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캠핑을 갑니다 시즌2
흔히들 직업병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도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분석하기. 어렸을 때부터 남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컨설팅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그 성향은 고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직업병이라고 하는 고질병으로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느끼게 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게 무어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 분석하기를 참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정도와 대상의 차이야 있지만 나의 직업병이라 생각했던 고질병을 분명 다른 사람들도 갖고 있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 스스로 또는 남이 분석하길 바라고, 그에 대한 합리적인 답을 내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어떤 한 가지 이유로 귀결되는 것들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꼭 그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뭐 때문에? 뭐가 문제인데? 아- 이게 문제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 단 하나의 원인이 커다란 현상을 직접적으로 야기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꼬집으면서 그것이 사회의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일으킨 범인으로 몰아세우길 참 좋아한다. 사회현상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말이다.
너 도대체 왜 그래? 뭐가 문제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가끔은 누군가를 향해 이런 의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 아주 심각한 병임엔 틀림없다.
트렌드의 변화에서도 이런 성향은 여전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요즘 사람들의 성향은 이렇더라', 그리고 그 성향의 변화는 A단계에서 B단계를 거쳐 C단계로 변하더라며 구체적인 분석과 설명을 원했다. 마치 포켓몬스터에서 포켓몬이 성장하는 단계를 나누듯 말이다. 일목요연하게, 누가 봐도 그럴싸하고 합리적이게 말이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캠핑 트렌드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단계가 있다. 정해진 룰 같은 것은 전혀 아니었고, 그저 캠퍼들 사이에서 흔히 전해지는 일종의 '캠핑에 빠진 이들이 거치는 단계' 같은 것이었다. 이미 많은 캠퍼들이 그 단계들을 거쳤기에 확률에 의거한 단계라고나 할까?
첫 번째 단계는 예산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반적인 모양의 텐트와 용품으로 시작하는 단계다. 우리의 첫 번째 캠핑이 바로 전형적인 그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단계는 텐트와 캠핑용품이 점점 진화하는 단계다. 그것이 편리함을 위해서든 아니면 감성을 위해서든 이 단계에 들어서면 짐이 점점 늘게 되고, 차의 안팎을 꽉꽉 채워 다닐 정도의 헤비 모드가 된다. 물론 차종이 짐을 던져도 될 만큼 공간이 여유 넘치는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허용하는 여유만큼 꽉꽉 채우게 된다. 이게 바로 작년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예 집을 끌고 다니는 단계다. 너무 많은 짐 때문에, 혹은 아이가 있어서 등 이유가 다양하지만 항상 고정되어 있는 집의 형태를 끌고 다니는 단계다. 바로 캠핑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캠핑카/카라반 단계를 말한다. 혹자는 럭셔리 단계라고도 하지만 사실 요즘은 텐트도 백 단위를 훌쩍 넘기는 제품들이 허다하기 때문에, 이미 감성캠핑의 두 번째 단계로 가고 있다면 그때부터 럭셔리 단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캠핑카나 카라반부터는 단위가 달라져서 거의 웬만한 차 값이지만.
이 단계 이후부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네 번째 단계로 불필요한 짐을 모두 버린 미니멀 캠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 좋은 카라반을 왜 버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아주 기쁘게 짐들을 모두 던저버리고 미니멀 백패킹을 즐기는 것이다. 아마도 점점 늘어만가는 짐과 각종 스트레스에 질렸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근거는 없다. 그냥 차로 갈 수 없는 산이나 바다, 섬이 좋아서 백패킹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결국 이건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크게 의미가 없달까?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취향이란 그런 거니까.
지금 우리 가족의 상황이나 여건을 봤을 때 미니멀은 아주 먼 곳의 얘기였다. 일단 아들의 기본 짐만 해도 한가득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혼자 자기 짐을 짊어지고 다닐 정도의 나이가 되지 않는 이상 미니멀 캠핑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때쯤 되면 과연 아들이 우리와 놀아줄까?
가끔 아들에게 물어보면 아들은
난 엄마랑 아빠를 사랑하니깐,
엄마, 아빠랑 같이 있을 거야.
라고 대답하지만, 과연 그 말을 기억이나 할는지. 가끔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들을 촬영해야 하나 생각도 한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항상 타이밍을 놓치고 난 뒤에 의미 없음을 깨닫는다. 시간이란 건 그런 거겠지.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잊어버리고, 누군가는 변하며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카라반은 어떨까?
우리가 애정 하는 캠핑장에서 자주 보던 미니 카라반이 있었다. 모델명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 카라반은 빈티지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게 꽤나 비싸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아마 많이 비쌀 거라고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카라반=비싼 것이라는 공식이 세워졌다. 그 뒤로도 종종 카라반을 보기는 했었으나, 눈에 띄는 디자인을 못 봤기 때문인 건지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연핑크빛 집은 얼마나 예쁜지, 나에게 있어 마지막 집은 지금의 세모 집뿐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나의 마지막 텐트이자, 캠핑의 끝이라고.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거라고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생각 자체가 나의 자만이었다. 아주 아주 바보 같은.
티큐브 한번 검색해봐 엄청 귀여워.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의 입에서 ‘티큐브’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는 그게 어떤 카라반이라고 얘기했지만, 난 관심이 없었기에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저 '이 사람이 또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롯이 나만의, 우리 가족만의 캠핑을 바라왔던 내 마음속 집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을 느끼며 숨이 막혀올 것 같던 날이었다. 똑같은 집, 똑같은 이야기,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나의 유일한 집인데, 집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얘기했던 티큐브가 떠올랐다. 바로 폰을 들고 검색해보니 새하얗고 둥글둥글한 카라반이 나타났다. 이기심과 질투로 뾰족뾰족한 나의 마음과는 정반대인 아주 예쁘고 귀여운 집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들이 올리는 티큐브를 들여다보다가 티큐브의 내부 도면을 보게 되었다. 작은 부엌과 침실 겸 거실이 되는 공간, 작은 옷장. 작지만 하나의 작은 집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티큐브를 개인 취향에 맞게 꾸며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다시 가슴이 뛰었다. 스러져가던 꽃이 다시 만개하는듯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은 없을 줄 알았던 우리의 네 번째 집을 찾았다.
그렇게 끝은 다시 시작이 되었다.
말에 힘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렇다고 믿는다.
마음속으로 40이 되기 전에는 하고 싶어 해 왔던 것을 이루자고 결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말하고 다녔다. 그러자 브런치의 작가가 되었다.
남편이 집이 없는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네가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싶었다는 말을 하자, 정말 캠핑은 우리를 위한 집이자 내가 쉬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캠핑 이야기는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바로 이젠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던 네 번째 집, 티큐브를 통해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티큐브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한국을 곳곳까지 찾아가 보려 한다. 언젠가 티큐브를 끌고 제주도를 가는 그 날까지.
그리고 이젠 확신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끝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끝이라는 말은 없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