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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Jun 06. 2018

[인도] 푸쉬카르 낙타축제에 갔다.2

그래서 더욱 좋은 장소로 기억된다.

인도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고 평화로웠던 푸쉬카르의 기억은 푸쉬카르를 떠나는 그 날 나와 12억 인도인에게 닥친 (적어도 나에게는)비참하고 악몽같은 사건으로 더욱 행복했던 장소로 기억되게 됐다.  


 새벽 4시.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것에서 사건은 시작됐다.


너무나도 소심하고, 망설이는 두들김은 나를 깨우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 확신 할 수 없어 두 번에 걸쳐  울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잠을 잤다.     .


오전 6시. 눈을 뜨니 여러 메시지가 핸드폰에 찍혀있었다. 서로 다른 발신인으로부터 온 메시지들은 하나 같이 인도에서 돈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을 걱정 말라며 안심시켰다. '오래된 사기방법 중 하나 일 뿐이니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푸쉬카르에서의 마지막 날 이자, 낙타축제의 둘째날을  즐기기 위해 멜라 그라운드로 갈 채비를 했다. 카메라가방을 메고 문을 나서는데 처음부터 숨김없이 음흉함을 드러냈고, 가끔은 그 정도가 소름이 돋을 정도였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커다란 자신의 의자에 앉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난처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부탁이 있어요. 체크아웃을 조금만 빨리 해줄 수 있어요? 오늘 당신 방에 체크인 하는 사람이 푸쉬카르에 일찍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체크인을 일찍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내가 당신에게 물어보고 말해준다고 했거든요."


"네. 그럼 지금 체크아웃 할께요, 하지만 밤에 델리로 떠나는 기차시간까지 휴식공간에서 쉬어도 되죠?"


"그럼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어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은행이 문을 열지 않아서 저한테 잔돈이 없거든요. 혹시 잔돈을 바꾸어 줄 수 있나요? 당신은 이따 우리 건물 옥상 레스토랑이 문을 열면 거기에서 다시 잔돈을 교환하면 되니까요."


나는 방값을 계산하기위해 꺼내던 여러 장의 1000루피 지폐를 다시 지갑에 집어넣고, 잔돈을 꺼내 주었다.


"남은 잔돈도 내 500루피 짜리하고 바꾸어 주세요." 부탁인지 강요인지 명령인지 어느쪽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왠지 등허리에서 부터 쎄한 느낌이 머리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피차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그런 사소한 말투의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잔돈을 꺼내들자 주인은 낚아채듯 돈을 가져갔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포옹을 하려 뻗는 팔에서 슬쩍 몸을 빼고, 악수도 하지 않고 짐을 챙기려 방으로 돌아왔다. 어젯밤에 이미 체크아웃 준비를 해놓은지라 한쪽에 세워둔 가방을 매고 로비에 한가하게 앉아 있던 잔심부름과 청소를 하는 소년에게 열쇠를 건내는 것으로 순식간에 체크아웃을 마쳤다.


그리고 멜라그라운드로 가기 전, 잠시 인도여행 카페에 접속했다. 카페는 오늘 00시 인도의 총리 나렌드라 모디가 발표한 화폐개혁에 관한 글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까 등에서 머리까지 올라오지 못한 쎄한 기운이 두뇌를 강타함을 느꼈다.


'아...당했다.'


나는 바로 사무실로 뛰어 내려갔지만,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그곳에 없었다. 다시 계단을 뛰어올라가 열쇠를 건냈던 소년에게 주인이 어디에 갔는지 물었다. 소년은 모른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대로 다시 사무실로 내려가 무작정 주인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30분쯤 화난얼굴로 그곳에 앉아 있으니, 10대 후반의 여자아이가 들어오더니 "오늘 할아버지는 아즈메르에 가셨어요." 라고 말하고서는 나가버렸다.


'정말로 당했다.' 주인은 화폐개혁에 대한 모든 것을 알면서 내게서 돈을 뺏어간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의 화폐개혁은 간단히 말하면 인도에서 500루피, 1000루피 단위의 지폐사용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오늘부터. 현재 소지하고 있는 500루피, 1000루피 지폐는 은행과 우체국에서 100루피 이하 단위의 지폐와 교환이 가능하며, 인도인은 통장에 저금을 하면 추후에 신권지폐로 인출이 가능하지만 오늘부터 2일간 모든 은행과 우체국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위조지폐단속과 수십억대의 현금 탈세를 근절한다는 인도 경제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는 하지만, 당장 가지고 있는 돈이 500루피 이상의 지폐뿐이라면 눈앞이 깜깜해 진다.


더군다나 화폐개혁 첫날, 시골인 푸쉬카르에서 떠도는 소문은 500루피와 1000루피는 영원히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곳이 인도라는 것과, 인도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아무리 불안하더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혹시라도 환전소에서 500루피 지폐를 바꾸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는 아침9시부터  거리를 배회하며 큰 가게와 환전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환전소에서도 돈을 바꾸어 주지 않았다. 심지어 환전 업무마저 하지 않고 있었다.


내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당장 델리로 갈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내게 있는 돈은 주머니에 들은 1루피 동전 하나와 2루피 동전 두개가 전부다.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내 가방에는 무려 3만5천루피(63만원)가 있다. 10시간 전만해도 나는 3만5천 루피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3만5천루피가 아닌 단지 간디가 그려진 종이더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고, 나는 3루피가 내가 가진 전 재산이나 다름없어 졌다. 푸쉬카르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가방에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내가 이제 물 한 병도 사먹지 못하는, 짜파티 한 장도 먹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향한 분노를 표현할 여유도 없었다. 분노를 속으로 삭히는 것에는 재주가 없는데, 급하니까 다 참아졌다. 여기저기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가서 500루피를 받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목도마르다. 아직도 델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즈메르 역까지 갈 차비도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내가 간 곳은 매일아침 펠라펠랩을 먹던 한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의자에 앉자마자 내 표정을 본 종업원들은 내 상황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돈 때문에 그렇죠?"


"네. 바로 맞췄어요. 저한테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아침 일찍 잔돈을 다 가져갔어요. 그리고 아즈메르로 가버렸데요. 이제 저는 3루피가 전 재산인 빈털털이에요."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무어라 말하며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목소리로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게스트 하우스 이름이 뭐에요?”


내가 게스트 하우스 이름을 말하자 그제야 웃음을 참던 직원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한 남자의 신체 특징과 얼굴을 묘사하면서 자신이 말하는 사람이 주인이 맞냐고 물었다. 내가 그건 것 같다고 말하니, 납득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 그 사람이라면 그럴 만하네요. 그러니까 인도인은 항상 조심해야죠”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나만 모르는 유명한 사람이었나 보다. 자기들은 신이 났는데 나만 심각하다. 하지만 이들은 내 분위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정도로 심각해진다면 이들은 내가 한 달 동안 봐온 인도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만 빼고 은근히 신이 난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입안이 한층 더 씁쓸하다.


"오늘 델리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맞아요. 그런데 차비도 없어요."


"기차표는 있어요?"


"네. 기차표는 있는데 기차역으로 가는 차비가 없어요."


"밥은 먹었어요?"


"아니요. 사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밥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더욱 우울하다.


종업원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내가 매일 먹던 (양파를 뺀) 펠라펠랩을 하나 손에 쥐어줬다.


"저 돈 없어요."


"500루피 짜리는 있죠?"


"네. 설마 500루피 짜리 받아 주는 거에요?"


"델리는 가야 하잖아요. 잔돈이 필요하죠? 이리 줘봐요."


종업원은 내 500루피를 가져갔다. 그리고 돈이 들은 양철 상자를 열었다. 안에 있는 돈을 다 끌어 모아도 500루피를 거슬러줄 돈이 되지 않았다. 오늘 내가 두 번째 손님 이라고 했다. 종업원은 상자에 있던 돈을 모두 손에 들고 ‘어떻게 할래?’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잔돈은 안줘도 되요. 바꿔주는 것만 해도 너무 고마워요."


"그럼 이걸 대신 가져가요." 잔돈과 함께 생수2병을 건냈다.


"그런데 나중에 사장님한테 혼나는 것 아니에요?"


나는 잔돈과 생수를 받으면서, 이제 한껏 풀려 실실 웃음이 새나가는 표정을 관리하며 물었다.


"에이. 어쩔 수 없죠. 사장님한테는 누가 먹고 500루피 내고 갔다고 하면 되요. 이미 500루피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잔돈만 받으면 되니까 문제없어요."


팔라펠렙은 너무 맛있었고, 델리까지 이동할 수 있는 돈이 생겼다는 것과 푸쉬카르에서 정말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핑돌았다. 처음부터 단골인 이 가게를 오지 않은 것은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라 절대 돈을 바꾸어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잔돈은 절대 다른 사람 주면 안돼요. 솔직히 여기는 인도잖아요. 언제 500루피와 1000루피 짜리를 100루피 짜리로 바꿀 수 있을지 아무도 몰라요. 3일 뒤에 은행이 문을 열면 현금을 교환 할 수 있다고요? 내말을 믿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줄 서도 교환 못 할 껄요?"


이번에는 진짜 울 뻔 했다. '잔돈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돼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심장을 팡! 하고 크게 한방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에 눈물이 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어릴 때는 혼나기도 전에 일단 울고 시작했지만, 무언가에 감동을 받아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란 말이다. 정말이다. 괜히 '심장도 없는 여자'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현실이 됐다. 오늘부터 마음에 품을 말이 생겼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 명언은 명언인 이유가 있다.


 사실 내가 이 말에 이렇게 감동을 받은 이유는 돈을 바꾸러 돌아다니는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받은 모멸감과 멸시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안타깝지만 널 도와 줄 수는 없다.'라는 반응이었지만 몇몇 가게에서는 대놓고 무안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500루피 지폐를 교환하거나, 100달러를 환전 할 수 있을까요?"


"안돼요."


"제가 정말 급해서 그래요. 부탁드려요."


"안돼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줄 알아요?"


"대충은 알고 있어요."


"대충 이라고요? 아침에 신문도 안 봤어요? 원래 신문도 안 읽어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이런 무식한 사람하고는 말을 섞을 수도 없다는 말투로 말하는데, 내가 왜 인도 신문은 매일 아침 읽어야 하며, 인도 신문을 읽지 않았다고 이런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지... 수치심이 올라왔다. 하지만, 말다툼을 할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흥분하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튼 아침부터 그렇게 힘들게 구하러 다닌 잔돈인데... 이제 나도 잔돈이 있다. 나한테 이제 잔돈을 뺏기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괜히 마음이 든든하다.


오전의 긴박함과는 정 반대로 낙타축제를 보러 방문한 푸쉬카르의 마지막 오후는 정적 그 자체였다. 감동과 잔돈을 가슴에 품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남은 하루를 멍하니 앉아서 보냈다. 늦게라도 멜라 그라운드에 나가고 싶었지만 물 사먹을 돈도 아껴야 하는 마당에 사막에 나갈 만 큼 대책이 없지는 않다. 평소 잘 마시던 로컬워터(인도인들이 식수로 사용하든 수돗물)도 왠지 갑자기 탈이 날 것 같아서, 펠라펠랩 가게에서 받아온 물병 두개만을 꼭 쥐고 있었다.


아침에 그렇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나는 무사히 버스를 타고 아즈메르에 도착했고, 무사히 기차를 타 델리에 도착했다. 아침에 받은 잔돈은 차비로 사용한 20루피 이외에 한 푼도 쓰지 않은 채였다.


푸쉬카르에서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델리에 와서 보니 걱정한 것만큼 큰일은 아니었다. 델리에는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가 있었다. 사람들은 침착하게 정부의 다음 발표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푸쉬카르는 3일 있어야 영업을 시작한다던 은행도 델리에서는 바로 다음날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나는 델리에 도착해서 바라나시로 떠나기 전 파하르간즈 근처 4군데 은행을 돌아다닌 끝에 외국인에게 현금교환 우선권을 주는 은행을 만나 겨우 1000루피 2개를 100루피 20개로 교환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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