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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Apr 10. 2019

[파키스탄] 2018년- #5.훈자하면 떠오른 것은?

살구라고?

3초안에 '훈자'에서 떠오르는 것을 말하라! 


-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정답은 (아마도) 살구.


훈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훈자의 어메이징한 풍경도, 훈자의 판타스틱하게 친근한 사람들도 아닌 바로 '살구'일 것이다. 훈자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98% 확신 할 수 있다. 그만큼 훈자의 살구는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훈자에서 보낸 2달이 넘는 시간동안 신선한 살구를 단 한알도 먹지 못했다. 말린 살구라면 질리도록 먹었지만, 깨물면 과즙이 쏟아지는 쌩쌩한(?) 살구는 단 한 알도 먹지 못했다.


내가 훈자에 머무렀던 시기는 5월-7월. 나는 파란잎이 무성한 살구나무에서 훈자 살구가 익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훈자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풍요로움이 아닐까 한다. 훈자는 여행자들의 천국일 뿐만 아니라 과일들에게도 천국 같은 장소다. 과일 나무를 그대로 방치해 놓는 것 만으로도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열매가 열린다. 5월 말버리와 체리를 시작으로 살구, 사과, 복숭아... 9월까지 훈자의 토양과 태양은 과일을 만드는데 정신이 없다. 먹을 것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주의지만, 너무 넘쳐나서 전부 수확을 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그대로 짓이겨져 썩어가는 과일들을 보면 속이 쓰리고 가슴이 아프다. 


살구타령을 했지만 사실 살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아니다. 아니 좋아하는 과일 순위에도 들지 못하는 과일이다. 내가 살구를 처음 먹은 것이 3년전 처음 라다크를 방문 했을 때 인데 그 이후 3년간 30년동안 한번도 먹은 적없는 살구 소리를 매일 같이 입에 달고 다닌 것이 참 우습다. 


살구가 단지 분위기에 휩쓸려 '좋아하는 척'한 시한부로 좋아한 과일이라면, 내가 언제나 좋아했고 영원토록 좋아할 과일은 귤, 체리, 망고다.  훈자와 길기트의 체리는 파키스탄에서는 훈자 살구에 버금가게 유명하고 맛있다. 


내가 미스터 칸의 말 한마디에 넘어가 체리를 먹으려 미스터 칸의 가족 모임에 가게 된것도 전부 훈자의 체리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바로 따먹는 체리는  '이보다 더 맛있는 체리는 맛볼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다. 



-훈자의 5,6월은 체리의 계절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길기트의 체리는 5월, 그리고 길기트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훈자의 본격적인 체리 철은 6월이다. 5월 훈자의 체리는 손톱만한 파란 맛없는 열매일 뿐이다. 하지만 이미 훈자로 오는 길에 길기트에서 체리를 맛보고 온 나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매일 같이 게스트하우스에서 가까운 과일 가게를 찾았다. 


"체리 2kg만 가져다주세요." 매일같이 과일가게에서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나는 체리를 2kg 주문하는 한국 여자로 불렸을 것이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다. 하지만 언제나 체리 2kg을 주문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체리는 이틀 밤 이상을 내 방에서 보낸 적이 없다.  훈자에 체리 철이 시작될 때까지 2~3일에 한 번꼴로 체리를 주문하니 과일가게 주인은 체리가 도착하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내 체리의 도착을 알릴 정도였다. 내가 훈자에서 유일하게 우울했던 시기가 비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길기트에서 훈자로 체리가 배달되지 못한 1주일이었다. 우울하다고 해봤다 심각하게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매일 같이 체리를 먹지 못하는 아쉬움에 속과 마음이 허전했다는 것이다. 6월이 되고 훈자의 본격적인 체리철이 시작되면 체리는 더는 '사서 먹는' 과일이 아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 체리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훈자 마을 사람들은 내 손을 붙들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 짜이를 주고, 체리를 따 준다. 집에 가서 먹으라고 따로 체리를 비닐봉투에 담아주기까지 한다. 거의 매일 훈자사람들에게 체리를 얻어먹으면서도 끝을 모르고 성장하는 식탐의 노예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된 나는 1주일에 1번 체리를 과일가게에서 사 먹었는데, 과일가게 주인은 나에게 이제 이곳에서 체리를 사먹는 사람은 (남쪽 지역에서온)파키스탄 관광객 아니면 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하면 나는 훈자 최고의 호구중 하나 였다.  하지만그만큼 훈자의 체리는 좋았다.



길을 걷다가 말버리 나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나무 주인 아주머니가 말버리를 한 봉지 따주셨다. 아주머니 집 담장 앞에서서 말버리를 먹고 있으니 앞집에서 한 소녀가 나왔다. 에럼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나에게 체리는 먹고 싶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소녀는 나르 자신으 집으로 데려갔다.

파키스탄의 집에 초대되면 준비해 주는 다과. feat 체리. (보통은 체리 대신 비스켓)  파키스탄 가정의 밀크티는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다.(암염을 밀크티에 넣고 두번 돌린다)


이 집의 꼬맹이가 내 배낭을 깔고 누워 버렸다. 에럼네 앞집 아주머니가 싸주신 말버리를 다 짖이겨버린 꼬마...



-"훈자는 체리나 살구보다는 사과지."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던 홍콩 친구가 한 말이다. 내가 인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간만큼이나 이 친구는 파키스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년째 매년 6개월 이상을 파키스탄에 머물렀고, 올해도 홍콩에서 받아온 21일짜리 파키스탄 비자를 6개월로 연장했고, 비자가 만료되면 홍콩으로 돌아가 다시 비자를 받을 것이라 했다.


홍콩 친구가 극찬하는 훈자의 사과는 먹어보지 않아서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도 아니기에 훈자 사과가 아무리 맛있다는 말을 들어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파키스탄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은 망고야."

이 홍콩 친구는 사과에 대한 나의 시큰둥한 반응을 눈치챈 것인 곧이어 파키스탄 망고에 대한 찬사를 내뱉었다. 이 친구는 파키스탄의 망고는 전 세계 그 어느 지역의 망고보다 맛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과일과게에서 체리 대신 매일 2kg씩 망고를 사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파키스탄에서 쓴 돈 중 가장 많은 금액이 망고를 사는데 쓰인것 같다. 심한 날은 2군데의 과일가게에서 2+2kg의 망고를 사기도 했다. 체리 호구가 망고빌런이 되는 올바른 성장 이었다. 


나의 이 비정상적인 구매성적에서도 보이듯이 홍콩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열대 과일인 망고는 훈자에서 자라지 않는다. 훈자에서 판매되는 망고는 남부지역에서 먼길을 여행하느라 하나같이 수분을 빼앗겨 미라화가 진행되고 있는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망고를 사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홍콩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망고를 사먹었다는 것에 왠지 모를 패배감이 들었지만 모든것은 망고의 맛으로 이겨낼 수 있다.(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이슬라마바드에서 본 파키스탄 망고는 참으로 소담스럽게 생겨 누구나 먹고 싶은 비주얼인데,  훈자까지 고되고 먼 길을 온 망고는 이미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내가 여태까지 먹은 그 어떤 망고보다 맛있었다. 수분을 잃고 당분을 얻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망고에 꽂혀 있었기 때문인지 맛있으면 되지 이유가 뭐가 중요할까? 이슬라마바드에서 1kg에 100루피 였던 망고는 훈자에서 1kg에 200루피까지 가격이 올라갔지만, 그런데도 매일 망고를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친구의 집에 갈때도 언제나 망고를 사가지고 갔다.


라다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훈자에서 먹은 파키스탄의 망고가 생각난다.  

훈자까지 먼지를 오신 망고...



아이러니하게도 훈자하면 생각나는 것을 3초안에 말하라! 라고 한다면

-망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훈자에서 망고는 자라지 않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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