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 간다."
"갓 구운 스콘은 밝고 마른 햇볕 냄새가 났다. 차가운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 잼을 스콘 위에 얹어 입으로 가져간다. 온도도 감촉도 각각 다른 단맛이 입 안에서 섞인다."
"감자를 감싸고 있던 부드러운 흙은 여름의 아침 햇살을 받아 금방 하얗게 말라간다. 오랜 시간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쪼이고 있던 새끼 곰 등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면 이런 향기로운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여닫이가 나쁜 문짝 같던 내 행동거지가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이 느껴졌다."
"겨울이 조금 더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올 가을은 유난히 예쁘니까."
"...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건축이 잘됐다는 이야기야. ...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하고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또 하나 마지막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해’라는 건축 용어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이 설계 플랜에서 해결했을 때 ‘해’라고 쓰는 건축가가 많다. 수학과 달리 건축에는 완벽한 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중략) 선생님의 국립현대도서관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대로 흘러, 지나간 세월은 이 모형에 사소한 숨결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플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선생님 플랜에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