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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희 Aug 19. 2020

<아Q정전> 정신승리법의 편안함과 위험

영웅주의와 패배주의 그 어디쯤...

중국 문학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아Q정전>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읽다 보면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하지?' 의아하. 주인공 아Q는 한심스럽고 답답하며 찌질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반전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끝까지 사람들한테 무시만 당하고 결국엔 도둑으로 몰려 사형까지 당하고 만다.

  

진면목은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의도에 있다.

<아Q정전>은 1911년 중국 청나라 말 신해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한 시골 마을의 날품팔이꾼 아Q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 및 중국인을 비판한 루쉰의 소설이다.

저자 루쉰(1881~1936)은 작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로 청년 시절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동경에 유학을  신학문을 접했다. 그는 원래 의사가 되고자 했으나 일본 유학 중 중국인 처형 영화를 본 것을 계기로 중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적 치료보다 정신적 계몽이 더 우선 생각에 의학을 고 문학가가 되었다.


이 작품은 1921년에 쓰였는데, 신해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국가인 중화민국 공화국이 탄생된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란스럽고 전근대적 사고에 머물러있는 자신의 나라와 민중을 보며 혁명의 한계와 무력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싹 바꿔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과 달리, 과거 화려했던 시대를 잊지 못하고 영웅주의에 빠져 서양 강대국의 동양으로의 세력 확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나라와 민중이 안타까웠으리라. 마치 끓는 물속의 개구리(boiling frog)가 점점 몸이 따뜻해져 정작 뜨거운 줄 모르다가 죽게 되는 것처럼... 


중국은 1840~1842아편전쟁 이후 문호를 개방했지만 선택적으로 과학기술이나 군사제도 등받아들였을 뿐 봉건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서양세력의 식민지화, 청일전쟁 패배 등으로 봉건체제는 흔들리게 되고, 이후 자의든 타의든, 위로부터든 아래로부터든 여러 번의 근대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혼란은 반복된다.


사람은 정신을 바꾸기가 가장 힘든 것인가? 여전히 대국이라는 환상에 젖어 현실을 외면한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영웅주의는 냉철한 변화 요구의 발목을 잡는다. 잘못된 자부심은 위험한 것이다.  

루쉰은 당시 중국 사람들을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로 대치시켰다.  


-. 정신승리법과 중화사상

아Q는 정신승리의 대가이다. 현실에서는 패배자인데 정신적으로는 늘 승리자다. 자신을 버러지, 자식이라 자처하기도 하고 굴욕도 없고 저항도 없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행동하니 맘이 편하다. 현재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 날품 팔아 겨우 먹고 사는 별 볼일 없는 인간임에도 과거에는 잘 나갔다고 하자존심 하나는 갑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신승리법은 자기 비하, 노예근성, 과대망상을 낳는다. 변화하거나 문제 해결의 여지는 없고 현실 만족만 있을 뿐이다. 아파야 할 때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느껴야 할 때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은 그래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대놓고 무시한다. 사소한 것에 대해 우월의식을 느낀다. 결국 강한 대상(나라)에는 약하고, 약한 대상(나라)에는 강한 척하며, 실제로는 패했으면서 정신적으로는 현실을 외면하고 잊어버리는 아Q를 통해 중국과 중국인들을 비판한 것이다.    


-. 물질주의적 사고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돈이 중요해 진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기 되었기 때문이다. 아Q가 잠시 마을 사람들에게 사람대접을 받았던 것도 도둑 패거리의 망을 봐준 후 훔친 물건을 팔아 돈이 좀 있었을 때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Q의 주머니 두께, 즉 돈을 기준으로 그를 평가했다. 이를 통해 상류층 사람들의 속물주의, 허위의식과 사람들의 물질주의적 사고를 비판한다.  


-. 혁명도 자신 이익의 수단으로

혁명이란 구체제의 낡고 불합리한 제도를 뜯어고치기 위한 투쟁이다. '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은 혁명의 명분이 된다. 그러나 이 대의 명분이 혁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는가? 일부 지도층만의 꿈일 뿐이라는 것이 루쉰의 생각인 듯하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무지한 국민들은 누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없다. 무엇을 위한 혁명인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며, 오로지 기회를 이용해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뿐이다. 아Q 역시 혁명의 물결이 마을에까지 미치자 그저 혁명당에 가입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혁명당원인 척했다. 저자는 혁명의 비전과 꿈은 소수의 지도층에게만 있을 뿐이며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임을 느꼈을 것이다.      


-. 정의감 상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사형당한다고 하면 '죽을 만한 짓을 했겠지' 한다. 그들은 인과 관계를 따지려 들지도 않고 무비판적이며 감정도 없다. 오히려 사형을 볼거리로 여기고, 사형 집행자가 집행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아쉬워할 뿐이다.

경찰서장 역시 자신의 실적을 보여주기 위해 도둑사건의 범인을 아Q로 몰아 체포한 후, 사형 집행에만 신경을 쓴다. 국민들의 이러한 무비판적, 무지, 정의감 상실 등은 진정 저자가 바꾸고 싶어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 잘못된 여성관, 종교인 비하

당시 중국인들의 여성관알 수 있다. 여자를 남자를 망치게 하는 존재, 쾌락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일반 여성 비하를 넘어 종교인인 늙은 여승까지 집적대는 것을 통해 당시 중국인들의 잘못된 여성관을 보여준다.


-. 지식인들의 허세와 비주체성

전영감 아들은 유학을 가 영어를 배우고 서양식 문물과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신지식인이다. 그러나 변발을 자른 후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비난이 커지자 다시 변발 가발을 쓰고 다닌다.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의 가치관 사이에서 고민하는 비주체적인 신지식인을 나타낸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루쉰은 자신의 나라와 국민, 그리고 신해혁명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제도의 변혁은 정신적 변혁을 동반해야 성공한다. 좋은 틀이 있어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헛일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과도기에는 그 변혁의 속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 루쉰은 펜을 통해 진정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일을 사명으로 느꼈다. 

<사진출처 YES24>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문입니다. 20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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