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기독교 공동체부터 시작된 교회 분열의 긴 역사
기독교 역사에서 분열과 상호 단죄는 단순한 제도적, 조직적 사건이 아니라 교회의 자기 정체성, 권위 개념, 그리고 예배, 교리, 사목 패러다임을 둘러싼 근본적 갈등의 표상이다. 여기에서 칠죄종의 하나인 시기(Invidia), 곧 타자의 성공·영예·권위를 시기하고 경쟁하는 마음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인 동시에 집단적, 제도적 현상으로 표출된다. 교파 분열과 상호 정죄는 종종 신학적 쟁점으로 위장되지만, 정치, 문화, 경제적 이해관계와 얽혀 있음을 역사적 자료들은 일관되게 보여준다.
신약성경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일치의 이상을 표방했으나 현실적으로는 분열의 요소로 가득했음을 숨기지 않는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은 공동체 내 갈등의 존재를 여러 차례 기록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서 “바울파 아폴로파 케파, 곧 베드로파 그리고 그리스도파”로 나뉜 교회를 강하게 질책한다. 그는 이들 파벌화의 근원이 “사람 지혜에 의한 과시”와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 경쟁”에 있다고 보았다. 바울의 반응은 두 층위를 갖는다. 하나는 즉각적인 실천적 권유, 곧 교회 내 분열을 멈추게 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 교정,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하기를 권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뜻은 결국 권유의 차원에 머물고 말았다. 시기는 인간의 근원적 본능으로 신앙조차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초기의 파벌성은 단순한 인물 중심의 충성심을 넘어, 사도전승의 해석 방식, 율법과 복음의 관계, 유대적 전통과 이방적 실천의 조정이라는 신학적 쟁점과 연결되었다. 예컨대 유대인 기원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식생활과 할례와 같은 율법 준수 문제는 각 파벌을 규정짓는 요소였고, 이는 결국 공동체의 정체성 경쟁으로 비화되었다.
아폴로를 따르는 무리의 특징은 아마도 수사학적, 설교적 매력과 연관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8장에 나오는 아폴로의 수사적 기능은 다른 파벌의 시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의 열정에 불타는 바울은 복음의 신학적, 윤리적 핵심에 집중하려 했고, 언변이 뛰어난 아폴로를 중심으로 한 파벌은 설교와 식별 가능한 교육적 효과에서 우위를 점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베드로파는 예수의 직계라는 명분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적 전통의 연속성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각각의 자기 파벌에 대한 ‘충성’은, 지도자의 사회적 기능, 곧 교회 내부의 분배와 봉사의 배당과도 직결되었을 것이다.
결국 초대 공동체의 분열 조짐은 ‘누가 누구를 따르는가’의 문제를 넘어, 교회의 권위, 의례, 정체성, 리더십 모델을 두고 초기부터 경쟁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후대의 교파 분열을 이해하는 중요한 선례가 된다. 분열은 종종 그럴듯한 논리와 명분을 내세운 신학적 문장으로 포장되지만, 그 밑바닥에는 인적, 사회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이는 사실 인간 집단 전체의 특성이다. 종교 집단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아무리 신의 외아들인 예수를 교주로 삼은 종교라고 해도 말이다.
2~5세기 사이 동지중해 지역에서는 여러 신학적 전통이 공존하고 경쟁했다. 대표적인 알렉산드리아 전통은 성서 해석에서 알레고리적, 영적 해석을 강조하며 그리스철학과 융합된 신학을 발전시켰다. 여기에는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를 비롯한 알렉산드리아의 여러 신학자들이 있다. 반면에 또 다른 대표적인 파벌이 있던 안티옥 지역의 전통은 문자적, 역사적 해석을 중시했고 예수의 인성과 역사성 강조에 더 민감했다. 안티옥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루키아노스, 테오도루스, 디오도루스, 그리고 유명한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네스토리우스, 테오도레토스가 있다. 이 두 전통은 후대의 그리스도론 논쟁, 특히 예수의 위격과 본성에 관한 치열한 논쟁의 토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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