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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ug 04. 2021

Amazon 오리지널 드라마 작업

일이 주는 소중함에 대하여

올해 초 3월 두 번째 넷플릭스 드라마를 끝으로 한 달간의 휴식을 가졌다. 팬데믹이라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일이 끝나고 바로 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어서 타의 반, 자의 반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두 개의 쇼를 연속으로 해서 너무 감사했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막내 포지션의 일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기에 휴식이 길어질 것을 예상했었다. 맘 편히 한 달을 쉬고 나서 그동안 같이 일했던 프로듀서들한테 혹시 막내 포지션이 아니라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 포지션 자리가 나면 연락 달라고 하고 다른 회사들에도 이력서를 넣어보면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던 중 같이 일했던 프로덕션 코디네이터한테서 연락을 받아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이 넷플릭스 멀티캠 드라마라면 이번에는 아마존 오리지널 드라마 싱글(Single cam) 작업 제안이었다. 이번 팀은 금방 "Solo"라는 아마존 드라마를 끝내고 새로 들어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프로덕션 스텝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하던 프로덕션 막내에서 벗어나 포지션적으로는 한자리 승급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싱글 캠은 영화와 같은 스케줄로 찍는 거라 들어서 언제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서 흥미가 생겼다. 그 당시 다른 작은 광고 회사에도 인터뷰를 봐놓은 상태라 주위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광고회사에 들어가길 바랬지만 나는 내심 아마존 드라마 일이 되길 바랬다. 내가 어렵게 커리어를 쌓은 길이기도 하고 멀티캠 드라마만 하다가 싱글 캠 드라마 현장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넷플릭스 드라마만 하다가 아마존 드라마는 또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면 나한테도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한주 뒤에 아마존에서 먼저 연락을 받아 최종으로 한 달 뒤에 출근하기로 했다. 일이 정해지고 남은 한 달 동안의 휴가는 정말 마음이 편하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같은 프리랜서들한테는 항상 일이 정해지고 나서 쉬는 시간은 걱정도 없고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 된다.  


싱글 캠 Single Cam VS. 멀티캠 Multi Cam 차이 1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멀티캠과 싱글 캠 드라마 작업을 모두 해보니 그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일단 싱글 캠은 영화와 비슷한 스케줄이다 보니 2달간 촬영하고 보통 절반 이상의 촬영은 밤 촬영과 로케이션 촬영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개 유닛으로 나누어서 찍기도 하고 일하는 스텝들도 많아서 프로덕션 보고서도 두배로 많았다. 어떤 날은 보조 출현자만 100명이 넘는 날에는 밥차도 여러 개로 예약해야 하고 배우들이 커피차 사는 일도 많아서 이 모든 일들을 관리하고 연결해야 하는 프로덕션에서의 일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참고로 배우들이 커피차를 시키면 프로덕션에서 모든 커피나 스낵 트럭들의 가능한 날짜를 알아보고 연결해줘야 해서 일이 많아진다. 매주마다 커피차나 아이스크림 트럭이 오는 건 좋지만 그 일을 우리가 다 세팅해야 돼서 프로덕션에는 이런 "좋은 일"들은 별로 반기진 않는다. 그리고 보통 멀티캠에서 일하는 스케줄이 10시간 안팎이라고 한다면 싱글 캠은 좀 더 정신없는 스케줄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해보니 12시간 이상은 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촬영이 부득이하게 12시간을 넘길 때도 있지만 그러면 모든 스텝들의 야근수당이나 따르는 비용이 많이 생기기도 하고 각 촬영팀 노조나 조명팀 노조에서 영화사에 전화가 와 제지당하기도 해서 보통은 12시간 이상을 일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에 12시간을 넘기고 다음 날 다시 일찍 촬영을 해야 한다면 스텝들한테 호텔을 제공해 근처에서 쉴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일한 멀티캠 드라마 현장에서 하루에 보통 14시간 일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이 전에 쇼들이 워낙에 힘들어서 쇼 끝날 무렵에는 몸이 안 좋아져 강제로 쉬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바뀐 환경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이젠 막내에서 벗어나다 보니 힘든 육체노동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서류 더미에 묻혀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하지만 막내일 때 하루 종일 심부름하느라 몸이 많이 움직였던 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지금은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잔 신부름과 점심과 저녁을 픽업하는 일에서 벗어난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 코디네이터가 말하길 사람들이 TV 쇼에서 일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가지가 있는데 점심, 파킹, Paycheck (월급) 이 있는데 이 세가지만 제때에 늦지 않게 제공하면 사람들은 만족하면서 일한다고 한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다 보니 점심 특히 먹는 것에 예민하다. 지금은 이런 자질구레한 신부름에서 벗어나 컴퓨터 앞에서 같이 일하는 모든 업체와의 계약서, 프로덕션 보고서와 서류들,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좋아서 그전보다는 훨씬 더 신나게 일하고 있다. 


싱글 캠 Single Cam VS. 멀티캠 Multi Cam 차이 2 

보통 멀티캠은 한 시즌에 6-12개 에피소드가 있어서 보통은 한 7개월에서 1년 동안 일한다. 다음 시즌을 바로 배정받으면 길게는 10년을 꾸준히 일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같이 일하는 프로듀서가 그렇게 한 쇼를 9년 동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멀티캠 드라마는 보통 한 시즌에 5개 에피소드 정도 찍다 보니까 (물론 길게 찍는 드라마도 많다.) 준비과정까지 하면 5개월 미만이면 일이 끝난다. 프로덕션에서 처리하는 업무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모든 하청업체들과의 계약서, 촬영장비 대여 계약서, 배우와 스텝들의 계약서 등등 서류가 2배 정도 많은 거 빼고는 대부분의 업무는 멀티캠이랑 비슷하다. 팬더믹이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그전 쇼와 비슷하게 모든 코비드 테스트를 관리하는 팀이 점점 그 규모가 커져갔다. 그리고 싱글 캠에서의 모든 부서에 사람이 멀티캠보다 많은 반면 프로덕션 팀은 프로듀서들까지 포함하면 여전히 10명 미만이다. 직급으로 따지면 제일 높은 포지션이 UPM/Producer인데 보통 UPM과 Producer 가 따로 있는 쇼가 많은 한편 내가 지금까지 3개의 쇼를 하면서 만난 프로듀서들은 모두 UPM이면서 Producer 인 백인 여자분들이었다. 이 분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내면서 아직도 이렇게 현역에서 멋지게 일하는 것을 보는 건 나에게 큰 동력과 힘이 되었다. 


Production Secretary VS.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 (APOC)

위에서 설명했듯이 프로덕션에서 하는 일은 많지만 그 직급이나 사람 인수로 보면 고작 10명뿐이다. 제일 높은 직급부터 차례로 하면 UPM/Producer - Associate Producer - Production Supervisor - Production Coordinator -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 - Production Secretary - Office Production Assistant. 그중에서 내가 맡은 직함은 Production Secretary인데 드디어 감사하게도 이번 쇼부터는 막내 포지션 (Production assistant)에서 한 단계 올라갔다. Production Secretary 포지션은 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하는 일은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 포지션과 같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단지 Union이라는 노조에 가입이 되지 않는 포지션이라는 점이다. APOC 직함이 union(노조)에 가입되다 보니 어떤 쇼에서는 APOC 대신 Production Secretary 만 두거나 바쁜 프로덕션에서는 우리처럼 두 사람 모두 채용하는 편이다. 일단 노조에 가입되면 월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APOC가 되기 전에 포지션으로 많이들 Production Secretary로 일한다. 월급 차이도 있다 보니 어떤 프로덕션에서는 경비를 아끼려고 union position이 아닌 Production Secretary만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포스트 코비드 프로덕션 촬영 현장 

코비드가 미국에서 주춤할 때쯤 5월에 프로덕션이 시작해서 6월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그전 3월 촬영 현장이랑 비슷하게 매주 모든 스텝이 한 주에 한번 코로나 검사를 했고 사무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의무화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촬영팀, 특히 배우랑 접촉하는 모든 스텝들은 일주일에 2번 코로나 검사를 하게 했고 마스크와 얼굴 가리개를 의무화했다. 그렇게 잘 관리했음에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우리도 거의 매주에 한 명씩은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쇼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쇼를 시작하고 나서 회사에서 백신을 촬영장에서 맞을 수 있도록 조치한 적도 있지만 참석률은 생각보다 낮았다. 그 이유에는 70%의 스텝들은 3월-5월 사이에 이미 백신을 맞았고 그 시기에 맞지 않은 사람은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에 백신을 편하게 촬영장에서 맞으라고 해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촬영 도중 새로 나오는 확진자들은 대부분 백신을 맞지 않은 스텝들이었다.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모두들 다른 부서와 밀접한 접촉을 하지 않았기에 다른 부서에서는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아 쇼가 완전히 셔터운 되는 경우까지 가지 않았다. 델타 바이러스가 강타하면서부터 할리우드에 드라마 촬영장이 셔터운 했다고 들은 것만 4개 정도였다. Netlfix Bridgerton, HBO Westworld, American Horror story, House of the Dragon 등등 뉴스에 나온 것만 해도 이 정도였다. 아마 앞으로 더 많은 영향을 받겠지만 작년처럼 완전 셔터운 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계속 이 일을 해도 괜찮을까?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3개의 드라마 작업을 연속하다 보니 조금 지친 면도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 특히 몇 년 뒤에 내가 Production Coordinator가 되었을 때를 미리 본다고 생각하면 약간은 걱정되기도 한다. 먼저 월급을 놓고 본다면 일반 직장인들보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우리가 받는 월급이 높기는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만큼 프로덕션 스텝이 받는 월급이 다른 부서 매니저급 스텝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다. 같은 영화 업종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아도 높은 월급은 아니다. 내가 아는 디즈니에서 일하는 프로듀서급 아트 디렉터가 우리 프로듀서보다 더 많이 받는 걸로 알고 있다. 프로덕션에서 하는 일은 엄청 많고 토일은 쉬더라도 주말에 급한 전화나 업무를 봐야 할 때도 있는데 우리 코디네이터의 월급이 첫 번째 조감독보다는 낮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월급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일단 워라벨을 꿈꾸기는 힘든 스케줄이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을 기본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이 스케줄로 내가 평생 일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업종의 고질적인 문제를 모르고 뛰 여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2년을 해보니 결코 쉬운 스케줄은 아니다. 물론 프리랜서답게 오프 시즌이 있긴 하지만 그 오프 시즌을 다 즐기기도 전에 혹시 다음 쇼가 언제 정해질까 노심초사해야 해서 온전히 휴식을 누리기도 힘들다. 이번에 2달의 쉬는 시간을 보낼 때에도 막판에 조급함이 생기게 되는 게 사람 심리이다. 프로덕션도 좋은데 영화사에 들어가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싶기도 하고 모든 부서를 어우르는 프로덕션이 아니라 한 개 부서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다른 부서에 관심이 딱히 가지가 않아서 고민이 된다. 지금도 제작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항상 콘텐츠가 정해지고 나서 촬영 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서포트를 해주는 부서가 프로덕션이다 보니 내가 스토리를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생각하면 영화가 다 만들어져 극장에 걸리기 전 예고편이 만들어지는 곳에서도 일해보고, 지금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 한가운데서 일하고 있다. 근데 이 모든 걸 겪어보니 지금은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는 그룹에 속해 의미 있는 콘텐츠를 고르고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어쩌면 Post -production에서 편집자로 - Production 프로덕션 스텝으로 - Pre-production 이제 가고 싶은 영화 제작 포지션까지 영화 산업이라는 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다 해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순서가 점점 앞으로 가는 느낌이긴 하지만 일하다 보니 조금씩은 더 선명하게 가고 싶어지는 방향을 찾은 듯하다. 아마 다음 쇼가 결정이 된다면 아마 또 일을 할 것이고 앞으로 몇 년은 프로덕션에서 일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 스스로 잠시 멈추고 방향을 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이 온다면 내가 다시 겁내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그냥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사는 게 맞는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큰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실력을 쌓고 경력을 쌓아서 다른 영화제작사에 가게 되더라도 충분히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내 실력을 갈고닦아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꿈의 여정이 항상 너무 멀리 느껴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을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그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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