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이별은 말없이 문을 닫는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끝나고,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모든 것이 들려왔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폭발처럼 쏟아지는 침묵이 있었다.
가슴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파편이 터졌고,
그 잔해가 무너진 마음 위로 천천히 쌓여갔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은 없었지만,
분명히 나는 울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깊이,
전부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오직 혼자이고 싶었다.
누구의 위로도,
시선도,
말 한마디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미안해질 만큼,
고요가 내려앉은 방.
감정이 터진 것도 아니고,
눈물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감각이 꺼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말이 사라진 자리는,
그렇게 내 감정의 무덤이 되었다.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은 하지 못했지만,
받아들이는 척은 할 수 있었다.
사랑이 끝날 때
진짜로 중요한 건 납득이 아니니까.
그녀가 더 이상
나를 품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 남았고,
그 외의 말들은
이유이기보다는
배경처럼 들렸다.
나는 말보다,
말하지 않은 것들 속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꼈다.
차라리,
화라도 냈다면
울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다정했고,
조심스러웠고,
너무 조용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이별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녀도 끝났다.
마치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 온 대사처럼
조용히, 정확하게 떠났다.
더는 묻지 않았고,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의 미래에서 한 발짝씩 물러서고 있었단 걸.
그녀의 이별은
그날 시작된 게 아니었다.
말없이 진행되어 온,
침묵의 누적이었다.
나는 그 퇴장을
마지막까지도 사랑처럼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랑은 끝났는데,
사랑처럼 끝났기 때문에.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일하듯 슬퍼했고,
숨 쉬듯 아파했다.
공감도, 위로도
닿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일상을 흉내 내면서도,
마음 어딘가는
계속 얼어 있었다.
이별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매일 새로 일어나는 현실 같았다.
말 한마디,
풍경 하나,
음악 한 소절에도
그날이 스며 있었다.
나는 매일, 조용히 무너졌다.
티 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
나만 알고 있는 방식으로.
시간은 흘렀고,
나도 흘러가는 척을 했다.
하지만 문득,
말도 안 되는 순간에 그녀가 떠올랐다.
편의점 조명의 색,
엘리베이터 안의 향기,
창밖을 스치는 바람의 방향.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그녀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기억 속에서 살아남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녀는 감정 속에서 여전히 현재형이었다.
이별은 말로 끝났지만,
감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아직도 그녀를 떠올리는 걸까.
왜 끝났다는 걸 아는데도
어떤 장면 앞에서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젖어드는 걸까.
나는 참 잘 보내준 사람이었는데,
왜 아직도 그때 거기,
그 순간에 붙들려 있는 걸까.
혹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의 나보다 더 진짜였던 건 아닐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지금보다,
그녀를 사랑했던 내가
더 나 같았던 건 아닐까.
이별은 어떤 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면 없이 스며든
공기 같았다.
갑작스럽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내 안의 공간을 차지해 갔다.
나는 이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그저 옆에 두고,
무거운 날엔 무겁게 안고 살아간다.
애써 떨쳐낼 필요 없는 감정.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간 슬픔은,
말없이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아직도 조용히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