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21개월, 양파 썰다가 든 생각
이상하게 출산을 권하는 건 항상 낯선 이다.
이사 온 첫날부터 아이를 가져야 한다며 내
배를 만져보는 옆집 할머니,
아이와 택시를 탔는데 둘째는 꼭 필요하다며
설교를 늘어놓는 택시기사.
배려가 없는 걸 넘어서 무례하다.
타산지석 삼아 타인에게 출산을 권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타인한테야 잔소리 방지 차원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미덕일 것 같지만
우리 아이한테도 그럴 수 있을까?
나중에 우리 딸이 컸을 때 내가 우리 딸에게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게 해줘야 할까?
아이한테도 잔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훗날 보여줄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생각이 몇 번 바뀔 것 같으니
그때마다 기록해야지.
처음으로 직접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시키던 순간.
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걸음마를 시작하던 순간.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공갈젖꼭지를
떼던 순간.
감동적인 순간들이 참 많았다.
기억은 미화된다.
아름다운 기억 뒤편에는
안아서 재우느라 팔이 아팠고
젖병을 물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렸고
힘들게 만든 이유식을 던져버려 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 장면들이 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최대한 친절한
말투로 좋은 말만 해주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는데
지금은 미간에 주름이 펴지질 않는다.
열심히 밥 차려놨더니 촉감놀이를 하고
어제 차려줬던 반찬은 어떻게 그렇게 한 입도
안 댈까?
제 때 자야 키가 큰다는데
졸린 눈을 그렇게 부릅뜨고
누워있는 엄마도 아빠고 일어나라고 하고
불 꺼진 방 한 구석에서 동화책을
뒤적거릴까.
언젠가 선배한테 우아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이제는 알겠다.
아이를 재운 후 사진첩을 들쳐보면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아이가 오늘은 이런 말도 하고
몇 주 전보다 키가 이렇게 컸구나.
우리 아이가 오늘은 콩나물도 먹고
두부고 먹고 혼자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었구나.
우리 아이가 이제는 어려운 책도 보고
제법 긴 문장도 구사했구나.
순간순간은 화나고 힘들어서 울고 싶었는데
하루로 보면 얼마나 보람찬 일과를 보냈는지.
내가 우리 아이를 이렇게 키워냈구나.
너를 만난 건 행운이다.
그래도 너를 재우고 나면 맥주가 땡긴다.
네가 육아를 할 생각을 하니,
선뜻 그러거라, 육아 최고!!라고
말해 줄 수가 없다.
엄마, 아빠,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옆 집 할머니,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