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생일 카페를 열었을까

에필로그 - 팬들과 그들이 덕질하는 대상이 만드는 기적

by El Fanatico
난 이 생일 카페를 왜 열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적으면 순전히 내 아이돌 덕이었다. ‘내가 덕질하는’ 아이돌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이돌이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생일 카페라는 이벤트를 열었고, 투자한 비용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손님이 차길 원했다. 그건 오프라인 이벤트를 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품어야 하는 계산이었지만 주 목적은 다른 것에 두고 있었다.


생일 카페 주인공이었던 아이돌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랐다. 생일 카페에 찾아오는 팬들은 다 주인공을 알고 있는 상태였겠지만, 그 주인공을 더 자세하고 꼼꼼히 알아줬으면 했다. 또한, 팬들이 서로 모이면서 주인공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대상임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생일 카페 밖에서도 많은 이들이 주인공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각인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이건 욕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인공을 아예 몰랐던 이들과 이제 알아가는 이들에게 주인공을 알리기 위해 생일 카페를 꾸몄고 임팩트 있는 결과를 위해 노력했다.


당초 생각했던 것 전부를 이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목표했던 바 중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충족했고, 그리고 의도했지 않았지만 얻어간 것들이 많았다. 생일 카페를 성공적으로 열기 위해 많은 것을 공부했다. 해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포토샵으로 그래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작물을 만들었다. 그동안 이름 있는 오프라인 이벤트에 참여해봤어도 이렇게 기획, 디자인, 디피, 운영 등 모든 분야에서 전면으로 내가 주도해서 운영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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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큰 행사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처음에는 작은 행사라도 그 모든 것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생일 카페에서 디자인을 주로 커미션 계정에 맡기는 게 일상이다. 그 일상 속에서 디자인 툴을 ChatGPT와 함께 배우고 혼자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 게다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내 힘으로 작업해서 현실화한 작업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었다는 것에 기뻤다.


남들이 쉽게 가지 않은 길을 갔지만, 그로 인해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쉽지 않은 길은 어려웠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티스트의 성장을 다른 팬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다가 내가 성장했다. 내가 생일 카페를 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덕질하는 대상과 내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케이팝과 관련된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먼저 거론하면, ‘생일 카페’라는 것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를 제작하고 나눈다는 것에 굉장히 익숙했던 것도 있다. 게다가 아이돌에 대한 생일 카페는 이제 굉장히 흔한 오프라인 이벤트가 되었지만, 케이팝 밖으로 향하면 이런 오프라인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찾기 매우 어렵다. 할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라 감히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보편적인 사례들’이 있고 없고 그 차이가 크다. 당장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지스타, 코믹월드 등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행사에서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품을 만들어 같은 팬들에게 나눠주거나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 이 역시 그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주최 측도 이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기도 한다. 코스프레 대회도 있고, 심지어 코믹월드는 팬들의 2차 창작이 주가 되는 행사다.


온라인도 비슷하다. 인스타그램이나 X, 그리고 유튜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고 선보인다. 단순한 SNS 활동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하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드러내려고 한다. 비용이 없어서라고 하기엔 그들은 활동을 다니고 카메라 등의 도구를 사서 촬영한다. 여전히 많은 사례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기원하며 이 온라인 활동에 도전한다. 이 역시 다른 이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활동을 보고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팬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IP를 가지고 있는 회사들의 수많은 저작권과 초상권을 활용하게 된다. 회사 입장에서 그것을 용인하고 싶지 않으면, 여러 형태로 이를 금할 수 있으며, 현재 사회 구조를 감안하면 그 행위는 이상한 일이 절대 아니다. 실제로 금하는 사례들도 있다. 그럼에도 선을 넘지 않는 이상, 생일 카페나 코스프레 행사, 혹은 2차 창작 행사들을 팬 입장에서는 감사하게도 용인하는 회사들이 많다. 심지어 ‘성공’하기 위해서 제작 과정에서 2차 창작을 기대하며 설계하는 곳들도 있다. 이 2차 창작을 기반으로 1차 창작의 회사가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도 존재한다.


팬들이 대상을 ‘덕질’하면서 품는 정성을 헤아리는 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고려해봐도, 1차 창작으로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을 2차 창작이나 바이럴 등으로 퍼뜨릴 수 있다면, 1차 창작을 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업계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쌓이는 부작용도 존재하겠지만, 업계 입장에서는 해당 2차 창작을 용인하거나 장려할 것이다. 팬도 자신의 ‘팬심’을 표현할 수 있고, 그 사례들이 인정받는 채로 점점 쌓인다면, 그 사례들은 해당 생태계에서 보편적으로 안착될 것이고, 더 많은 팬들은 이 보편적인 사례들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2차 창작을 필요로 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생태계에서 그런 ‘보편적 사례’가 없어서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분야의 사례를 분석하면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지만, ‘내 주변’에 그 사례가 없어서 쉽게 시도하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다른 생태계를 정말 ‘다르게’ 보고 이 방식을 이 생태계에서 시도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케이스들도 있으며, 아예 다른 생태계의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이 업계에서 보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이유일 것이다.


생일 카페도 오프라인 이벤트이니까, 한 개인이 오프라인 이벤트를 하는 것은 케이팝 팬덤에서 으레 볼 수 있지만, 스포츠 팬덤 사이에서는 입장이 다르다. 최근 팬덤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프로배구 등을 제외하면 생일 카페를 자주 볼 수 없는 환경이다. 오프라인, 온라인을 불문하고 이벤트를 진행하는 활동은 구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축구의 경우는 여기에 ‘서포터즈’라는 존재가 붙긴 하지만 개인 한 명이 본격적으로 하는 케이스를 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하는 온라인 영역에 집중할 뿐, 2차 창작 오프라인 활동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이른바 스포츠계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인플루언서과도 이야기를 해봤을 때, 온라인 베이스로 활동할 뿐, 오프라인 활동에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유튜브에 성장한 사람이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성장세를 키워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익숙하지 못했고, 어쩌면 비용을 투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만일 보편적인 사례가 존재했다면, 그 대답이 같았을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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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보편적인 사례를 보고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케이팝이 아닌 곳이라고 해서 이 생일 카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다른 분야의 팬덤에서도 생일 카페를 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일 카페라는 오프라인 이벤트는 다른 곳으로 점진적으로 퍼지고 있다. 흔히 이 문화 콘텐츠는 ‘공급자들’이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통념이지만, 생일 카페를 포함하여 이제 수요자 역할을 하는 팬들이 이 콘텐츠의 공급자가 된다. 심지어 공급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회사와 아이돌은 수요자 역할을 한다.


유튜브나 SNS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2차 창작은 더이상 수요자와 공급자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두 크리에이터이자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 물론 그중에서도 회사나 아이돌 등 문화 콘텐츠를 창조한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목소리를 ‘극소수’의 인원이 가지고 있다면 이른바 다른 팬들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일개 팬 한 명의 목소리가 이 팬덤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 생일 카페를 포함하여 오프라인 이벤트는 누구나 직접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팬들의 존재를 서로 확인한다는 것. 이렇게 덕질하는 사람이 나 말고 더 있다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 나로 인해 팬덤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 그 가운데서 팬덤 생태계가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는 것.


덕질을 하다 보면 언제까지 덕질할 수 있을지 순수한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케이팝의 사례를 꺼내면 아이돌이 계약 종료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으면 그 팬덤도 오랫동안 존속되기 힘들다. 여기에 쏟았던 것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팬들이 그 팬덤 생태계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아이돌의 입장에서도 더 길고 좋은 활동을 이어가지 못할 수 있다. 이 생태계에서 누군가의 이탈은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어느 순간 그 아이돌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쇠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간단한 해결책은 서로 그 생태계를 떠나지 않는 의지를 약속하고 끊임 없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팬도 안 떠나고 아이돌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지만, 이 관계성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짐 이상으로 이 덕질을 바탕으로 우리가 목표 의식을 세우고 동반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다짐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이번 생일 카페에서 체감했다. 그런 체계를 만드는 것도 큰 일이지만, 굳이 거창한 목표 의식을 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금, 그저 우리가 서로의 힘으로 같이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팬들과 그들이 덕질하는 대상이 만드는 기적이다.


이번 생일 카페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생일 카페를 연 이유는 아니었지만, 생일 카페를 준비하면서 내가 생일 카페를 연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일 카페 주인공에게 고맙고, 그 주인공을 덕질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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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인공은 팬들이 자신의 성장을 지켜봐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팬들도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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