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한 장면에서 툭 던져진 말,
“청경채 같은 지지배.”
듣자마자 잠시 멈칫하게 된다.
모욕인지, 장난인지, 애정인지 경계가
흐린 말이다.
우리 욕설의 어휘력도 여기까지 왔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전통적인 욕은 대개 상처를 남긴다.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고, 감정을
흔들어놓는다.
그런데 ‘청경채’라니.......
이 채소는 욕의 문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담백하고,
물컹하지도 않고,
쓴맛도 없고,
시원하고 싱그러운 잎채소다.
‘너는 청경채 같다’라는 말은
공격이라기보다는 묘한 조롱에 가깝다.
가볍고 순한 캐릭터가 떠오르고,
쉽게 구겨지지 않는 대신 존재감도 세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상대를 비틀어 말하지만 칼날이 없다.
그래서 듣는 사람도 화가 나기보단 어이없는
웃음이 먼저 나온다.
이 말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욕의
본래 목적을 흐리기 때문이다.
상처를 내려고 했지만, 정작 떠오르는
이미지는 초록빛 채소 한 포기다.
욕을 들었는데 '배추'나 '시금치'가
아른거리면, 분노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길을 잃는다.
이런 표현은 결국 욕의 시대가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관계를 망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는 아쉬울 때.
진짜 상처는 남기지 않으면서도
‘나 지금 기분 나쁘다’
정도는 표현하고 싶은 시대의 말투다.
욕이란 원래 금지된 감정의 출구였다.
억울할 때 튀어나오고,
화가 날 때 달려 나가는 언어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 본능마저도
세련되게 포장한다.
상스러운 말 대신 채소 이름을 가져와 쓰고,
자극을 피하면서도 은근한 유머를 넣는다.
그래서 '청경채 같은 지지배'라는 말은
욕이라기보다 감정의 완충재에 가깝다.
관계가 다치지 않도록,
그러나 속마음은 살짝 들려주는 절묘한
타협이다.
듣는 사람도 크게 상처받지 않고,
말하는 사람도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그 중간 지점의 말이다.
언어는 늘 시대를 닮는다.
이제는 욕조차도 신선함을 추구하고,
상처보다 웃음을 남기길 원하는 세상이
되었다.
욕이 청경채처럼 싱그럽게 변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https://suno.com/s/RBHO9euXnJcqcpWQ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툭 내뱉은 그 말 한마디
“청경채 같은 지지배”
화가 나야 할 타이밍에
왠지 웃음이 먼저 나와
초록빛 잎이 흔들리듯
내 마음도 살짝 흔들려
독한 말보다 부드럽게
너는 나를 놀려오네
청경채 같은 너
싫다 말해도 미워지지 않아
싱그럽게 스며들어
가벼운 장난처럼 내 하루에 피어
청경채 같은 너
이상한 욕 같아도 이상하게 좋아
날 화내게 못해
초록빛 너의 말투가
2절
상처 주려던 건 아닐 걸
너의 눈빛은 말해주지
칼날 없는 장난 섞인
유치한 투정 같은 말
얄미운 듯 귀여운 너라
속상해도 금방 풀려
이상하게 그 말 한마디
오늘도 자꾸 떠오르네
청경채 같은 너
싫다 말해도 미워지지 않아
싱그럽게 스며들어
가벼운 장난처럼 내 하루에 피어
청경채 같은 너
이상한 욕 같아도 이상하게 좋아
날 화내게 못해
초록빛 너의 말투가
욕인지 애정인지
모를 너의 그 한마디
오늘도 내 마음속에
초록빛으로 자라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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