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가장 파리스러워 보일 때, 그러니까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프랑스의 비효율과 위선의 민낯이 아닌,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는 단연 퐁피두센터다. 사실 인상주의에서 시작, 벨 에포크를 지나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기 전까지, 파리는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고, 그 중심지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오르세와 퐁피두에 분산 보관돼 있지만, 사실 전쟁 이후 현대 미술의 중심은 미국, 즉 뉴욕으로 넘어갔다. 퐁피두가 1년 예산을 써서 앤디 워홀의 작품 한 개, 엘리자베스 테일러 실크스크린을 사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퐁피두 센터가 파리스러운 이유엔 마티스와 샤갈, 칸딘스키의 작품과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혁신적인 건물 디자인도 있지만, 2,3층에 있는 누구나 이용 가능한 방대한 도서관과 열람실. 그리고 소수의 취향을 위한 예술 영화를 상시 상영하는 극장이 이곳을 더욱 파리스럽게 만들어준다. (이곳의 이름이 뮤지엄이 아닌 센터인 이유. 복합 문화 시설이다.) 건물 앞 살짝 경사진 광장은 잔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 역시 파리스럽다.
(퐁피두에서 바라본 파리 풍경. 사람들은 이곳을 보부흐 Beaubourg, 즉 아름다운 동네라고 부르는데, 사실 오랜 기간 시장과 공터가 몰려있던 파리의 대표적 우범지역이었다. 퐁피두 대통령이 복합문화공간을 짓고 나서야 서서히 동네 이미지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