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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희 Dec 17. 2021

<유토피아> 이상적인 나라에 대한 발칙한 상상

어디에도 없는 곳,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국민 모두 행복하고 안전하며 잘 사는 나라가 아닐까? 문제는 어떤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면 될까이다. 과연 이런 나라는 존재하기나 한 걸까? 이러한 질문은 국가가 만들어진 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온 주제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기반한 이상국가로 철인정치를 주장했고, 공자나 맹자는 군주의 덕치주의를, 로크나 루소는 사회계약론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1516년 출간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역시 이상적인 나라는 어떠한 모습이면 좋을까?에 대한 토머스 모어 개인의 고민과 상상이 어우러진 대화 형식의 가상 소설이다.   

'유토피아'라는 단어가 이 책으로부터 유래되고,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Sheep are eating men)'와 같은 문장의 출처로 유명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지금으로부터 500년전 이미 사유 재산 폐지, 즉 평등 개념을 생각했다는 점, 국가가 국민을 얼마나 통제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책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삶과 행동을 규정짓는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과 제도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18~19세기 되어서야 사회계약론 그리고 사회주의가 등장했으므로 이보다 300년이상 먼저 살다간 토머스 모어 개인의 생각이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법률가이자 사상가,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1535)는 잉글랜드 왕국의 헨리 8세가 통치하던 시절 활동했던 법률가(대법관, 교수)이자 정치가, 사상가, 인문주의자이다. 그는 헨리 8세가 세세한 문제까지 그와 상의할 정도로 신임했던 인재였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로마교황청과 갈등을 벌이고 결국 교황청에서 나와 영국 국교회를 만들어 교회의 수장이 되는 과정에서 반대 입장에 섰고 서명을 반대해 결국 사형을 받게 된다. 현실 타협보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었다.  

    토머스 모어(좌)와 헨리 8세(우)


당시 영국은 대항해 시대 이후 해외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면서 양모 산업이 발전하고 있었다. 양모 가격이 비싸지자 영주들은 공동 경작지를 목초지로 바꾸어 양을 키우는 '엔클로저(enclosure) 운동'을 통해 자본을 축적해 나갔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토를 잃고 도시로 내쫓겨 도시 빈민 노동자가 된다. 농경 위주의 중세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싹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돈을 번 지주들은 젠트리가 된다) 먹고 살기 힘들면 범죄가 많아지는 법. 국가는 이를 막기 위해 법률을 만들었다. 그러나 범죄는 줄지 않고 결국 가벼운 죄에도 중형을 내리거나 사형에 처하는 일이 많았다. 토머스 모어는 법률가로서 이러한 사회 문제를 보면서 어떠한 나라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 그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곳일까?


<유토피아>의 내용 구성

이 책의 원제는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이다. 공화정을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내용상 2부로 되어 있다. 1부가 당시 영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면 2부는 그가 상상한 이상적인 나라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토머스 모어 자신이 주인공으로 라파엘이라는 사람과 대화하는 형식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를 만나기 위해 플랑드르에 가고, 일정 중 아메리고 베스푸치선(Amerigo Vespucci, 이탈리아 항해사가 이끈 탐험대)을 탔던 포르투갈 선원 라파엘 히슬로다이우스 만난다. 라파엘은 여러나라를 탐험하면서 보고 경험한 얘기를 들려 주는데, 라파엘은 바로 토머스 모어 자신이다. 그의 입을 빌어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제도, 종교, 윤리 등을 비판하는 것이다.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며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며 현실을 비판했고, 가진 자들을 위한 법 제정, 가벼운 죄에도 가혹한 형벌을 내리거나 사형을 남발하는 생명 경시 현상도 비판했다. 또한 왕이 침략 전쟁을 벌이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비도덕적인 면도 풍자했다.  

 

나는 사유재산을 전적으로 폐지하지 않는 한 귀하는 결코 공평한 재산의 분배나 인간 생활의 만족스러운 조직을 실현시킬 수는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유재산이 존속하는 한, 인류의 대부분의 사람들 즉, 이 탁월한 사람들은 가난과 고난, 고뇌라는 짐을 지고 고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귀하는 결코 그들의 어깨에서 이 짐을 내려 놓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둑을 다루는 이 방법은 공정하지도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처벌로서는 너무 가혹하고 억제책으로서는 매우 비효과적입
니다. ...... 이러한 가공할 처벌을 가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생계의 수단을 마련해 주어, 아무리 처음엔 도둑이 되고 다음에는 시체가 되는 절막한 필요에 봉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사유재산이 존재해서 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곳에서는 정의롭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악한 자들이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하는 곳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극소수가 나누어 갖지만, 그 극소수조차도 언제나 행복하지 않고 대다수 사람들은 궁핍하고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곳에 행복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이 개인적인 사기 행각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조세법을 통해서 이 사람들의 하찮은 임금의 일부를 착취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로부터 최상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위배됩니다.

<유토피아> 커버


특히 법룰가로서 '정의'에 대한 생각이 보여진다. 그럼 토머스 모어는 어떤 나라를 꿈꾼 걸까? 라파엘이 5년동안 살았던 '유토피아'의 모습에 그 대안이 담겨있다. 그의 상상력은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1. 지방자치 제도를 실시하는 계획 도시이다. 54개 도시국가로 이루어졌으며 10만명의 인구가 산다. 30가구당 한 명의 시포그란투스(지역담당관)가 마을을 관리하는데, 한 도시당 200명의 시포그란투스가 있다. 이들 중 비밀투표로 총독을 뽑으며 임기는 종신이다. 중요한 공공 정책을 결정할 때 민주적으로 의견을 묻는다.

2.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이나 거지가 없다. 소유한 것은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부자이다. 불필요한 사치품은 생산하지 않는다. 식자재와 생필품은 시장에서 무상으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면 된다. 공동 생산, 공동 분배 사회인 것이다. 화폐 또한 없다.

3. 한 해의 생산량, 필요량을 세밀하게 조사해 필요량과 비축량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수출하며, 수출량의 일정량을 수입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준다. 유일한 수입품은 철이다.

4. 사람들은 2년은 도시에 살고, 2년은 농촌에 살며 농사를 짓는다. 집은 10년에 한번씩 추첨으로 바꿔 산다. 집 치장을 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자물쇠도 없다. 정원을 가꾸는 정도다.  

5. 1인 1직업이 원칙으로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다.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해야 한다. 하루 6시간 노동을 하며 오전 3시간, 점심 먹고 2시간 휴식, 오후에 3시간 일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으로 배움이나 자기계발, 여가를 즐긴다.

6. 옷은 작업복 한 벌과 외투 한 벌 뿐이며 2년마다 교체된다. 공동식당에서 공동으로 식사한다. 수면시간은 8시간으로, 저녁 8시에 취침하고 새벽 4시에 기상한다. 아침 기상 후에는 공개 강좌를 듣거나 공부를 한다.

7. 허가증 없이 여행할 수 없으며(마을을 벗어날 수 없으며), 여행지에서도 정해진 시간 동안 노동을 해야 한다. 여성의 군복무를 장려하고 전쟁을 싫어하지만 나라를 침략하거나 우방을 침략하는 등 명분이 있으면 이웃나라로부터 용병을 사서 싸운다.

8. 금이나 은은 철보다 가치가 떨어진다. 금은 노예 사슬용이나 죄수들의 표식 장치,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이용된다. 즉 금을 갖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다.  

9. 일부일처제이며, 어려운 법률을 만들지 않고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다.

10. 노동이 면제되는 학자 계급은 연구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며 시포스란투스의 승인이 필요하다. 외교관, 성직자, 관리들이 학자 계급에 속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발칙한 상상이다. 비현실적이고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없는 곳 [u(not)+topia]' 이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eu(good)+topia]' 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개인 사생활이 없는 전체주의적 모습이 있고 노예 인정이나 제국주의적 인식, 여성에 대한 시각 등 한계도 있다.)

  

이 책에 깔려있는 토머스 모어가 바라는 기본 인간상은 따뚯한 마음과 욕심이 없는 도덕적 인간이다.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야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을 키우기 위해 교육과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 또 이러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덕망있는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결국 법과 제도, 문화 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탐욕이 없어, 필요한 이상의 것을 갖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행위는 마땅히 존경을 받는다.

자연은 공기와 물과 흙처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든 것에 눈에 띄게 놓아 주었지만 헛되고 무용한 것들을 외진 곳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를 바라며, 이를 유토피아 사람들의 생활과 특징, 도덕적인 사상, 다양한 제도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 냈다. <유토피아>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비록 이룰 수 없는 이상이라 하더라도 인간다운 사회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도록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500년 전과 지금을 계속 비교하게 된다.  


2021. 12. 17.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사전,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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