 외에도 120편이나 되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이다.

 비극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맺는 영웅들의 이야기, 즉 신화를 소재로 했으며, 배우의 대사 부분과 코러스의 합창 부분 등의 특정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희극도 있었는데 비극이 더 인기가 있었다. 왜 비극이 인기 있었을까? 사람들은 비극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감정 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정화, 배설)를 느끼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에서 연극 플롯의 원형이라고 할 만큼 완전한 형식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왼쪽부터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오이디푸스왕 내용

오이디푸스(Oedipus)는 '부은 발'이라는 뜻으로, 'Oedi'는 '부은'이라는 뜻 이외에도 '측정하다, 재다'의 뜻이 있다고 한다. 계산한다는 것은 이성적, 논리적인 인물임을 의미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미 오이디푸스 신화를 알고 있었다. 소포클래스는 관객의 흥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시간적 순서가 아닌 수사극의 형태로 오이디푸스가 테바이 왕이 되어  과거의 일을 밝히는 방식으로 플롯을 짰다. 오늘날 뮤지컬이나 오페라 작가가 대본을 어떻게 느냐에 따라 재미와 감동이 다르 소포클레스도 관객의 감정을 쫄깃쫄깃하게 만들 줄 알았기 때문에 인기 작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배우들 연기 외에 코러스(합창단)가 나와 중간 중간 작품을 해설하고 상황 설명을 한다. (끔찍한 장면은 무대 뒤에서 배우 그림자로 처리하고 코러스가 노래로 설명을 했다고 한다.)

실제 신화에오이디푸스 왕이 선왕이 죽은 후 테바이 왕으로 15년 동안 통치하면서 2남 2녀를 둔다.

테바이의 카드모스 가계도
인물 - 오이디푸스(테바이 왕,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의 주인공), 이오카스테(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 라이오스왕(친아버지), 플루보스왕(양아버지), 크레온(이오카스테의 남동생), 테이레시아스(눈먼 예언자), 사자(코린토스에서 온 신하, 버려진 오이디푸스를 코린토스로 데려감), 목자(라이오스 왕 살해시 살아남은 자)

줄거리 - 테바이 지역에 오랫동안 역병과 기근이 들자 오이디푸스 왕은 크레온을 신전에 보내 문제의 원인을 알아오라 하고, 크레온은 라이오스 왕을 살해한 살해범이 그 원인이니 실해범을 찾아 추방하거나 피를 피로 갚아야 한다는 전령을 갖고 온다. 오이디푸스는 살해범을 찾기 위해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묻는다. 그는 말하지 않으려 하나 결국 오이디푸스가 살해범이라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과 테이레시아스가 자신을 몰아내고자 음모를 꾸민 것이라며 믿지 않지만, 이오카스테,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 목자 등의 얘기를 통해 자신의 운명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자결하고, 오이디푸스는 절규하며 이오카스테 가슴에 단 브로우치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자신의 죄를 열거하며 스스로 테바이를 떠나고자 한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그는 지금 두 눈이 멀쩡하지만 장님이 될 것이고, 지금 부자지만 거지가 될 것이며,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면서 낯선 나라를 헤맬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같이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형제이자 아버지임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낳아 준 어머니에게는 아버지의 잠자리를 물려받은 남편인 동시에 아들이며 자신의 아버지를 피를 흘리게 한 자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 테이레시아스-



내게 닥친 수많은 재앙, 내가 저지른 수없는 죄업을 너는 이제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한때 테바이의 땅에서 으뜸 가던 사내 그러나 지금은 더러운 사내, 신들이 버린 이 비참한 사내, 저 삼거리의 길이여. 세 갈래 숲과 오솔길이여. 너희는 내 손에서 나와 피를 나눈 내 아버지의 피를 마셨구나. 그리고 그 이후에 이곳에 와서 무슨 짓을한 것이냐? 육친끼리 피를 섞는 죄를 범하였으니, 그 더러운 일을 입에 올리기조차 더럽구나. 나를 쫓아내라. 죽이든지 바다속으로 던지든지 부탁이다. 두려워 하지 마라. 내 죄는 나밖에는 누구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 오이디푸스 -
“너희들은 다시는 내가 겪고 또 내가 저질러 놓은 무서운 일들을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너무 오랫동안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을 보아 왔고 내가 알고자 하던 일은 보지 못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어둠 속에 있거라!” - 오이디푸스 -


"내가 한 일이 가장 잘한 일이 아니라고 내게 가르치지도 말고 더는 내게 충고하지도 말라. 만일 내 눈이 멀쩡하다면 저승에 가서 아버지와 불쌍한 어머니를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그 두 분에게 나는 교살로서도 씻을 수 없는 그러한 죄를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자식들을 보게 되면 태어난 그대로 그들이 내게 사랑스럽게 보이리라고 생각하느냐? 오오 천만에. 내눈에는 ..."  - 오이디푸스 -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 구조
그럼 가장 치욕적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자.

- 선왕 라이오스 왕이 아폴론 신으로부터 받은  신탁을 피하고자 아들 오이디푸스를 버렸으나, 결국 세월이 흘러 신탁은 이루어지고 만. 아무리 피하려 해도 신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에 도전하면 안 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오만(hubris)은 파멸을 불러온다.


- 오이디푸스 왕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바이 땅을 떠나고자 한 것은 스스로 벌하고 자기 파멸을 하는 결단력, 도덕적 용기를 나타낸다. 신의 뜻 아래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일 것이다. 


- 고대 그리스 영웅은 역경, 고난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장님이 되지만 테바이를 떠나 여러 일을 겪으며 더욱 성숙해진다.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올림푸스> 참고) 하나의 감각을 잃어버리면 상대적으로 다른 능력이 더 발달하듯이 그는 눈을 잃는 대신 더 지혜로와진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처럼 진리의 증인이 된다.  자결로 하지 않았을까?의 답인 것 같다.

 

- 인간의 정체성을 묻는다. '라이오스 왕을 누가 죽였지?' 에서 시작해 '내가 살인자란 말인가?,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에 까지 이른다. 기원전 5세기에 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하다니 철학의 시대가 도래함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는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걸으며,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발이 많을수록 약한 것은?' 이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다. 답은 '인간'이며, 인간이란 인간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오이디푸스 자신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대로 그는 지팡이를 짚게 되니 말이다. 자신이 수수께끼 문제의 주인공이고 그것을 푼 셈이다.


- 이 작품에는 이성적, 합리적 사고와 비이성적, 직관적인 사고의 대칭적인 면이 섞여 있다. 아폴론은 신이자 남성, 그리고 비밀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이오카스테는 사람이자 여성, 비밀을 은폐하려고 한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대면하고 인정하며 책임을 지려 하지만, 이오카스테는 비밀이 밝혀졌을때 자결함으로써 현실 도피적이다. 크레온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테이레시아스는 직관적 계시적인 인물이다. 오이디푸스는 무지에서 지로, 보임에서 보이지 않음으로, 강함에서 약함으로 변화한다. 


- 당시 민주정인 아테네에서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공동체 의식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이러한 비극을 관람하면서 민주정을 해 나가는데 필요한 공동체 의식을 길렀다. 일종의 애국심이다. 연극의 주인공은 타자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하고 어떻게 살아야 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스스로 교육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과 주체적 사고는 그리스 정신으로 발전하고 그리스의 황금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1967년 제작된 영국 영화 <오이디푸스 왕, Oedipus The King>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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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여러 글, 리뷰들을 읽고 참고한 글입니다.

*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202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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