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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위선적 회피

기후 위기, 난민, 젠더 문제에 대한 실천 없는 말잔치

by Francis Lee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에는 기후 붕괴, 난민 위기, 젠더 불평이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지역적 사안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의 것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의 문제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원리와 직접 관련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기독교 교회는 반복적으로 예언자적 역할을 자임해 왔음에도, 실제로는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거나, 말로만 행동하는 전형적인 자기기만적인 ‘도덕적 수사학 생산기관’에만 머물러 왔다.


대부분의 교회 공식 문헌, 곧 교서, 연설, 각종 선언문은 언제나 ‘우려한다’, ‘기도한다’, ‘연대한다’, ‘고통을 경청한다’, ‘생태적 회심이 필요하다’는 말로 끝난다. 정작 교회가 스스로 나서서 그런 우려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을 하겠다는 말은 전혀 없다. 이런 말뿐인 선언은 사실 올바른 윤리적 태도가 아니다. 말의 윤리와 삶의 윤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심연이 있다. 교회의 핵심 문제는 바로 이 간극이다. 교회는 스스로를 “정의의 수호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위선에 빠져 있다. 곧 문제를 지적하지만 교회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다. 고통을 말하지만 그 고통을 덜기 위해 자신의 안전지대와 부를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희생을 설교하지만 그 희생을 타인에게만 전가한다. 성찰을 말하지만 비위와 악의 토대가 된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는 기후 위기와 관련하여 “창조질서 보전”을 설교한다. 이른바 ‘생태 신학’의 홍수 사태가 벌어질 정도다. 그러나 정작 그 실천은 기피한다. 개신교와 가톨릭 가릴 것 없이 오늘날 거의 모든 교파는 기후 위기에 대한 문헌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가톨릭은 대표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생태적 회심을 강조했고, 개신교 여러 교단도 생태 정의, 환경 정의라는 표현을 반복한다. 문제는, 이 문서들은 현실적으로 거의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저 말만 늘어놓은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바로 교회 자체다.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은 여전히 에너지 효율이 낮은 냉난방 시스템을 사용하고, 거대한 성당과 교회 시설은 매우 비효율적인 난방과 냉방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을 소모한다. 교구와 수도회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수시로 비행기를 이용하여 탄소 배출이라는 생태적 범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이 단 한 번도 교회 제도 차원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도록 한 적이 없다. 여기에 더해 신학생 해외연수, 교구 사목평의회 해외 탐방, 주교들의 해외 회의 참석은 물론 이른바 성지 순례 등은 ‘정상적’인 교회 활동으로 간주되며,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내부적 반성과 조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교회는 환경 파괴를 막아 “창조질서를 보전하라”라고 말하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그에 어긋나는 생동을 서슴지 않는다. 고위 성직자는 연비가 대단히 형편없는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나 그에 필적하는 고급 세단과 고가의 SUV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사용한다. 각종 교회 행사에서 여전히 일회용품을 대량으로 사용한다. 해외 성지순례를 적극 장려하여 신자들이 대규모로 비행기를 이용하여 탄소 배출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극히 낮은 대성당, 수도원 수련원과 같은 교회 시설은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교회는 이 모든 것을 ‘거룩한’ 예배, 전례, 사목을 위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교회가 말하는 ‘생태적 회심’은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가 누리는 안온한 삶과 편의에 대한 기득권 포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도 교회는 결코 자신이 가진 물질적 풍요를 내려놓지 않는다. 결국 교회가 말로만 내세우는 생태 담론은 윤리적 권면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면죄부에 가깝다.


교회 설교에서 기후 위기는 거의 항상 개인에게 “여러분이 플라스틱을 줄이십시오.”, “여러분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연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교회 자체가 감당해야 할 실천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특히 교회 고위 성직자의 방만한 자원 낭비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리고 교회 자원을 생태 보전을 위해 적극 사용하는 것에는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은 교회에서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교회가 보유한 부동산을 팔아서 그 돈으로 태양광 발전 시설 확산에 사용할 수 있는가?”

“교회 예산의 일정 비율을 기후 정의 운동에 배정할 것인가?”

“성당의 비효율적 냉난방 시스템을 친환경 모델로 교체할 것인가?”

“성직자들의 장거리 비행을 제한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매우 단순하다. 그럼에도 교회는 침묵한다. 이를 실천하려면 교회가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실천의 부담을 교우들에게 떠넘기고, 윤리적 의무의 실질적 비용은 항상 교회 밖 시민사회가 감당한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가장 뚜렷한 위선 가운데 하나이다.


난민 문제의 경우도 교회는 마찬가지의 위선적 태도를 보인다. ‘연대’를 외치지만 교회 재산은 한 평도 내놓지 않는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난민을 위한 기도는 넘치지만, 난민을 위한 공간은 없다. 곧 교회는 난민 주일에 “난민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가 실제로 제공하는 난민 보호 시설은 거의 없다. 유럽, 한국, 북미 어디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한 교회 건물, 수련원, 은퇴 수도자용 시설, 비어 있는 교회 부지, 교구 소유 아파트 등 교회의 부동산은 세계 어디에서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원은 거의 전부 자체 직원, 성직자, 교육시설, 혹은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나 병원에만 쓰인다. 이러한 부동산, 특히 주일이나 틀정한 날에만 사용하는 시설은 난민 위기를 위해 교회가 직접 투입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자원임에도, 교회는 마치 그것이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나 되는 듯이 전혀 건드릴 생각을 안 한다. 그러고는 난민 문제를 정부와 사회의 일로 전가해 버린다. 그러면서 정부에 난민 보호 책임을 요구하고 교우들에게 기부를 요청한다. 그러나 교회의 재산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의 난민 담론은 항상 위로부터의 도덕적 훈계로 들릴 뿐이다. 교회의 그 풍요한 부동산과 동산 자원은 철저히 고위 성직자를 중심으로 특권을 누리는 계층 안에서만 순환한다.


교회가 정말로 말처럼 난민을 사랑한다면, 말만이 아니라 교구 소유의 유휴 부동산을 제공해 난민 주거 공간 마련하고 수도회 수련원 일부를 긴급 피난처로 개방하며 교회 건물의 일정 공간을 난민 서류 지원 센터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교구 예산에서 ‘난민기금’ 항목을 명시적으로 책정하여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난민 지원 활동에 직접 참여하도록 조직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어떤 교회도 이러한 행동을 교회 조직 차원에서 지속적, 체계적으로 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 개별 수도회나 소수 지역 교회가 부분적으로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교회 조직 전체로 보면 극히 예외적이고 소규모적인 사례들일뿐이다. 그리고 교회가 제도적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일에는 매우 게으르다. 그런 조직이 자체적으로 자원을 마련하라고 독촉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활동을 마치 교회가 제도적으로 실천하는 것처럼 선전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이런 식으로 교회가 관행적으로 보여주는 구조적인 ‘무실천’은 결국 난민 위기의 윤리적 부담을 시민단체, NGO, 변호사들, 현장 자원봉사자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교회는 기도와 선언문으로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는데 힘을 쓸 뿐이고, 정작 중요한실질적 책임은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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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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