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시즌 2
큰일이다. 갈 곳이 없어
주말에 캠핑을 갈까 하고 장소를 찾아보는데, 당혹스럽게도 알아보는 곳마다 모두 마감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고, 그동안 자주 찾았던 곳들도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치까지 마감이었다. 보통 시즌제로 운영하는 인기 많은 캠핑장들이 분기 혹은 한두 달을 묶어 예약 시스템을 열어 예약 시스템이 마비되는 경우가 있는데, 마치 그런 캠핑장처럼 평도 좋고 관리가 잘되는 캠핑장부터 이미 예약이 끝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새로운 캠핑장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했다. 시설도 괜찮으면서 장소도 좋고, 카라반도 들어갈 수 있는 캠핑장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왠지 하릴없는 마음에 인스타그램에 한탄 아닌 한탄을 올렸더니, 자동차 동호회에서 알게 된 지인분이 댓글을 달았다.
요즘 “캠핑 광풍”인 것 같다고.
그래 인정해야만 했다. 코로나는 생각보다 더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마스크가 이제 일상이 된 것처럼 우리의 여행 패턴도 변화하고 있었다.
WTO의 팬데믹 선언과 함께 코로나가 전 세계에 유행하자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관광산업계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이대로 여행은 끝이 없는 암흑 터널로 들어가는 듯했다.
이러한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 저널에서는 이러한 화두를 던졌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가능할까?’라고. 관광 관련 학회와 뉴스에서도 포스트 코로나에 등장할 뉴 노멀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종식될 것 같았던 코로나가 아직도 유행처럼 번지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논하기는 어렵지만, 포스트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코로나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여행 트렌드는 있었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그건 바로 ‘캠핑’과 ‘차박’이었다.
거리두기를 한참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코로나 1도 없는 곳에서 나 홀로 캠핑’이라는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카라반 커뮤니티에서는 답답한 집콕 생활만을 유지할 수 없어 ‘인적 없는’ 노지로 나와봤다는 이야기들이 올라왔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고 난 뒤에는 참고 참았던 사람들이 ‘5년 만에 캠핑을 나왔다.’고 올리면서 옛 캠퍼들의 귀환까지 알렸다. 듣자 하니 한 뉴스에서 보도하길 차박 매트의 판매율이 지난해에 비해 6배나 뛰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캠핑장을 예약하기가 쉽지 않지...
캠핑 광풍이라 말한 동호회 지인의 댓글에 다른 지인분이 댓글을 달았다. 노지가 답인 것 같다고.
그래 어쩌면 정말 노지 캠핑이 답일지도 몰랐다.
카라반을 계약하고 한참 카라반 관련 커뮤니티들을 떠돌 때였다. 그때 카라반 유저들은 하나같이 카라반 캠핑의 꽃을 ‘노지 캠핑’이라 말했다. 당시에는 카라반 캠핑이 뭐고, 들살이가 뭔지 하나도 모르던 때였고, 지금도 전부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카라반 초보이지만, 전기도 화장실도 물(개수대)도 없는 일명 3 무 노지를 왜 좋다고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었다. 단순히 드는 짐작은 일단 노지이기에 돈이 안 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카라반은 화장실도 달려 있으니(물론 우리처럼 안 달려있는 카라반도 있지만)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였었다.
아직 우리는 카라반을 끌고 나가본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초보 중의 초보라 아직 노지를 도전할만한 클래스는 아니었기에 그동안 노지는 절대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알고 있던 캠핑장들이 갈 수 없게 되고, 집에 본의 아니게 갇혀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자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이 무척 좋았던 일요일 오후, 우리는 생애 첫 노지 캠핑을 나가보기로 했다. 아직 잠을 잘 용기는 없어 나들이에 가까운 캠핑이었지만 말이다.
가장 어려웠던 건 장소 찾기였다. 우선 나들이 정도로 가볍게 다녀올만한 거리여야 했고, 사람이 없는 곳이어야 했으며, 우리가 카라반을 끌고 찾아갈만한 곳이어야 했다. 그런 노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 이유는 아직도 옛날 옛적 사고방식을 갖고 자연을 함부로 사용하는 캠퍼분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옛날 옛적 사고방식이라고 비유한 건 과거의 행락 형태가 대부분 그랬기 때문이다. 강이나 들에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밥 해 먹고 쓰레기 버리고, 그때는 자연에 대한 제재도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던 터라 강이 있고 그늘이 있는 어디든 취사하고 야영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지금처럼 정해진 곳에서만 취사하고 야영해야 하며, 가지고 온 쓰레기는 집으로 되가져가야 하는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가다가도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갖고 있던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사람들이다. 고속도로에 개인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하면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 더 크다. 세금을 냈으니 뒤처리는 공공이 해야 한다는 건, 사실 다시 우리에게 또 다른 세금으로 돌아올 텐데도.
어쨌든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캠퍼들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이 좋은 의미로 공유하던 노지 캠핑 장소들이 쓰레기와 자연 훼손으로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도 내 동네에 자꾸 관광객들이 찾아와 시끄럽게 놀다가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 간다고 하면 당장에 민원 제기했을지도 몰랐다. 어렸을 적 살았던 시골 동네의 작은 관광거리 하나 보겠다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자동차가 줄지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불쾌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터라 이해가 되었다. 정말 어떤 심정으로 그분들이 노지를 막았을지를 말이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에 노지 정보가 귀해졌다. 공개된 노지도 있지만 아주 특별히 정보를 관리하는 노지들도 있었다. 노지를 서로 알려주고 하는 것도 없어졌다. 어떤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 함부로 자연을 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알고 보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나쁜 사람들이 아닐 텐데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가 보통 잘못을 알지만 행한 사람보다 모르고 행한 사람이 더 나쁘다고 한다. 그렇지만 난 반대다. 모르면 알고 고치면 된다. 다시 한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알면서도 잘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건 고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니까.
우린 가까운 강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노지 정보의 1도 없는 터라 온라인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공개 노지로 가기로 했다. 캠핑보다는 낚시가 더 유명하다는 곳이었다. 보통 노지는 사전답사를 가기도 한다던데, 우리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기에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갔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도 명색이 노지 캠핑인데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어서 카라반에서 쓸 물과 먹고 마실 것 모두 싸들고 출발했다.
세상에 생각대로 되는 일 없다더니 도착한 처음 생각한 포인트는 내려가는 길에서 막혔다. 차들로 인해 경사로가 돌과 움푹 파인 공간 투성이었다. 이미 우리는 첫 카라반 캠핑에서 카라반 연결장치를 부러뜨릴뻔한 기억이 있었기에 곧바로 포기했다. 대신 바로 옆의 다른 장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좁은 도로에서 카라반을 돌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 운전에도 미숙했던 터라 카라반을 돌리지 못해 낑낑 거리는 사이 어느새 뒤에 차가 지나가기 위해 섰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손짓과 고개 숙임을 보내고 결국 카라반의 연결장치를 풀어 손으로 밀어 돌렸다.
뻘짓도 이런 뻘짓도 없다고 생각하며 우여곡절 끝에 카라반을 돌린 우린 바로 옆 다른 포인트로 향했다. 이번엔 방금과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려고 차만 가지고 남편이 답사를 다녀왔다. 그 사이 아들과 나는 덩그러니 강둑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그런데 하늘이 왜 그렇게 파랗고 예쁘던지 한참 바라봤다. 올봄엔 코로나로 인해 꽃놀이도 놓치고 집콕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 대신 새파란 하늘을 얻었다. 분명 이맘때쯤에 뿌옇게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가 잔뜩이었었는데. 한참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그 미세먼지를 마시고 병원에서 조산증 진단을 받고 입원했던 게 이맘때쯤이었기에 잊으래야 잊을 수 없었다.
사전답사를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바로 옆에 댈만한 곳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카라반을 다시 연결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강둑을 한참 가다가 둑길을 따라 내려가니 정말 차들이 여럿 대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저 멀리 강으로 튀어나온 둔치에는 낚시하러 나오신듯한 차들이 대어져 있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난 우리가 댄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강둑에 서서 바라보는 강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오른쪽을 보니 강둑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었다. 아마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들어진 길이리라. 아들과 그곳을 내려가 봤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진 풍경에 반하고야 말았다.
멀리 그린듯한 산 능선에서 사선으로 흘러 내려가는 듯한 아름다운 강이었다. 마침 머리 위로 올라온 태양에 하얗게 빛나는 강의 물결을 보고 있으니 그저 좋았다. 나오길 잘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니, 왜 카라반 캠핑의 꽃은 노지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만 같았다.
단순히 예쁘다고 함축하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움이었는데, 아들의 반응은 ‘우와’와 ‘예쁘다’가 끝이었다. 그걸로 아들은 모든 표현을 마쳤다는 듯 다시 카라반으로 올라갔다. 난 더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아들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카라반에 들어가는 아들을 따가 갔다가 카라반의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또다시 감탄을 흐렸다. 네모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그림 같았기 때문이었다.
강둑 아래에서 본 풍경은 온몸을 압도하는 파노라마 풍경이라면 카라반 안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나도 모르게 집중되는 풍경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그저 오늘은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다. 일 년에 이런 날을 만난다는 것은, 그것도 황금 같은 주말에 만난다는 것은 정말 드문데, 올해 우리의 운은 좋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곧이어 뒤늦게 출발하신 부모님들께서 오셨다. 역시나 풍경이 너무 좋다면서 좋아하셨다. 오랜만에 이렇게 야외에 나와보신다며 그 옛날 우리가 손자 나이 때 었을 적 이야기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물론 캠핑을 즐기는 방식이나 장소, 행태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지만, 그렇게 캠핑은 3대에 걸쳐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우리는 강의 풍경과 바람을 즐기며 사 가지고 온 빵과 커피를 나누어 먹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자주 먹었던 꽈배기는 아들의 새로운 잇(eat) 템이 되었다. 분명 시대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그 안에 공통된 무언가를 발견할 때 이상하게 만족감을 느낀다. 우리가 정말 가족이라는 만족감, 너와 내가 공통된 무언가 있다는 동질감.
정말 완벽한 피크닉이었다.
다소 뜨겁게 느껴지던 태양이 어느새 붉어지고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의자를 가지고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조용한 수면 위를 한참 바라보는데 커다란 물고기 하나가 저 멀리서 튀어 올랐다가 사라졌다. 나 혼자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물속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고요한 풍경이 한순간에 와글와글한 물속 빌리지가 되었다. 혼자 와글와글한 물속 세계를 상상하다가 웃어버렸다.
괴테가 말하길,
사람은 하루에 한 번은 좋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무척 공감한다. 하지만 우리는 워낙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폰만 들고 있으면 좋은 노래와 시와 그림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느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 명확하게 우리에게 좋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자연.
그리고 그걸 우리에게 주는 것은 캠핑이다.
코로나가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는 이제 종식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과 여행을 지켜낼 수 있을까가 되었다. 캠핑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아무도 없는 노지라고 해서 접촉이 1도 없기란 쉽지 않았다. 고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코로나로부터 우리의 캠핑을, 우리의 가족을.
그리고 다녀왔던 적이 없던 것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자연을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