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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10. 2022

홀로 사는 즐거움

오늘 아침


오늘 아침은 반려 식물의 물 샤워로 시작되었다. 혼란한 나 자신을 추스르느라 세수를 못 해주어 꼬질꼬질해졌지만 여전히 말갛고 푸른 존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잎사귀를 정성껏 매만져주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인센스에 불을 붙였다. 차가운 기운과 익숙한 실내의 기운, 연기와 향이 뒤섞인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오묘한 조화를 이룬 공기의 기운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너무 빠른 변화도 싫고 무겁게 정체된 것도 별로. 무엇도 마땅치 않은 요즘의 내게 적당한 기운이다.


그러고 나서 습관적으로 유튜브 경제 방송을 틀었지만, 집중해서 듣지는 않는다. 투자라는 선택을 했으니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시장 상황을 관조한다. 예전처럼 밤낮으로 주식 창을 들여다보면서 집착하지 않는다. 고요한 아침에 작은 소음 하나를 더하여 적막함을 덜어낸 정도의 적당한 무게를 유지한다.


어제저녁 꺼내 놓은 고등어를 굽고, 밥과 밑반찬을 꺼내어 아침 식사를 한다. 꽉 막혀있는 듯한 체기 덕분에 밥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이상한 상태에서 조금씩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먹으면 괜찮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잘 챙겨 먹는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밤잠도 설치지 않는다. 점점 정상 범주를 찾아가고 있다.


함부로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말을 줄이고 삐죽 대는 마음 자체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마음 수련을 한다. 입에서 나오는 입말은 생각을 한번 더할 수 있지만, SNS나 문자 메시지처럼 손으로 쓰는 손가락 말은 즉각적인 생각이 그대로 나온다. 문장을 고치고 다듬어 글로 만드는 글말처럼 손말에도 순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한 번 더 생각한다. 무겁고 답답하더라도 후회를 줄이는 편을 택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더 한다.


임인년의 새날을 준비한다. 일찌감치 서두르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다 때가 있으려니, 흘러가면 되겠거니. 여러 생각을 이만 내려놓고 출발하려 한다. 다사다난한 지난날을 놓아주고,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기 위해 가벼운 움직임을 더해야겠다.




그때 그곳에 내가 할 일이 있어 내가 그곳에 그렇게 존재한다. 누가 나 대신 그 일을 거들어준다면 내 몫의 삶이 그만큼 새어나간다. (…) 오늘 나는 이와 같이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내 실존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나를 형성하고 내 업을 이룬다. (19)

ㅡ 홀로 사는 즐거움(법정, 샘터,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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