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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쉽'으로 불리던 소녀에게

by 남궁인숙

'블랙 쉽(black sheep)'은 집단이나

가족 안에서 유독 문제를 일으키거나,

기대에 어긋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한국어로는 보통 ‘집안의 문제아’,

‘집단의 이단아’, ‘말썽꾸러기’ 정도로

번역된다.

영국에서 양을 키우던 시절,

흰색 양의 털은 염색과 가공이 쉬워

가치가 높았다.

검은색 양의 털은 염색이 어려워

쓸모가 적다고 여겨 인기가 없었다.

이 인식이 비유로 확장되어

'무리 가운데 쓸모없거나 골칫거리인

존재'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오늘날에는 반드시 나쁜 사람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맥락에 따라 두 가지로 쓰인다.

부정적 의미로 가족이나 조직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사람, 규칙을 자주 어기는

사람의 의미로 쓰인다.

중립적, 긍정적 의미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비주류 인물을 표현하거나

기존의 틀을 깨는 독립적이거나 반항적인

인물을 말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블랙쉽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서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배우 이혜영'

이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남긴 수상 소감이

짧지만 의미가 오래 남았다.

그녀는 자신을 어린 시절 집안에서

'블랙 쉽처럼 취급받던 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랑 같은 시간을 거의 40년

가까이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언니와 오빠가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인생이 유한한데, 더 늙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라고.

그렇게 다시 가족을 만나러 왔고,

그곳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아 지금

그 과거의 소녀가 오늘 무대에서 상까지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뭉클합니다.”라고 말했다.

비유가 너무 멋이 있었다.



‘블랙 쉽’은 집단 안에서 문제아, 이탈자,

'기대에 어긋난 사람'뜻하지만 배우

이혜영의 이야기는 그 말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블랙 쉽은 반드시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살아내기 어려웠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가족의 규범에 맞지 않았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으며,

그래서 더 멀리 떠돌아야 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배우였지만 평범하지 않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상 '끼쟁이'였을 것이다.

긴 방랑 끝에, 그녀는 다시 불려 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괜찮다'는 따뜻함을

느꼈고, 그래서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성공담이어서가 아니다.


가출했던 소녀가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리고 돌아온 자리에서 과거의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블랙 쉽을 집안의 실패,

조직의 문제로 부르지만 어떤 블랙 쉽은

다른 삶을 먼저 살아본 사람일 뿐이다.

세상에 먼저 부딪히고,

먼저 상처받고,

먼저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다시 불려 돌아왔을 때

그 경험은 실패가 아니라 서사가 된다.


배우 이혜영의 수상 소감이 감동적인

이유는 주연상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블랙 쉽 취급받던 소녀가 이곳에 와서

이렇게 좋은 상을 받았다.”

이 말은 성공의 선언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였다.

그 소녀는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늦게 이해받은 존재였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은

아주 멋이 있었다.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삶을

다시 부르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멋있게 늙어가는 대배우였다.




https://suno.com/s/bRZmg1F3cNLTMj0a


블랙 쉽의 노래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어릴 적 나는 집 안의 검은 양

말없이 멀어져야 했던 이름

길 위에서 배운 건 견디는 법

외로움이 나를 키웠던 시간


어느 날 불러준 그 한마디

“더 늙기 전에 얼굴 보자”는 말

따뜻한 손이 나를 안아 줄 때

방랑은 끝나고, 나는 집이 되었지


우우우우 우우우우

나는 더 이상 숨지 않아

검은 양이라 불렸던 그 이름으로

오늘의 나를 부른다

나는 여기까지 왔어

버려진 길이 아니라

나를 만든 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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