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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y 01. 2018

[인도] 푸쉬카르에 갔다.1

나의 이중성에 잠시 머리가 멍했다.

그럼 2016년 나의 푸쉬카르에 대한 이야기다.


미리 세워둔 계획대로 나는 10월 말 푸시카르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푸쉬카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버스로 간다면 푸쉬카르로 바로 들어가는 사설버스를 찾을 수 있지만, 기차로 이동한다면 푸쉬카르까지 가는 기차를 찾기란 쉽지 않기에, 아즈메르를 경유해서 가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푸쉬카르는 행정구역상 아즈메르시(city)에 속하며, 아즈메르에서 고작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즈메르 역에서 내리게 되면, 푸쉬카르행 버스가 출발하는 아즈메르 버스터미널로 가야한다. 걸어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지만, 야간기차에서 내리자마자 23kg의 짐과 함께 삐거덕거리는 무릎을 배려해 기차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쉐어 오토릭샤를 탔다. 10루피만 내면 되지만 커다란 짐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미안해 15루피를 냈다.   


   

아즈메르에서 30~40분을 달려 아직 가게 문도 열지 않은 이른 시간에 푸쉬카르에 도착했다. 푸쉬카르의 거리는 한산했지만 길가의 짜이집은 분주했다. 둥그렇게 바닥에 모여 앉아 짜이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엉덩이를 들이미니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흠흠... 이럴 때는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최고다. 눈치를 보다가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대뜸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말했다. 정말로 아주머니가 게스트 하우스를 알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별 기대 없이 그냥 어색한 분위기를 물리치기 위해 꺼낸 말인데 내가 물어본 게스트 하우스가 이렇게 유명한 집 이었나? 내 옆에 함께 쭈그려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물론, 맞은편의 아저씨도 이 게스트 하우스를 알고 있었다. 이상하다. 단 150루피의 이 일대에서 가장 저렴한 곳중 하나인데... 정말 작은 마을이긴 한가보다. 짜이를 다 마신 아주머니는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직 짜이를 다 마시지 못한 내 가방을 툭툭 치고 크게 웃으면서 게스트 하우스에 데려다 주겠다며 어서 일어나라고 나를 재촉했다.      




처음 찾아간 게스트 하우스는 낙타축제가 시작하기 3일 전까지는 평소가격에 방을 줄 수 있으나 그 이후부터 그러니까 축제 전4일과 축제7일 총 10일간은 축제 가격인 3배의 방값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다음 찾아간 게스트 하우스는 축제 전날부터는 이미 예약이 되어 있기에 축제 기간에는 머무를 수가 없다고 했다.

세 번째 게스트 하우스 역시 축제 시작 3일전 까지는 일반 가격에 방을 줄 수 있지만, 축제가 시작되고 나면 2배 금액을 내야한다고 했다.


이런...자본주의의 짐승들...!!!


세 곳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흥정에 실패하고 나니 갑자기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발을 질질 끌면서 큰길로 나가 문닫힌 가게 앞에 걸터 앉았다. 모든 게스트 하우스들이 이렇다면 굳이 푸쉬카르에 오랜시간 머물 필요는 없다. 다른 곳에 갔다가 2주 뒤에 돌아와 축제기간에만 머물던지, 아니면 힘들더라도 아즈메르에서 출퇴근을 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방금 도착한 푸쉬카르에서 떠날 생각을 하니 저절로 한숨이 푹푹 나온다. 어디를 가야하지? 우다이뿌르(인도 라자스탄의 대표적인 관광지)라도 다녀와야 하나? 발로 땅만 꾹꾹 찍어 차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섰다.          



당시 나의 인도여행 경력은 3개월을 조금 넘었고, 집을 떠난지는 5개월에 가까운 시점이었다. 이정도면 그래도 나름 인도 여행 좀 했네!!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나는 인도라고 하기에는 인도스럽지 않은 북쪽 산간지역과 대도시인 델리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었다. 나에게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아니면 눈치가 너무 없어서 사기를 치려는 시도를 사기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푸쉬카르가 어디인가? 푸쉬카르는 라자스탄주(state)에 속한다.      


라자스탄하면 “라자스탄에 가면 인도 사람인 나도 사기를 당하니까 항상 조심해야해. 혼자 다니지 말고 친구랑 함께 다니도록 해. 인도사람이 말 걸면 나한테 전화하고, 모르는 사람하고는 절대 이야기하면 안돼.”라고 말해준 인도 친구들이 떠오른다. 인도인들도 사기를 당한다는 바로 그 라자스탄이다.                          


그런데 이 라자스탄의 길거리에서
“방 찾고 있어요?” 라고
가죽 부츠와 가죽 자켓, 그리고 까만 선글라스를 걸치고 있던 인도인이 오토바이에 앉은 채 묻고 있는 것이다.

“일 없어요.”
아침부터 내 뜻대로 여행이 진행되지 않아 짜증이 나있는 와중에, 아무리 봐도 순수한 의도로 접근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인도인의 등장에 까칠하게 반응했다.

“방 찾고 있으면, 우리 호텔로 갈래요? 가격도 싸고 전망도 좋아요.”
언제나 그렇듯 인도인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됐어요. 귀찮게 하지 마세요. 호텔 찾고 있는거 아니에요.”
점점 더 짜증이 났다.

“어짜피 갈 호텔도 없는거 아니에요? 우리 호텔 위치도 좋아요. 내 친구가 하는 거라 나랑 같이 가면 특별히 좋은 방을 싸게 줄꺼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우리 호텔에 한국 사람도 많이 머물러요.”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것이 그냥 물러나지 않을 것 다.

“여기서 얼마나 걸리는데요? 가격은 얼마고요?” 거절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물어봤다.

“내 오토바이로 가면 10분이면 가요. 발코니 있는 방 800루피밖에 안 해요.”

오토바이로 10분이라니... 거리도 멀고, 방값도 비싸다. 이럴 줄 알았다.

“거리도 너무 멀고, 비싸요. 괜히 여기서 시간낭비하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인도에서는 단호해야 한다.

“그러지 말고 일단 가서 보기라도 해요. 나는 좋은 사람이고, 당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거에요.”
하지만 단호함이 잘 먹히지 않을 때도 있다.



가죽 자켓 남자의 호텔을 가느니 마느니 30분이나 실랑이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고 가게들도 하나씩 문을 열고 있었다.  도무지 내 앞에서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기에 가방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랬더니 이 남자 내가 가려는 길목을 오토바이로  가로막는다. 로 한발자국 물러나니 오토바이는 한바퀴 다가온다. 이제 정말로 못 참는다.


“이 미친 XX야!! 안간다고 했잖아!!! 당장 내 앞에서 꺼지지 않으면 진짜 후회 할 꺼야”
그대로 남자를 밀치고 다시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던 골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남자가 뭐라 말하는데 소리가 꼭 욕을 하는 것 같다. 따지러 가기위해 몸을 돌렸다. 남자는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보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가죽자켓 남자에게 한참을 시달리고 나니 억울해서라도 푸쉬카르에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가죽자켓의 호텔에 안가고 다른 곳에 머물러야겠다. 그리고 푸쉬카르에 있는 동안 저 남자를 길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게스트하우스 탐방에 나섰다.     


몇 군데 게스트 하우스를 더 돌아보고 결국 세 번째 방문했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씩씩대며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가죽자켓 남자에 대해 불평을 하니 세번째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나보다 더 심하게 그 남자의 욕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이런 종류의 대화는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우선 10일정도 그곳에 머물다가 아즈메르로 숙소를 옮기던지, 아니면 푸쉬카르의 다른 곳으로 방을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부터 불안했고, 마지막은 처참했던 푸쉬카르의 생활이 시작됐다.

          


이고 꼬인 시작이었지만, 의외로 푸시카르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친절했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수다스럽지만 정중했으며, 푸쉬카르는 평화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푸쉬카르의 음식은 맛있었다. 푸쉬카르는 라씨도 맛있고, 카레도 맛있고, 무슬리도 맛있고, 피자도 맛있다.


하지만 가장 맛있는 건 팔라펠랩(푸쉬카르에서는 롤링난 이라고도 부른다.)이다. 팔라펠은 병아리콩과 야채를 넣고 으깬 것을 튀긴 중동음식인데, 이 팔라펠과 야채, 치즈 등을 넣고 짜파티에 싸서 먹는 팔라펠랩은 인도에서 푸쉬카르가 최고다. 매일 아침 팔라펠랩을 먹은 작은 식당은 작은 식당은 인생 최초의 단골 집이 되었고, 아마도 평생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으로 남을 것이다. 사실 푸쉬카르에 두 번째로 가게된 이유는 이 가게의 팔라펠 랩과 가게 식구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인가 보다.     



푸쉬카르에 처음 도착한 그날. 그 힘들었던 푸쉬카르의 아침을 고작 팔라펠 랩 하나가 머물고 싶은 마을로 만든 것 처럼 맛있는 음식이 나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대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내가 푸쉬카르에 도착한 그날 아침에 있었던 가죽자켓 남자와의 대화를 맛잇는 팔라펠랩을 먹으면서 회상하는 것 말이다.  

   



인도에 있으면 좀 더 감정적이고, 다혈질이 된다.


버스나, 기차에서 인도인과 나란히 앉아 대화하거나, 길거리에 앉아서 인도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도인들의 적극성에 감탄하게 된다. 그들은 거침없어 보인다. 물론 모든 인도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13억의 인도인 중 극히 일부에 대한 말이다. 많은 인도인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망설임이 없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억울함을 표현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동네방네 그 일에 대해 말하고 다닌다. 슬픈일이 있으면 슬픈 표정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늘 만난 낯선 사람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신기한 것은 감정표현에 솔직한 인도인 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모욕감을 주는 일은 별로 없다. 예를 들어 한 걸인이 끈질기게 돈을 달라고 쫒아 다닌다 하더라도 소리치며 모욕감을 줘가면서 내쫒지 않는다. 그들은 걸인과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돈을 손에 쥐여 보낸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으면서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옷차림이나 생김새 국적과 관계없이 항상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에게 인도인들은 그들 안에 갇혀 있는 생각들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각이 단지 나의 바람의 투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인도에 있으면 뭐든지 담아두지 않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감정적이고 다혈질이 된다. 때때로 그런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상황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되지만, 나쁜 상황에서는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된다. 아무리 화를 참고, 부드럽게 해결하려고 마음먹어도 나도 모르게 속에 담아놓은 이야기가 입을 통해 그대로 나와 버린다. 이것이 내가 인도인들의 모습을 부러워해 나도 나를 드러내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 우월감에 젖어서 인도인들을 낮게 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두 가지가 모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날 아침 그 남자가 나의 길목을 막고 끈질기게 굴었어도 길 한복판에서 욕을 하면서 소리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만약 이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행동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인도에서의 아니 타지에서의 나의 행동과 이중성에 잠시 머리가 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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