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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약이라는 말의 과학적 근거

by 남궁인숙

네덜란드의 에라스뮈스대학교 로테르담

연구진이 참여한 네덜란드 노화 종단연구

에 다음과 같은 계열의 연구들이 있다.

손주를 돌본 조부모 약 2,900명,

손주를 돌보지 않은 조부모 7,000명 이상을

약 6년간 추적 관찰하였다.

기억력, 언어 유창성, 집행기능 등 인지기능

검사 점수를 반복 측정했다.

이건 단순 설문이 아니라 종단 연구라서

신뢰도가 꽤 높은 편이다.

한 번 검사로 끝난 게 아니라,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았다.

그 결과 손주를 돌본 조부모가 전반적으로

인지기능 점수가 더 높았다.

특히, 기억력, 언어 능력(말을 조리

있게 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을 해줬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를 가르쳤느냐

놀아줬느냐

밥을 먹였느냐

이게 아니라,

‘돌본다’는 상황 자체가 핵심 변수였다.


왜 효과가 있느냐를 뇌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손주 돌봄은 그냥 육아 노동이

아니라 뇌 입장에선 거의 종합 훈련

세트였다.

일정시간 동안 기억해야 했다.

예를 들어, 약 먹이는 시간,

식사와 간식 시간, 놀이 시간 등이다.

계속 말을 해야 해서 언어 사용량이

급증했다.

물론 이건 힘든 노동일 수 있다.

또한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집행

기능이 있어야 했다.


말을 듣지 않는 손주들을 위해 감정

조절을 해야 하고, 딸과 사위 등 눈치를

봐야 한다.

나는 이것을 '사회적 인지'라고 표현해

본다.

다시 풀이하면, '공감능력'이다.

인지적 자극,

회적 상호작용,

신체 활동 등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포함된다.

조합들은 아주 강력한 것들이다.


또한 할아버지보다 할머니에게 효과가

컸던 이유가 있다.

연구 결과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게 할머니

쪽에서 인지기능 저하가 더 적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남자들은 서글퍼진다.

이건 성별 차별 얘기가 아니라,

역할 차이의 문제였다.

할머니가 돌봄의 밀도와 빈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감정 노동, 언어적 상호작용의 비중이

할머니가 훨씬 더 크다.

멀티태스킹 상황에 더 오래 노출된다.

즉, 뇌를 더 많이, 더 복합적으로 할머니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효과가 더 또렷하게 나온다.


국내 연구도 같은 방향이다.

국내에서도 국민노후보장패널(KLoSA)

고령화연구패널 등을 활용한 분석에서

손주 돌봄 경험이 있는 조모 집단이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더 느리고,

우울 위험도도 낮은 경향으로 반복 확인됐다.

정서적 보람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인지 지표에서 나타난다.

손주를 돌본 할머니들은 노화 속도가

더 느리고, 우울감도 낮은 편이었다.

‘기분이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지표에서 차이가 났다.


물론, 손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무리하면 몸이 먼저 상한다.

억지로 떠맡는 돌봄은 오히려 독이 된다.

손주를 돌보는 건 정(情)만의 문제가 아니라

뇌를 쉬지 않게 만드는 '고강도 생활 자극'

이라는 얘기다.


마냥 예쁘기만 하고,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또한 외모에서 빨리 노화가 온다.

체력도 달리고, 시간도 뺏겨서 사적인

시간을 즐길 여유는 줄어든다.

그러나 뇌 입장에서 보면,

헬스장 안 가고도 매일 훈련하는 셈이다.



그러나 요즘 조부모님을 상담하다 보면,

애들이 너무 할머니 말을 듣지 않고

뺀질거려서 “힘들어서 못 보겠어요.”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온다.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손주 돌보는 건 진짜 노동이다.

그런데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억력도 좋고, 말도 또렷하고, 치매 위험도

낮다는 것이다.


뭘 제공해 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학습을 시켰든, 놀아줬든, 밥을 먹였든

상관없이 ‘돌본다’는 경험 자체가 뇌를

계속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손주를 보면 하루 종일 머리가 쉼 없이

돌아간다.

몇 시에 먹였는지 기억해야 하고,

어제 했던 말을 떠올려야 하고,

아이 눈높이에 맞춰 말을 골라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수시로 터진다.

이건 휴식이 아니라 종합 두뇌 훈련이다.

몸도 쓰고, 말도 하고, 기억도 하고,

감정도 조절한다.

치매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조건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손주를 돌보는 시간은 노인의 삶을 정지

상태로 두지 않는다.

계속 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반응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온 말이 괜히 ‘손주가 약'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손주 돌보는 게 약이다.”


힘든 건 사실이지만,

뇌는 그 시간을 꽤

고맙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https://suno.com/s/tBXicAtPikX7QdG3



손주 돌보는 게 약이다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

무릎은 좀 아파도

머리는 깨어나

하루 종일 네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

휴휴휴 휴휴휴


2

숨은 가쁘게 차도

기억은 또 선명해

힘든 줄 알면서도

내일을 약속해

후후후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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