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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희 Jan 12. 2023

<대지> '땅'은 삶의 원동력 이자 엄마의 품

농업 사회에서의 인간과 땅의 관계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돈'이 아닐까? 돈이 있어야 기본적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 정신적 행복의 기준을 돈으로 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물질만능주의, 물신주의와 같은 부정적 현상을 기도 했지만 '돈'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펄 벅(Pearl S. Buck, 1892~1973)의 <대지>에서는 '땅'이 그 역할을 한다. 땅이 뭐길래 가족이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길까? 지금으로선 이해가 안되지만 100년 전만 하더라도 그랬다. 농업 사회였기 때문이다. 만약 주인공 왕룽이 요즘 시대에 산다면 땅 대신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대지> 원제는 <The Good Earth>로 1931년 발표되었다. 이후 1933년에는 왕룽의 세 아들을 중심으로 한 <아들들>, 1935년에는 아들의 아들 세대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분열되는 집안>이 발표되었다. 결국 대지 시리즈는 왕룽 3대 일가의 이야기를 담은 3부작인 셈이다. <대지>는  중 첫번째다.

펄 벅은 이 소설로 1932년 퓰리처상과 1938년, 미국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중국인들의 땅에 대한 생각, 생활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는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펄 벅의 젊은 시절과 노년 시절


펄 벅은 미국인이지만 반은 중국인인 셈이었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19세까지 살았으니 자신의 조국인 미국보다 중국을 더 잘 알지 않았을까? 이후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중국으로 생활했다. 중국에서 미국인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다. 남편은 가정적이지 않았고 딸은 정신지체아였다. 펄 벅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남편의 무관심과 정신지체아인 딸로 인한 상실감, 죄책감을 잊기 위해서였다.그리고 <대지>를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펄 벅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그녀는 196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려고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혼혈 아동이 겪는 고통을 보고 펄벅 재단을 만들어 2,000여 명의 혼혈 아동을 돌보고 복지 활동을 펼쳤다. 미국 가정으로 해외 입양 주선도 많이 했다고 한다. 부천에 있는 펄벅기념관은 그녀의 이러한 활동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부천 펄벅기념관


자, 그럼 <대지>를 통해 중국인(동양인)의 땅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자.


시대 상황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은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였다. 서양 제국주의 입김이 동양에까지 미쳐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대상으로 식민지 확장을 하던 시기, 중국(청) 역시 서구 열강들의 잇권 경쟁 속에서 점점 쇠약해져 갔다. 스스로 근대화를 도모했으나(태평천국의 난,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 위화단 운동)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몇 십 년 동안의 혼란 끝에 결국 쑨원의 신해혁명(1910년)이 성공해 청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정인 중화민국(1912년)이 탄생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개혁 통해 근대화 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과 바꾸려는 혁명 세력의 갈등은 거세지고 폭력이 난무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왕룽 일가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으며 살아 남으려는 평범한 농부를 대표한다. 대지주가 몰락하거나 혁명군이 주도권을 잡거나 이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집단, 도둑과 깡패, 범죄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도 성실하게 일해 땅을 사들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땅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땅을 믿고 살아간다. 이렇게 농업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변해가는 시기 왕룽과 오란 부부는 전통적 가치관, 세 아들은 새로운 근대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왕룽과 땅의 관계

왕룽은 가난한 농부로서 땅 소유가 인생의 목표였다. 오란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땅에서 열심히 일했고, 피와 땀으로 토지를 점점 늘려 대지주가 된다.

그들에게 '땅'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주는 수단이자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삶의 터전이자, 타지에 나갔다가도 언젠가 돌아갈 곳이요, 힘든 상황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삶의 뿌리다. 또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치료제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안식처였다. 잘못을 반성을 할 때도, 마음의 다짐을 할 때도 땅에서 이루어진다. 물건은 뺏겨도 땅은 뺏을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가족이 굶주려도 절대 팔지 않을 만큼 목숨보다 소중하다. 이를 ‘대지모 사상’이라 한다. 엄마의 품처럼 땅은 언제나 힘을 주고 근심이 있을 때 위안을 주니 삶의 전부인 것이다.

 

우리들은 땅을 파먹고 살아왔어. 그리고 또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야 해. 너희들도 땅만 가지면 살 수 있어. 누구라도 땅만은 빼앗을 수 없어 ...
"죽어도 땅은 안 팔겠소. 난 이 땅의 흙을 파서 자식을 먹여 살리겠소. 그러다가 아이들이 죽으면 이 땅에 묻겠소, 나나 내 아내나 아버지나 모두 우리들을 먹여 살려 주던 이 땅에서 죽겠소."


서양인의 눈에는 이것이 신기했을 것이다. 이미 근대 정신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정치, 경제적으로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이룬 서양인에게 땅은 그냥 땅일 뿐이다. 이용하고 정복하는 대상으로 힘이 센 자, 전쟁에서 이기는 자(나라)가 갖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은 농업 사회였기에 땅에서 시작하고 땅에서 마무리하는 밀착의 대상이었다. 가끔 60~70년시골 할아버지가 ‘농사 지어 자식들 대학 교육까지 시켰다’,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거야’ 같은 얘기도 이러한 생각을 보여주는 말이다. 박경리의 <토지>, 미국 소설인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땅에 대한 이러한 생각과 관계 있다.


세 아들 = 근대적 인물

왕룽의 전근대적 사고는 세 아들에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그는 아들 모두 농부가 되기 보다는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다. 첫째(왕이)는 학자, 둘째(왕얼)는 상인, 셋째(왕싼)는 농부가 되기를 바랐다. 여기서 왕룽은 전통 사회와 근대 사회의 과도기적 인물임을 보여준다. 아들 세대는 배워야 성공할 수 있고, 계산에 능하고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사고를 한 것이다.

실제 아들들은 아버지과 달랐다. 첫째는 일하지 않는다. 체면과 허례허식, 허영심, 과시하기를 좋아할 뿐이다. 아버지가 이룬 부를 누리기만 한 탓이다. 둘째는 계산을 잘하고 실속을 챙기는 실리추구의 인물이다. 상인의 기질이 탁월해 결국 장사로 많은 돈을 모으게 되고 형이 판 토지를 다시 사들인다. 셋째는 당시 전쟁, 혁명 등을 보고 자란 영향으로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모험심 강한 인물이다. 세 아들의 다양한 성격은 아버지 세대와 다른 근대적 사고의 세대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깨다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인의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기생 롄화를 첩으로 들인 것, 롄화의 몸종, 오란과 롄화의 관계, 삼촌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도 아편을 몰래 주는 것, 대지주와 소작농 관계, 오란의 죽음 등 ... 혼례식, 아이 탄생 축하 의식, 장례식, 의식주, 농기구, 일부다처제, 전족, 여종 같은 전통적인 중국인의 삶과 풍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당시 중국에 대한 이해가 없던 서양인들에게는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특히 수세기 동안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멀고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곳을 넘어 편견과 왜곡이 고착화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 즉 동양은 불결하고 정직하지 않고 잔인하며 미개한 야만인으로 간주되던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다. 펄 벅은 문화상대주의로 바라보았다. 있는 그대로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다. 성실하고 근면한 평범한 농부이자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끈질김, 때로는 재산에 대한 탐욕과 오만적 행동을 하기도 하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삶과 여성관  

오란, 롄화, 뚜첸 등 여성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도 볼 수 있다. 가부장 중심, 희생적 여인상, 일부다처제 등 전근대적인 여성관과 여성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실제로 펄 벅은 '전족'같은 풍습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자료를 보다 보니 <대지>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미국 제작사가 만들고 배우도 미국 배우가 연기했다고 한다.

영화 <대지>의 포스터. 연기자들은 모두 미국 배우였으며 동양인처럼 보이려고 노력하고  촬영 소품도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5개 부문 오스카 상을 받았다
중국 안휘성 숙주시에도 펄벅 기념관이 있다


맺음말

시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달라진다. 그래서 지금은 땅에 대한 애착이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땅도 돈처럼 자본 개념으로 보고 있어서다. 인간과 땅에 대한 관계가 변한 것처럼 돈도 미래에는 다르게 인식되겠지?미래에는 무엇이 중요해질까?



* 글은 여러 리뷰를 참고해 작성한 것입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202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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