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0505@성수대교

by 알스카토
성수대교 앞


어제 10킬로를 달려 다리가 무거웠지만 마침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은 참이었다. 50대 작가가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매일 10km씩, 월 300km 가까이 뛴 글을 읽고 나니, 피곤함으로 위장한 게으름을 부릴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우 달리러 나왔다. 회복 러닝으로 짧게 달리자고 시작한 러닝이었지만, 의식적으로 페이스를 유지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느리게 뛴다는 것. 얼핏 들으면 쉬워 보이는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달려본 사람만 안다. 내 안에는 빨리 뛰고 싶은 욕구, 좋은 기록에 대한 욕심, 내 앞의 러너를 제치고 싶다는 승부욕 등 페이스를 저해할만한 여러 욕망이 마음에 내재해 있다. 얼마 전엔 허름한 옷과 평범한 운동화를 신고 뛰는 백발의 남성(노인처럼 보이는)이 내 앞에서 뛰고 있었다. 저분을 가볍게 제치자는 마음이 들어 속도를 살짝 올렸다. 그 순간 그 백발의 노인도 추격자의 숨소리를 들은 건지 페이스를 올렸고, 그렇게 추격전이 시작됐다. 한참을 뒤쫓다 보니 나도 모르게 킬로미터당 4분 20초의 빠른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고, 뒤늦게 제정신이 돌아와 추격을 멈췄지만, 그 이후 러닝은 즐거움이 아닌 고문이 됐다. 한번 잃은 페이스는 되돌아오지 않았고, 뛰는 내내 헐떡거렸다. 그만큼 느린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는 건 쉽지 않으면서도 중요하다.


결국 내 안의 욕심, 남과의 비교(경쟁)를 극복해야 비로소 즐겁게, 오래 달릴 수 있는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의식적으로 호흡에 집중하며 페이스를 일관되게 유지했고, 90분 정도의 긴 시간을 뛸 수 있었다. 힘들지 않은, 만족스러운 달리기였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기록도 아니고, 그룹 러너들에게 여러 번 추월당하기도 했지만, 내 자신의 만족도는 높았다. 하루키가 자신의 달리기를 이야기하며, 소설가 하루키의 인생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던 비결이 바로 이거다. 달리기에 담긴 인생에 대한 수많은 메타포.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