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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Feb 24. 2024

전쟁 중이지만 폭립 Pork Rib은 여전히 맛있는

0223@Lviv

우크라이나 르비우


르비우는 키이우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우크라이나 서쪽에 위치한 르비우는 러시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우리로 치면 6.25중에 부산 같은 곳이랄까. 슬픔이 가득한 건 여전했지만, 러시아의 미사일을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확실히 더 적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전쟁 전의 일상을 되찾은 것 같은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게다가 르비우는 키이우보다 크기도 작고, 오래된 건물과 도로에 깔린 코블 스톤, 그리고 낡은 전차까지, 좀 더 관광객 친화적인 도시기도 하다. 거리에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 건 여전하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길 위의 상인들이나, 기념품 가게들은 성업 중이다.


여름의 르비우
르비우의 전차


물론 동맹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무기는 대부분 르비우를 통해 전방으로 이동된다. 군수품을 보관하는 부대들이 꽤 모여있다는 의미고, (이것도 부산과 비슷하다) 푸틴도 이를 잘 알기에, 르비우에 대한 공격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실제 미사일 공격으로 사람이 죽기도 했고. 그럼에도 키이우보다 여유가 느껴지는 건,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심리적 안정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영공에 미사일이 날아왔을 때, 대피할 여유가 키이우나 다른 동부 도시보다 많기 때문이다. 미사일이 아무리 빨라도 순간 이동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오래된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가림막을 설치했다던가, 유리창 파손을 막기 위한 샌드백 더미를 보면, 그래도 일상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는 관광 도시도 아직 전쟁 중임을 알 수 있다.

교회 창문을 막아놓고
조각상을 샌드박스로 보호해놓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혹시라도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면, 마치 메멘토 모리처럼, 우리는 전쟁 중임을 알려주는 풍경이 있으니, 바로 장례식이다. 전방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장례식이 거의 매주 열린다. 시청 광장 앞에서나 혹은 교회에서. 젊은 군인의 죽음 앞에서 모든 르비우 시민들은 다시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이 지겨운 전쟁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에겐 전쟁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그래도 르비우에 오면 잠시 관광객 모드를 켜게 되는 나의 최애 식당이 한 곳 있다. 우크라이나어라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불타는 돼지가 상징인 곳이다. 폭립 전문 식당. 창고나 오래된 성을 개조한 레스토랑인데, 콘셉트가 분명하다. 안에 들어가면 식당이나 포크, 나이프는 없다. 점원들은 종이 위에 매직으로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그릴뿐이다. 종이 앞치마를 입고 원시인처럼 손으로 폭립을 뜯어먹으면 된다. 폭립의 맛도 끝내주지만, 이 원시적인 느낌의 식사를, 아주 힙한 인테리어 내부에서 한다는 게 이 식당의 가장 큰 매력. 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점원들은 폭립 전체를 서빙한 뒤, 손님들 눈앞에서 도끼질을 한다. 세련된 공간에서 경험하는 원시인 체험이랄까.

여름에 왔던
겨울에 왔던

맥주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놀라운 경험은 나갈 때 하게 된다. 폭립 1인분에 약 8천 원. 유럽 물가를 생각하면 더 놀라운 수준이다. 르비우 시민들도 이 공간에 오면, 잠시 전쟁 스트레스를 잊고 오로지 고기 뜯는 행위를 즐기게 된다. 또 다른 의미의 전쟁 피난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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