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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왜곡한 예수의 만찬

성만찬의 본래 의미가 제도화 속에서 사라졌다.

by Francis Lee

기독교의 성찬(Eucharist) 또는 주님만찬(Lord’s Supper)은 표면적으로는 예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찬의 재연이지만, 실제 역사 과정을 추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권위, 교리, 정체성, 권력의 중심축으로 변질되었다. 예수의 식탁은 배제된 자, 세리, 창녀, 병자, 사회적 소수자의 접근을 허용하는 이른바 ‘근본적인 환대’(radical hospitality)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성례 제도 속에서 성찬은 자격 심사, 교리적 정통성, 사제의 권한, 교회의 통제력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해 온 것이다. 칠죄종의 관점에서 보면, 성찬의 왜곡은 단순히 의례의 형태가 변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성스러운 행위를 독점하고, 그 독점을 통해 ‘은혜를 배급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된 순간부터 발생한 구조적 죄인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거저’ 나누어주는 자선 행위를 무시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독점해서 배급’하는 권리를 교회가 스스로 정하고 행사하는 ‘죄’를 지은 것이다. 예수의 ‘열린 식탁 공동체’가 폐쇄적인 ‘자기들만의 향연’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식탁’은 단순한 식사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질서의 선언이었다. 원래 고대 유대 사회에서 식사는 사회적 신분의 경계, 종교적 정결 규정, 거룩과 속됨의 구분, 공동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장벽을 의미했다. 철저히 계급주의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면서 식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바로 이 차별의 장벽을 허물었다. 그는 누구보다 유대교에서 ‘죄인’으로 단죄하는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마태 9,10)


그리고 유대교 전통의 정결 규정을 무시했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가 7,1~5)


그러 예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1)


그리고 예수는 식사에 소외된 이들을 초대할 것을 명령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곧 예수의 식탁은 ‘성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성스러움이 구조적으로 배제한 자들을 포용하기 위한 급진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보여주는 전례화되고 폐쇄적인 성찬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에 관한 이야기는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보다 후대 기록이다. 원래 예수는 유월절에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식사 공동체를 실천했다. 그런데 나중에 기독교 교회는 이것을 ‘성례’로 규정하기 위해 신학적 의미를 덧씌웠다. 그 과정에서 “기억하라”는 예수의 요청은 “반복하라”는 제례 명령으로 변형되었다. 예수가 원한 것은 “제의적 반복”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과 가치의 기억”이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를 제도화하고 권력의 수단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예수가 죽은 다음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성찬을 “예수의 정신을 재현하는 공동식사”로 실천했다. 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먹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식사한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행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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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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