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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왜곡된 성 윤리

동성애 혐오와 여성 억압을 중심으로 한 성의 부정적 신학

by Francis Lee

기독교 교회가 인간의 성(性)을 다루는 방식은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근본을 결정하는 신학적 사건이다. 교회는 성(性)을 신의 창조 질서 안에 포함된 긍정적 생명력으로 보기보다, 타락의 흔적이자 원죄의 통로로 규정해 왔다. 이때부터 성은 단순히 죄의 주제가 아니라, 영혼을 지배하기 위한 신학적 도구가 되었다.


초기 교부 시대 이래 교회는 ‘순결’(chastitas)을 최고의 덕목으로 격상시키며, 성적 욕망의 통제를 구원의 징표로 삼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순결이 언제나 억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순결은 해방이 아니라 복종의 상징이 되었고, 순결의 신학은 결국 신이 직접 흙을 빚어 만든 인간의 몸을 부정하는 신학으로 변질되었다. 육체는 죄의 무게를 지닌 것으로, 욕망은 신의 은총을 방해하는 것으로, 쾌락은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부정의 신학이 역사 속에서 생산한 결과는 명백하다. 동성애자들은 “비자연적 존재”로 낙인찍혀 인간 세상에서 추방되었고, 여성은 “유혹의 근원”으로 묶여 신학적 발언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교회는 자신이 말하는 “사랑의 복음” 속에서조차, 사랑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교회의 성 윤리는 신의 자비가 아니라 남성적 권력의 언어로 굳어졌다. 이 구조적 왜곡 곧 성의 신학이 남성 중심적 권력 논리에 의해 변질된 출발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이며, 그 체계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사상이다. 이 두 신학자의 사유는 이후 1,500년 동안 교회의 공식 윤리를 형성하며, 인간의 성적 다양성을 죄와 타락의 언어로 재단하는 교리적 기초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기독교 윤리의 핵심적 기초를 놓은 사상가이자, 동시에 성의 부정과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신학적 전통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는 청년기에 마니교적 이원론과 플라톤주의적 사상을 접하면서 인간의 욕망과 육체를 영혼의 순수성과 대비시키는 극단적 이원론적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는예수가 설파한 것과는 다른 생각이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영혼과 육체를 대비시키거나 육체를 악마화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몸과 함께 부활하여 몸이 영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임을 몸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의 개인적 체험으로 그런 극단적인 이원론적 윤리관을 확립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결국 그 아들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Confessiones 1권). 이러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인간의 성욕과 육체적 욕망을 죄와 타락의 원천으로 인식하게 했고, 이는 영혼 중심의 윤리 구조로 발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을 선하고 육체와 욕망을 타락의 원인으로 보는 이원론적 관점을 통해, 후대 서방 기독교의 성 윤리와 금욕주의적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나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사슬”이라 묘사하며,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본질적으로 죄와 연결했다. 그의 사상에서 성은 더 이상 생명의 기쁨이 아니라, 죄가 세대를 거듭해 전달되는 신학적 매개체였다. 곧 인간은 성행위를 통해 원죄를 유전하며, 이 욕망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이유 자체가 타락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인간의 몸을 신의 형상(imago Dei)으로 보는 창세기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창세기에서 신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에서 그 ‘좋음’은 타락 이전의 상태로 제한되며, 타락 이후 인간의 몸은 ‘수치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의 욕망은 구원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억눌러야 할 것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그의 사상이 단순히 과거의 타락한 삶에 대한 한 개인의 도덕적 성찰이 아니라, 제도적 금욕주의의 신학적 정당화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독신제, 성직자의 금욕, 여성의 순종이라는 교리적 규범은 모두 바로 이러한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토대로 구축되었다. 그 결과, 성의 영역은 영혼의 구속이 아니라 교회의 통제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욕망의 통제는 신앙의 척도가 되었고, 교회는 성의 부정을 통해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부정이 내부의 부패를 낳았다. 욕망을 억압할수록 성직자들은 이중적 삶을 살게 되었고, 그 억압의 균열이 앞선 장에서 보았듯이 아동 성추행과 성착취라는 형태로 폭발했다. 즉, 성의 부정은 결코 순결을 낳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적 위선과 폭력의 신학적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인 종족보존과 관련된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억압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 결과이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부정적 인간학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신학에 도입하여, 모든 자연적 행위는 고유한 목적(telos)을 지닐 때 선하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성행위의 목적은 ‘생식’으로 한정되었다. 이 정의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아퀴나스는 “자연의 목적에 반하는 행위는 신의 질서에 대한 반역”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동성 간의 성행위는 물론 자위나 피임조차 모조리 ‘비자연적 행위’로 분류했다. 그의 논리는 중세 교회의 도덕체계에 깊이 뿌리내렸고, 13세기 이후 교회법에서 이 ‘자연에 반하는 죄’(peccatum contra naturam)는 가장 심각한 죽을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생태적 자연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 생식의 논리였다. 즉, ‘자연’은 생명의 다양성이 아니라 ‘번식 가능한 이성애적 관계’만을 의미했다. 그 결과, 사랑의 다양한 형태, 곧 감정적, 영적, 관계적 차원의 사랑은 교리적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아퀴나스의 신학은 결국 성의 목적을 오로지 생식에만 환원함으로써, 인간의 사랑을 기능화했다. 사랑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생물학이 되었고, 욕망은 신의 질서가 아니라 죄의 가능성으로만 다루어졌다. 이러한 신학은 20세기까지 교황청의 공식 입장을 지배하며, 1968년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은 피임과 동성애를 금지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처럼 교회는 인간의 성적 다양성을 부정하고, 성을 번식의 도구로 축소시킴으로써 신의 창조 질서 자체를 왜곡했다. 성의 본질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생명의 ‘통제’로 변질되었다. 이 통제의 신학이야말로 교회의 권력이 유지되는 내적 메커니즘이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신이 인간에서 선물한 인간의 본능적인 성마저 교회의 통제 아래에 두어야만 하는 권력욕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단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해석 방식에 대한 신학적 전쟁이었다. 가톨릭 교리서는 여전히 “동성애 행위는 본질적으로 무질서하며, 결코 승인될 수 없다”라고 명시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357항). 이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1,700년간 축적된 기독교 교회 교리의 결정체다. 그러나 동성애를 ‘비자연적’이라 규정하는 논리는 두 가지 모순을 안고 있다. 첫째, 성경 자체가 오늘날 말하는 의미의 ‘동성애’를 윤리적으로 일관되게 다루지 않는다. 레위기 18장의 금지는 고대 유대의 정결법 체계에 속하며, 신약의 바울 서신 또한 헬라 문화권의 권력적 남색 행위를 비판한 것이지, 사랑의 관계로서의 동성애를 정죄한 것은 아니다. 둘째, 예수 자신은 어느 복음서에서도 성적 지향이나 성별의 문제를 도덕적 잣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관계의 형태가 아니라 사랑의 진실성에 있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바울의 일부 문장을 절대화하여,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구절을 젠더 이원론의 근거로 삼았다. 이로써 신의 창조는 다양성이 아닌 이분법으로 재해석되었다. 결국 교회의 동성애 혐오는 단순한 교리적 보수성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오독과 사랑에 대한 불신의 결과였다. 문제는 이 교리적 혐오가 사회적 폭력으로 번졌다는 사실이다. 중세 유럽에서 동성애자는 종종 화형 당했으며, 근대에도 교황청은 “동성애는 문명의 퇴락을 불러오는 역병”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교회는 여전히 ‘동성애자는 사랑받아야 하지만, 그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모순된 입장을 유지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존재를 사랑하되, 존재의 본질은 부정하라”는 명령이며, 존재의 부정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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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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