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팬들은 생일 카페를 여는가

프롤로그 - 팬들과 아이돌(우상)의 관계

by El Fanatico
대책 없이 생일 카페를 열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생일 이벤트를 열었다면 과연 어떤 말을 들을까.


GxJ_8snaoAA9UTS.jpeg 네.. 진짜로 열었어요


게다가 그 생일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에 오는 사람들도 생일 이벤트를 여는 주최자가 누군지 잘 모른다. 말 그대로 생일 이벤트를 여는 사람도, 생일 이벤트의 주인공도, 생일 이벤트의 장소를 찾는 이들도 서로 잘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고 있고, 심지어 그 이벤트들이 널리 ‘정착’되고 있다.


생일 카페. 카페는 카페인데, 생일을 맞이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운영되는 카페다. 대개 이 생일 카페를 계획하고 운영하는 이는 그 생일의 주인공을 ‘덕질’하는 팬이다. 원래 있는 카페를 대관하여, 실제 카페에서 음료나 쿠키 등을 파는 이들은 본래 카페에서 담당하지만, 그 외에는 팬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고 정해야 하는 사항이다. 주로 카페에서 해서 생일 카페라고 할 뿐, 팬들은 다양한 변주를 주기도 한다. 밥집, 꽃집, 프레임 이벤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 생일 카페의 부흥은 아이돌을 위한 이벤트에서 발현되었다. 더 나아가 그 생일 카페 이벤트가 범용적인 팬덤 활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생일 카페는 더 다양한 장르에서 수용되었다. 배우, 트로트 가수, 스포츠 스타, 인플루언서,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팬덤이 굳게 형성되어 있는 이들이라면 생일 카페를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돌 팬덤 문화가 더 공고해지고, 그러면서 이 팬덤 문화를 경험하거나 배운 이들이 다른 장르로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생일 카페도 더 많은 주인공들을 위한 자리가 되었다.


아이돌을 비롯하여 생일 카페의 주인공들도 생일 카페가 열리는 것에 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이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봐야 하는 이벤트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생일 카페를 가보는 것, 혹은 여는 일이 팬의 위시리스트로 기록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이돌에게도 생일 카페는 한번 경험하고 싶은 소원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날 축하한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그 전까지 생일을 특별한 기념일로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도 팬들의 정성과 축하가 가득한 순간을 거치고 나면 생일을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팬덤 밖에서 덕질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생일 카페’를 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마냥 ‘생일 카페’에만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상을 깊게 파고드는 ‘덕질’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덕질’이라는 활동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으며, 심지어 팬덤을 대상으로 하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그 ‘덕질’에 대한 감성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다.


가령, 여성 연예인이 남성 선수들의 스포츠를 ‘직관’하러 간 이유는 여러 가지 존재할 수 있다. 그 스포츠의 팀 팬이 되어 경기장에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위를 보고 굉장히 많은 수의 팬들은 경기장에 뛰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랑 사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상당 부분 자조적인 시각이 섞인 의견에 가깝지만, 그저 팬이 되어 경기장에 온 이에게 그런 오해를 심는다. 그러나 호감과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이유는 교제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연인’을 사귀는 기준으로 삼는 방식으로 ‘덕질’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당장 아이돌(Idol)의 본뜻은 ‘우상’이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hq720.jpg?sqp=-oaymwEnCNAFEJQDSFryq4qpAxkIARUAAIhCGAHYAQHiAQoIGBACGAY4AUAB&rs=AOn4CLAONoiIcBMXp1n_o2mJNhzDc8il5w 지금에서야 K리그 팬들은 강미나 님이 전북 현대 팬이라는 것을 알지만, 처음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왜 직관을 오는지 궁금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출처 : 강미나 유튜브)
전북 현대 덕질을 다룬 강미나 님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7E6XaREWBQw
(해당 아티스트는 사례로 든 것이며, 이 시리즈의 대상과 무관합니다.)


다만, 앞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편의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생일 카페를 여는 주최자가 생일 카페의 주인공과 아예 모르는 사이가 아닐 수 있다. 잦은 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해 서로에 대해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고, 심지어 아이돌과 팬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팬 싸인회 이벤트를 통해 라포(Rapport)가 꽤 형성되어 있는 관계도 있다. 직접 생일 카페를 연다고 아이돌한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그룹의 다른 멤버들에게 생일 카페 축전을 남겨달라고 요청했을 수도 있다. 케이팝 밖으로 나와서 다른 분야에서는 직접 소통하고, 오히려 생일 카페 주인공이 직접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팬들이 ‘우상’을 대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활동이다. 우상은 복제될 수 없고, 이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은 그렇기에 제한적이다. 팬들은 ‘우상’에 대한 떡밥을 계속 소비하려고 하지만, 이 역시 한정적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2차 창작이다. 아이돌이 직접 선보이는 1차 창작을 넘어서 팬들이 그 1차 창작을 기초로 콘텐츠를 가공한다. 아이돌을 직접 사진/영상 촬영하여 X나 인스타그램 등의 계정에 올린다. 아이돌의 활동을 담은 영상 기록들을 팬들이 직접 가공하여 SNS나 팬튜브(팬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린다. 2차 창작에 나서는 팬들이 콘텐츠를 만들면서 다른 팬들은 산술적으로 무한하게 생산될 수 있는 2차 창작 콘텐츠를 계속 소비할 수 있다.


아이돌 말고도 다른 산업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산업이라면 선수들이 직접 풀어가는 경기는 1차 창작이지만, 팬들이 ‘짤’을 만드는 것은 2차 창작이다. 팬이 나서서 전술을 분석하는 것도 2차 창작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산업 등에서도 팬들이 직접 2차 창작에 뛰어들고, 코믹월드나 지스타 등의 행사에서 그 2차 창작을 비공식 굿즈, 그림, 코스프레 등의 형태로 선보인다. 회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팬이 메워주고, 1차 창작물 밖 세상에서도 팬들이 그 콘텐츠를 기억하고 즐길 수 있게 한다. 회사만 이 콘텐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팬들도 이 ‘참여’에 함께하는 것이다.


2차 창작 콘텐츠를 만드는 팬은 우상이 ‘좋아서’ 만드는 것이지만, 동시에 여러 동기가 추가로 존재한다. 보편적으로 팬은 아이돌이 더 잘 되길 바란다. 자신의 2차 창작으로 아이돌을 홍보하여 이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하길 바란다. 실제로 ‘팬튜브’ 등을 제작한 팬들의 노력으로 특정 아이돌 멤버가 더 많이 알려지고 아이돌이 더 많은 활동을 한 사례들도 많이 존재한다. 아이돌 활동이 부진하여 이들이 더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관계는 소멸되거나 굉장히 흐릿해질 수 있다. 2차 창작은 관계 형성을 위하여 부단한 움직임일 수 있으며, 동시에 아이돌의 성장에 ‘참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상도 팬들의 2차 창작물을 보기에 다른 팬들 사이에서 2차 창작자를 구분할 수도 있다. 팬 싸인회 이벤트를 통해 서로를 인지하지 않더라도, 잦은 오프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2차 창작자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물론, 별도의 직접적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지나가다 얼굴이 보이면 ‘아 이 사람이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겠지만, 우상이 팬을 인지하고 있다는 상태는 팬에게 상당히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순간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생일 카페처럼 팬들이 직접 여는 오프라인 이벤트는 더욱 그럴 것이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기에, 섣불리 도전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시도하는 사람들도 더 적다. 그러나 생일 카페는 하나의 오프라인 이벤트로서, 팬들이 ‘덕질’ 활동에 대한 경험을 쌓기도 한다. 여전히 많은 수의 팬들은 아이돌이나 회사가 직접 주도하는 ‘공식 활동’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우상과 팬들이 이룩한 커뮤니티에서 생일 카페는 상징적인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회사와 아이돌이 그렇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이돌이 직접 생일 카페에 가서 팬들에게 축하받기도 하고, 그것은 절대 이례적이지 않다. 팬이 아이돌의 일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이벤트일 수 있지만 말이다.


hq720.jpg?sqp=-oaymwEnCNAFEJQDSFryq4qpAxkIARUAAIhCGAHYAQHiAQoIGBACGAY4AUAB&rs=AOn4CLDp8TP0TpT2zsKG0zEyC5uDewq-hg 팬이 직접 연 생일 카페에 방문한 내용을 영상으로 담은 레드벨벳 슬기 님의 유튜브 영상 썸네일
생일 카페를 방문한 내용이 담긴 레드벨벳 슬기 님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rNIm1Cf2tiA
(해당 아티스트는 사례로 든 것이며, 이 시리즈의 대상과 무관합니다.)


생일 카페와 같은 팬 주도 오프라인 이벤트는 아이돌과 팬들이 참여하는 팬덤 커뮤니티의 결정체다. 아이돌이 직접 개입한 1차 창작 콘텐츠를 기반으로 팬들이 2차 창작 콘텐츠인 생일 카페를 만든다. 또 다른 팬들이 생일 카페를 직접 갔다 와서 후기를 SNS나 콘텐츠에 올리며 또 다른 2차 창작 콘텐츠를 창출한다. 아이돌이 직접 와서 축하받고, 그 순간을 촬영하여 팬들이나 심지어 회사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콘텐츠의 공급자라고 생각되었던 아이돌은 수요자가 된다. 콘텐츠 공급자와 수요자가 뒤섞인다. 공급자이자 수요자가 된다. 일방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쌍방향도 아니다. 화살표가 이곳저곳에서 날라가고, 또 이곳저곳으로 날라온다.


그럼에도 그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왜 생일카페를 운영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아이돌 등의 생일 카페 주인공이 얻어가는 것이야 분명히 있겠지만, 팬들은 정작 얻어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쓰긴 했지만, ‘실용적으로’ 얻어가는 게 없다고 인지할 수 있다.


이 글은 단순히 생일 카페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 아니다. 생일 카페를 열고 싶어서 검색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이 시리즈에 담겨 있겠지만 그 내용만 적을 것은 아니다.


생일 카페를 준비하고 성공적으로 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외부에 표현하기 위해 적는 것이기도 하다. 나름 업을 하면서 보고 배운 게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PPT 형식의 보고서도 제작하고 있지만, 이 생일 카페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거쳐 어떤 것을 얻어갔는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 시리즈도 2차 창작 콘텐츠인 만큼 생일 카페를 열었을 정도로 응원하고 ‘덕질’하는 아이돌과 멤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고 글을 쓴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우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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