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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Mar 01. 2020

기차, 원, 그리고 테레즈

다시보기_6 영화 『캐롤』

*글 속에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verything comes full circle.”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손님맞이로 분주한 프랑켄베르크 백화점. 직원들은 ‘경영진의 선물’이라는 산타 모자를 하나씩 받아 들고 업무를 준비한다. 인형 가게 점원인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도 예외는 아니다. 상사의 지적을 받고서야 겨우 산타 모자를 쓴 그녀의 시선은 백화점 불이 켜지기 전 어둠 속에서 가만히 바라봤던 장난감 기차 세트로 향한다. 그곳엔 무릎까지 오는 우아한 모피 코트를 걸친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랜칫)가 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정말 이상적인 말 같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종종 당연한 듯 나타난다. 캐롤이 딸의 선물로 찾던 인형은 다 팔린 상황, 어렸을 때 갖고 싶었던 게 뭐였냐는 캐롤의 질문에 테레즈는 장난감 기차 세트라고 답하며 신나게 설명을 이어간다. 냉큼 계산해달라는 캐롤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의 테레즈. 캐롤에게 홀리듯 빠졌다.


  자신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우아한 캐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테레즈.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그들의 관계는 캐롤이 두고 간 장갑으로 이어진다. 장난감 기차 세트와 함께 두고 간 장갑을 함께 보내준 테레즈, 그리고 감사의 의미로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집으로도 초대한 캐롤. 남편과의 불화를 들켜버린 캐롤은 사진작가가 꿈이라는 테레즈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카메라를 선물하고, 둘만의 여행을 제안한다. 유럽 여행을 가자고 조르던 남자 친구의 말에 꼼짝도 않던 테레즈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캐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6b1tkL00hjU


  영화의 시작과 끝은 기다란 띠의 끝과 끝을 둥글게 붙인 듯 이어져 있다. 둥그런 레일의 장난감 기차 세트와도 같고, “Everything comes full circle.”이라는 대사와도 연결되어 있다. 테레즈의 캐롤에 대한 사랑은 하얀 눈처럼 순수하다. 하지만 남편 하지 에어드(카일 챈들러)와 이혼 및 양육권 분쟁 중인 캐롤에게 사설탐정이 붙고, 둘의 사랑은 들통나 버린다. 여행은 짧게 끝나버리고 한동안 멀어진 두 사람. 딸 린다의 빈자리로 그리워하던 캐롤은 애비 게르하르트(세라 폴슨)로부터 테레즈가 타임즈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캐롤은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어딘가로 걸어가는 테레즈를 보고 그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우연이란 건 세상에 없어요.” 급하게 여행을 마무리 짓고 테레즈를 떠난 캐롤이 남긴 편지 속 이 말처럼, 결국 캐롤은 딸 린다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테레즈에게 만나자고 연락한다. 영화 시작 속 복잡해 보였던 둘의 관계는 테레즈가 캐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캐롤의 집을 가는 길에 두 사람이 함께 지나갔던 몽환적인 터널 끝 눈부시게 밝은 세상처럼 말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3923

영화 『캐롤』 포스터. 수입 (주)더쿱, 배급 CGV아트하우스, 출처 다음영화.


  토드 헤인스(Todd Haynes, 1961~) 감독의 영화 『캐롤(Carol)』(2015)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1952년 첫 출간 때는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으며, 1990년 지금의 이름으로 재출간됐다고 한다.) 영화 『캐롤』은 많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주요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2015년 칸 영화제에서 여자배우상, 퀴어종려상을 수상했다.(@위키피디아)


  영화는 테레즈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간다. 두 사람 사이의 설렘, 기대도 테레즈를 통해 더 많이 느껴진다. 점심 메뉴도 간신히 정하고, 남자 친구와의 유럽 여행은 고민 중이고, 인물 사진은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같아 잘 찍지 않았던 테레즈는 캐롤을 만나고는 확 변했다. 캐롤을 피사체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단번에 캐롤과의 여행을 결정하면서 직장과 남자 친구도 포기했다.


  반면 캐롤은 도도하고 우아한 탓도 있지만 딸의 양육권이라는, 어쩌면 당연했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상황이었다. 캐롤은 점심 식사, 집으로의 초대, 여행, 호텔에서의 약속, 또 한 번의 초대 등 매 순간 늘 먼저 테레즈에게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캐롤의 대사처럼 여행 중 말없이 홱 떠나버린 그녀에게 나 또한 해명을 요구하고 싶었다. 쉽지 않은 사랑을 선택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 같은 테레즈의 상처 입은 마음, 캐롤을 향한 깊은 마음이 영화 속에서 더욱 진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리라.


  사실 사랑을 다룬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뻔하다. 두 사람은 첫눈에 혹은 원수처럼 싸우다가 사랑에 빠질 것이고, 사랑을 키워나가다가 고난을 만날 것이다. 글로 쓰니 참 무미건조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사랑 영화의 뼈대는 뻔해서 연출과 대사에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 여행으로 비유하면 익숙한 동네를 찬찬히 걸으며 재발견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영화 『캐롤』은 참 예쁜 영화다. 평소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옹호도 거부도 하지 않는데, 영화를 보면 성소수자, 동성애, 양성애 등과 같이 서로를 구분 짓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따뜻한 색감, 거슬리지 않는 음악, 두 배우의 눈빛은 그저 사람 대 사람 사이의 순수한 사랑만 느껴진다.


  “사람은 사람에 대한 호감을 갖기 마련이야. 특정한 어떤 사람이 좋아질 때도 있지?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끌리지 않는 이유는 알 방법이 없어.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냐 뿐이야.”(대니와 테레즈와의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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