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모든 것이 바뀌었고 또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장장 7개월이라는 시간을 강제로 쉬고 복귀한 지 이제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코로나로 변한 할리우드 촬영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매일을 14시간씩 야근하면서
보내다 보내 이제야 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여유도 생겨서 이렇게 몇 자 정리해본다.
일단은 처음에 코로나로 쉴 때 감사했던 부분은 넷플릭스에서 전체 스텝들에게 2달간 월급을 Full로 모두 지급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처음에 일을 갑자기 그만두게 돼서 막막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매주 들어오는 월급 덕분에 다행히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했던 첫 두 달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풀타임 직원들에게 국가에서 지급하는 실업수당으로 생활을 이어갔고 그 실업수당이 끊겨갈 때쯤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복귀를 준비하라고 했다. 3월에 팬데믹이 터지기 전 첫 번째 쇼를 끝내고 다음 쇼에 휴식이 없이 바로 출근했던 터라 많이 지쳐있어서 두주만 휴가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생각 밖으로 7개월이란 긴 휴가를 반은 셈이었다. 정말이지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미국에서의 코로나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아직 백신도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일을 복귀하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었다. 제일 궁금했던 점은 도대체 어떻게 방역 수침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촬영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모든 직원들에게 제일 처음 지시받은 일은 코로나 테스트를 받아야 현장에 복귀할 수 있다는 지침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촬영장도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서 분류하기 시작했고 출입통제도 전보다 훨씬 엄격해졌다. 예를 들면 촬영장에 출입하는 스텝들을 Red zone Crew라고 분리하여 일주일에 3번씩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고 우리가 촬영하고 있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무조건 KN95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있어야 하고 촬영장에 들어가거나 사무실에 있을 때에도 얼굴 보호막과 함께 가운도 쓰고 출입해야 했다. 특히 사람들과 많이 접촉하게 될 촬영팀, 소품, 의상, 헤어 메이컵, 프로덕션, 프로듀서 및 작가들까지 모두 지정한 곳에만 출입할 수 있게 돼있고 실제 카메라 촬영을 할 때에는 촬영팀만 남고 최대한 접촉을 적게 하고 마스크를 벗고 촬영을 하는 등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프로덕션에서 전문 코로나 스케줄 관리 감독하는 부서가 생겼고 프로덕션 제작팀에서 일해야 할 우리들의 업무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예를 들면 더 이상 대본 리딩을 다 같이 모여서 하지 않고 아이패드로 한다라던가 모든 배우들 계약서와 서류들은 서면으로 하는 것 대신 모두 디지털로 사인하고 정리하도록 바뀌었다. 촬영 전날이면 새벽까지 남아서 시나리오를 200부씩 프린트할 필요가 없게 됐고 우리가 사용하는 주방에서도 이젠 평소에 사용하던 식기 대신 각개 포장된 1회용만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모든 작가들은 사무실에 나오는 대신 다들 집에서 작업하고 있고 사무실에 출근하는 모든 스텝들은 한 사람이 사무실 하나를 쓰도록 바뀌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무실도 원래는 프로듀서들이 혼자 쓰는 방인데 지금은 나랑 동료랑 거리를 유지하고 책상에 플라스틱으로 된 보호막을 설치하고 일하고 있다. 촬영장 스텝들이 점심을 먹는 장소도 야외에 따로 마련해 놓고 거리를 유지하도록 테이블을 설치해놨다. 이 모든 준비를 프로덕션에서 해야 해서 첫 몇 주는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넷플렉스에서 요구하는 또 다른 안전장치는 모두에게 추적할 수 있는 시계를 착용하도록 해서 6피트 가까이에 들어가게 되면 경보음이 울리게끔 하는 장치를 제공한 것이다. 다른 쇼에서 이미 시도해봤는데 카메라팀 같은 경우는 모두 모여서 있기 때문에 소리 때문에 너무 방해받는다는 지적을 받아서 아직은 우리도 시계만 전달받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처음에는 삼성 워치라고 해서 엄청 기대했는데 다른 기능은 빼버리고 추적 기능만 있는 거라 약간의 실망은 했지만 어찌 됐든 거리를 유지하고 촬영하려고 엄청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다.
첫 몇 주는 촬영장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정말이지 상사들은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고 우리는 하루에 14시간 강행군을 해왔다. 그중에서 가장 곤욕은 거리 유지하면서 점심을 먹는 시간 빼고는 항상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피부가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매주 새로운 배우들에게나 스텝들에게 줄 보호물품들을 준비해야 했고 옛날에는 하지 않았던 색깔로 분류된 이름 배지도 만들어야 해서 일이 전보다는 두배 세배 늘어난 셈이다.
그래도 나름 안전하게 촬영하고 있고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복귀할 때쯤 할리우드에 다른 TV쇼들도 촬영을 이미 시작했거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으니 이제 멈추었던 각각 스튜디오 촬영장에 사람들로 북적이며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집에서 쉬는 동안 한국 드라마 현장과 예능 현장은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물론 미국과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촬영을 밀어붙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좀 염려스러웠다. 지금 우리도 촬영을 하고 있지만 다시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 다시 접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나름 모두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최선을 다해 이 쇼를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 펜데믹이 터지고 복귀한 지 두 달이 지나가고 있으니 차차 시스템에도 적응되었고 모든 스텝들도 가이드라인을 충실하게 따라주어 있고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촬영장에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온다면 또다시 방역을 철저하게 하고 촬영이 중단될 수 있겠으나 지금으로선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들 이제 쉬는 게 충분히 지겨워질 만도 했고 일하고 활기차게 삶을 사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팬데믹이 터지고 모두들 강제로 집콕만 하다가 이렇게 복귀하고 나니까 새삼 일이 주는 소중함과 기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겨울에 재확산 우려가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방역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조금은 더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기간에도 촬영하는 모든 팀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휴식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