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독립마저도 네덜란드스러웠다. 일단 마음 편하게 돈을 욕망하려면 가톨릭보단 프로테스탄트가 유용했다. 마침 돈은 많았지만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던 그들은 당연히 종교 자유를 이유로 독립을 선언하고 독일에서 용병을 고용해 독립 전쟁을 벌였다. 당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는 아주 독실한 가톨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네덜란드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빌렘은 프랑스 독일을 외교적 수사로 설득, 스페인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외교적 수사로 위기를 해결하고, 용병을 고용해 대신 싸우게 하는 것이 참으로 자본주의의 본산 네덜란드스러운 저항 방식이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남의 힘만 빌린 건 아녔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스타일로 운하의 제방을 무너트리는 수공을 펼쳐 스페인군을 물리치기도 했는데, 사실 이는 쉬운 선택이 아녔다. 스페인군도 죽지만 네덜란드 도시도 폐허가 되기 때문. 당시 대승적으로 빌렘의 물 공격에 찬성했던,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도시가 오늘 내가 찾은 레이든이다. (지금 우리에겐 빛의 화가로 알려진 렘브란트가 태어난 도시로 유명하다.) 더 네덜란드스러운 상황은 그 이후 벌어진다. 빌렘은 레이든시의 희생정신의 보상으로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시 레이든시의 대답은 뭐였을까? 대학을 세워주세요. 였다. 그 결과 레이든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레이든 대학이 생겼다. 정말 뼛속까지 실용주의적인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