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책상을 골라야 했던 이유
취향에 대한 편지, 이경
밤입니다. 종종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느즈막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크롬 창을 가득 채운 탭만큼 쌓인 회사일을 잠시 접어둔채 저녁을 먹고 밤산책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이제는 이 편지를 쓰는 개인용 노트북만 놓여 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조금 피곤하고 꽤나 자유로운 느낌입니다.
물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밤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물리적인 분리가 어려우니 시간으로 주변과 저를 분리하려고 했던 탓입니다. 가족들은 온통 잠들었기 때문에 오도카니 앉아 아무 말하지 않아도, 어두운 표정을 지어도 상관없는 그 시간이 오면 형광등 대신 스탠드 조명만 약하게 켜두고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그런 밤에 들었던 밴드 음악과 발라드와 뉴에이지 피아노 곡들을 아직도 좋아합니다. 다들 좁고 옹골진 제 마음 구석구석마다 들어앉아 대체 불가능한 멜로디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가지각색의 선율이지만 비슷한 점은 있습니다.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깨달음 혹은 잃어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지요.
저의 취향은 상실입니다. 세상에는 제가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너무 많은데 제 마음은 영 단단해지지 않아서 무언가 떠나는 순간을 자꾸 곱씹다 보니 그럽니다. 슬픔과 우울은 참 힘도 세서 누가 같이 들어주는 순간마저 기억에 남깁니다. 같이 울어주는 음악, 울지 말라고 안아주는 음악들과 나란히 누운 밤이면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햇빛을 담고 일렁이는 수면을 쳐다보는 물고기의 심정이 되지요. 저는 이 과정을 파랗게 질리도록 반복하며 삽니다.
나무 책상을 고집했던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나서 생애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얇은 파티클 보드를 얹은 2인용 철제 책상을 내다 버리고 오롯이 저만을 위한 새 책상을 사는 일이었거든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 위해 열흘 내내 쇼핑몰을 넘나든 기억이 납니다. 고심 끝에 고른 것은 상판과 다리 모두 진한 밤색에 선반이 없고 콘솔과 같이 커다란 하부 서랍 두 개만 달린 나무 책상이었습니다. 아주 낮은 턱이 앞쪽을 감싼 형태라 안정감도 있었지요. 타이핑을 하느라 팔을 가져다 대도 싸늘하지 않고, 잘못 부딪쳤을 때도 깡깡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데다, 엎드려 있어도 폭과 길이가 넉넉하게 남았고요. 속에 담은 차가움이 버거울 때, 그 책상에 팔을 걸치고 의자에 느슨히 앉아 음악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안정감이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독립하면서 책상이 또 바뀌었습니다만 여전히 차갑지 않고 속이 꽉 찬 느낌을 주는 책상 위에 스탠드 조명만 켜두곤 합니다. 그러면 유희 씨에게 첫 편지를 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완성되지요. 다시, 캄캄한 밤은 창문 너머에 있고 흰 불빛은 조용히 내립니다. 저는 음악과 함께 기억 속에 풍덩 빠집니다. 오늘은 스스럼없이 부는 가을바람과 함께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