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와서 가장 많이 들른 곳이 집 앞에 있는 Rigoulot경기장이다. 처음 파리에 오자마자, 아들은 축구 등록을 시켜달라고 했고, 아내는 동네 애들이 입고 다니는 유니폼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아이를 등록시켰다. 등록 첫날, 유니폼 2벌에 트랙슈트 세트를 주며 300유로라고 하기에, 난 아무렇지 않게 다음 등록일을 물었다. 매달 1일 회비를 내야 하는 것이냐. 그러자 직원은 몹시도 당황스러워했다. 알고 봤더니 1년에 300유로라는 것. 파리에 정착해서 가장 처음으로 프랑스 사회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그 뒤로 거의 주말마다 아들의 손에 이끌려 축구장에 나와야 했다. 아비의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는데 아들의 축구 실력은 늘어갔다. 나 대신 아들과 놀아줄, 축구 좋아하는 1살 위의 형을 결국 소개받았다. 이제 좀 쉴 수 있겠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소개받은 형의 아버지가 또 축구광이다. 결국 축구장 반코트를 아빠팀 vs 아들팀 2:2 축구를 해야 했고, 난 바로 탈진했다.
이제 아들이 축구 좋아하는 형 만나는 날이자 내 몸이 고생하는 날이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날이 돌아왔다. 조기 축구팀에 소속된, 축구 좋아하는 회사 동료가 약속 얘길 듣더니 조인해도 되는지 묻는다. 집이 경기장 근처라며. 이런 횡재가 어딨나. 애들과 직접 축구를 같이 하는 게 내겐 매번 힘이 부쳤기 때문. 반가운 표정을 애써 숨기며 오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계획을 틀어놓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5명이 모여있는 걸 본, 혼자 연습 중인 동네 축구광이 같이 경기를 할 수 있는지 물었고, 팀 구성을 위해 나도 한 시간 반동안 경기를 뛰어야 했다. 동네 축구광은 축구에 미친 에너자이저 애들의 성인 버전이었고, 축구화로 갈아 신더니 격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난 두 번이나 그분의 스터드에 밟혀 그라운드를 뒹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웃통을 벗어던진 그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너네 다음에 언제 올 거냐며 자긴 평일 주말 다 상관없다고 말했다. 해가 지고, 하늘을 물들인 핑크빛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그래도 지친 몸에 작은 위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