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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의 상업화에 깃든 식탐의 구조

교회가 ‘거룩한 장소’를 소비주의 관광상품으로 만든 이유.

by Francis Lee



기독교는 본래 장소 중심의 종교가 아니었다. 예수는 “이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니다”(요한 4,21)라고 말하며, 장소적 제의성을 해체하고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비장소적 신앙을 제시하였다. 이는 그 당시 형식주의에 집착하던 유대교 사제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는 선언이었다.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장소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사후에 세워진 초대 교회는 특정한 건물, 특정한 장소, 특정한 지역에 매인 신앙을 거부하였다. 심지어 사도행전의 7장에서 스테파노는 다음과 같이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성전 중심 종교성에서 해방시키려 했다.

“하느님을 위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이는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지 않았느냐?’”(사도 7,47~50)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경향은 무엇 다 성지순례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성지순례는 전 세계 교회가 표준처럼 실행하는 종교 프로그램이며, 그 규모는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른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해외 성지 순례 시장의 거대한 소비층으로 성장해,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이집트 등 다양한 지역을 연결하는 종교 관광 산업의 핵심 고객이 되었다.

이 성지 순례는 경건함과 회심을 돕는 영적 여정(spiritual pilgrimage)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현실은 “종교적 명분을 쓴 해외여행”이 되어 버린 경우가 많다. 신부나 목사라는 가이드를 ‘모시고’ 가는 것이 신앙적 의미를 더한다기보다, 사실상 종교적 권위자를 동반한 관광 상품으로 기획·포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성지라는 장소 자체가 어떻게 ‘성스럽다’는 규정을 부여받게 되었는지 분석해 보면, 신학적 근거보다 중세 성물 숭배, 경제적 유입, 군사·정치적 전략, 순례 세금(pilgrimage tax)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 인위적 체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른바 ‘성지’는 종교적 순수성을 따라 ‘발견’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경제적, 정치적 수요가 만들어낸 종교적 발명품에 가깝다.

성경 어디에도 “성지 순례를 해야 한다”는 명령은 없다. 물론 유대교에는 절기 순례(Pesach, Shavuot, Sukkot)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었지만, 이는 성전 중심의 제의적 구조와 결부된 율법적 실천이었다. 그런데 바로 예수가 이 제의 중심성을 전복한 것이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는 성전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도행전 공동체 역시 특정 지역을 성스럽게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세기 이후 갑자기 ‘성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은 순전히 신학적 발전 때문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이후 기독교의 로마제국 국교화 과정에서 생겨난 정치적, 경제적 동기 때문이다.


기원후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가 팔레스티나 지역을 방문한다. 그녀는 유적지를 신비적 표지(relic)로 해석하고, 예수가 태어난 곳·십자가를 짊어진 길, 부활한 무덤 등이 ‘발견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 발견은 대부분 300년 이상 지난 사건들을 구전 전통에 의존해 ‘추정’ 한 것이었고, 심지어 로마의 비너스, 아도니스 신전이 있던 자리 위에 ‘예수 무덤 교회’가 세워지는 등 종교적 재활용이 일어났다.

이 최초의 성지 지정은 순전히 정치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기독교를 제국 통합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 순례자들의 유입을 통한 팔레스티나 지역의 경제 활성화, 동방 지역에 대한 로마 제국의 지배 강화, 성유물(relic) 중심의 종교권력 구축과 같은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전 세계 기독교 지도층은 ‘성지 순례’를 경건의 극치이자 의무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성지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적 사건의 기억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필요에 따라 창출된 종교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중세 유럽은 순례자들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경제 생태계였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일단 어떤 지역에서 성유물(relic)을 누군가 우연히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그 성물이나 지역에 대한 성지 순례를 홍보한다. 그러면 신자들이 순례자가 되어 그곳을 방문하기 시작한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박 시설, 식당, 성물 판매점이 세워진다. 이를 기화로 그 지역의 수도원, 대성당, 주교좌성당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일단 만들어지면 무한 수익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당연히 수익 구조는 다른 지역의 교회의 구미를 당겨서 ‘성지’가 무한 증식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인기 있는 포르투갈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 하나로 중세 유럽 최대의 순례 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에서는 야고보의 무덤이 그곳에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를 거의 찾지 못한다. 이처럼 성지란 ‘역사적 사실’보다 ‘경제적 필요’와 교회의 조작이 합작한 작품인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오늘날의 성지 순례는 4세기 이후 형성된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현대 관광 산업 및 글로벌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새로운 종교 소비 모델을 창출했다. 그 중심에는 다음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목사와 신부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권위의 재강화의 좋은 기회가 된다. 여기에 더해 교회의 수익 구조 다양화가 이루어진다. 순례길을 떠나는 데에는 수수료, 행정비, 참가비 그리고 순례 지역에서의 헌금과 기부금 등 다양한 형태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에게 ‘체험 중심 신앙’ 제공하는 기회가 되기에 교회에 대한 충성도 강화에 좋은 도구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지 방문을 신자의 개인적인 ‘영적 업적’으로 포장해 종교적 성취욕 자극하게 된다. 이 모든 요소는 종교 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교회의 성지 순례는 단순한 경건 프로그램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이 여행사와 결탁한 패키지 상품으로 운영되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담임 목사나 신부와 함께 가는 성지 순례”라는 권위 상품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일반 여행 대비 가격이 높은데도, 신자들은 ‘은혜를 산다’는 명목으로 과소비를 하게 된다. 이는 중세 때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훨씬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실제 일정은 관광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성지 순례 과정에서 주로 머무는 곳은 호텔, 식당, 쇼핑점이다. 성서 지리학적, 고고학적 검증이 전혀 없이 그저 ‘여기가 예수님이 걸으신 곳입니다’라는 감성 상품 제공하고 이를 소비하는 신자에게 감성적 감동을 주는 데 그치는 것이다.


더구나 기념품 구매를 통한 추가 소비 유도하는 것으로 신자들의 돈을 최대한 긁어낸다. 그리고 귀국 이후 간증 시간을 제공하여 집단적 감정 강화의 도구로 이용한다. 결국 성지 순례는 신자들에게 영적 성찰을 제공하기보다, 감성적 체험 소비를 제공하며 ‘종교적 엔터테인먼트’로 기능한다. 성지‘ 관광’을 ‘경건’으로 포장하여 결국 금전을 동원한 상품 소비를 자극하는 구조가 고착될 뿐이다. 성지 순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경건을 소비로 포장한다. 먼저 “예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는 명분으로 특정 장소 체험을 정서 상품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은혜받고 와서 헌신하자”는 명분으로 소비를 헌신의 양식으로 미화한다. 또한 “평생 한 번은 가야 한다”라고 꼬드겨 희소성 마케팅을 강화한다. 또한 “신무님, 목사님이 직접 인도하는 영성 여행”이라고 선전하여 종교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상품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지 순례는 종교적 소비주의(religious consumerism)의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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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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